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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THEOLOGY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성령세례론에 대한 역사적 고찰

                                                                                              (성결대 역사신학) 교수

  1. 여는

  성령세례의 능력이란 참으로 존재하는가? 그것이 존재한다면 능력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리고 경험은 순간적으로 인식할 있는 것인가? 연구의 목적은 오늘날 많은 교회와 신자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이와 같은 진지한 영적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얻고자, 지금까지 한국 성결교회에서 제기되고 주장된 성령세례론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고찰하려는  것이다.

  정화와 능력을 강조하는 성령세례 교리는 성결교회의 교단 신학인사중복음 주요한 일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초기 성결교회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은 성별회(聖別會) 활동이나   많은 저작들을 통해 교리를 자랑스럽게 선포해 왔다. 그런데 오늘날 기성과 예성을 포함한 한국 성결교회의 상황은 어떠한가? 중생과는 별개의 체험으로 다가오는 성령세례에 대한 강조나, 중생 이후 순간적으로 얻게 되는죄성제거설’(Eradication)로서의 성결 체험에 대한 강조가 여전히 성결교회의 생명력 있는 교리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만일 같은 질문에 대해서 우리가 자신있는 답변 내리기를 주저하고 있다면, 마땅히 우리는 원인을 찾아내어 치유책을 마련함은 물론, 나아가 현실적으로 한국교회를 크게 부흥시킬 있는 능력 있는 성령세례의 신앙으로 발전시켜야 것이다.

   연구가 지닌 가지 제한점을 소개한다. 우선 연구는 교리적인 접근이 아니라 역사신학적인 관점에서의 접근 방법을 사용하였다.1) 이를 통해 성령론의 교리적 논쟁을 극복

  하고, 역사적으로 여러 성결론 저자들을 통해 나타난 내용들의 일치된 강조점을 찾고자 한다. 연구의 범위에 있어서는 초기 성결교회와 교단 분열 이후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성령세례론에 대한 연구에 국한한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평가되는 한국의 개혁파나 오순절 계통의 성령세례론 등에 대해서는 연구에서 다루지 않는다.2) 끝으로 연구의 주제에 있어서는성령세례 대한 것으로 국한하며성령세례의 단회성 여부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의 단어적 용법, 중생과 관련된 성령세례의 시기 등에 대한 논제보다는 특별히 능력 차원에서의 성령세례 경험에 대해 집중할 것이다.  

  2. 성결교회 성령세례 이해의 배경

  성결교회 성령세례 이해의 역사적 배경에는 John Wesley 성결론이 크게 위치하고 있다. 먼저 중생 이후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 단계와 관계된 웨슬리의 이중적 구원론 구조를 가능케 확신의 교리는 웨슬리에게 있어서 1738 5 24일의 Aldersgate 거리의 체험을 통해 분명하게 경험되어진 있다. 충만한 확신의 교리와 함께 성령의 내적 증거에 대한 웨슬리의 강조는 이후 웨슬리안 성결운동에 있어서 이차적 축복으로서의 성령세례의 순간적 경험을 확인할 있는 표준이 되었다.

  한국 성결교회 성령론에 영향을 미친 것은 비록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영향도 배제할 수는 없으나, 더욱 직접적으로는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영향이었다. 19세기의 웨슬리안 성결운동은 전쟁 전에는 웨슬리의 성결론과 웨슬리안 완전주의(Wesleyan Perfectionism) 지배적이었고,3) 전쟁 후에는 여기에정결과 능력으로서의 성령세례에 대한 강조와 함께

  ‘ 3 축복’(the Third Blessing) 그룹이 가세(加勢)하였다. 여기서 시기적으로 한국 웨슬리안-성결 그룹에 더욱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남북전쟁 이전보다는 이후의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이다.

  Phoebe Palmer 「성부의 약속」(The Promise of the Father) 특히 성령세례에 대한 강조가 많이 나타나서 당시의 성령운동에 끼친 영향이 크다.4) 그녀는 성령세례를감리교의 특징적인 교리라고 불렀으며, 여기서 사도행전 해석에 대한 그녀의 노선이 어떻게 전통적인 웨슬리안의 입장으로부터 확장되었는가를 보여준다. 그녀는 정결케 하는 사역과 함께 봉사의 능력을 부여하는 사역을 함께 강조하게 되었다.5)  A. M. Hills H. C. Morrison 등은 팔머가 성결과 봉사의 능력을 동일시한 것과는 달리,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결의 체험을 같은 성령의 소극적 사역으로, 그리고 능력 받는 체험을 같은 성령의 적극적 사역으로 각각 분리하였다.

  이처럼 19세기 후반의 웨슬리안 성결운동에서는 명백히 성결과 능력을 성령세례의 가지 차원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화되었다. 이와 같은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성령세례 이해는 성결론 저술들과 내한(來韓) 선교사들의 가르침을 통해 직접적으로 한국 성결교회의  교리와 신앙에 반영되었다

  3. 초기 성결교회

  1922년에 창간되어 오늘에 이른 성결교회 신학잡지인 <活川> 창간호부터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 노선의 성결론 강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창간호에는 Thomas Cook聖潔이 업슴이 아니라 罪가 업슴”, G. D. Watson白衣등이 실렸다. Thomas Cook 단순히 성령을 소유한다는 말과 성령으로 충만케 된다는 말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6) 성령세례는 오순절적 봉사와 충만함과 승리의 삶에

  어서 하나의 최초적 경험이라고 있다고 보았다.7) 그는 성령세례가 성령의 인격적인 지배를 통해 나타나는 능력이라고 보았다.8) 그리고 창간호에 나타난 인물인 George D. Watson9) 성결이라는 단어가 소극적 차원에 관계된다면성령세례는 긍정적 차원에 관계되는데, 둘은 항상 함께 동반된다고 하였다.10)  그는 성결의 은혜가 마음속의 원죄, 죄의 경향성을 치료하는 일임을 설명하였다.11)

  <활천> 편집자이자 발행인이었던 E. A. Kilbourne(吉寶崙) 불세례와 성령세례를 동일시하였다.12) 길보른의엇더케 하여야 성결의 은혜를 밧겟나뇨 똑같은 내용으로 2-6(1924)부터 반복되어 연재되기 시작했다. 길보른은 당시 교리에 대한 강조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했던 것이라고 본다. 그는성결 문제에 오해치 마르라 제목으로 성결교회 성결론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들을 바로잡으려 노력하였다. 이는 당시 이미 활동하고 있었던 개혁파 성령론과의 마찰이 심화되고 있었음을 미루어 있다. 그리고 뚜렷한 구별의 초점은 바로죄성제거설 두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13) Kilbourne 「동양선교회성결교회 교리내 조례」에 의하면완전한 성결이라 함은 그리스도로 말매암아 성신의 세례를 밧음이니 , 신앙으로 순간에 밧을 경험이니라. 또한 완전한 성결은 원죄에서 정결케 씨슴과 其人을 성별하야 하나님의 聖旨를 일울 능력을 주심이니라”14) 되어있다.

  A. M. Hills Yale 대학 신학부 출신으로서, 웨슬리안-성결 교파에서 최초로 조직신학을 신학자이다. 길보른과 힐즈의 성결론 해석은 둘다 철저한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 노선을 따름에 있어서 본질상 다른 점이 없다. 이같은 힐즈의 성결론이 1929년부터 <활천> 수십 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그의 Holiness and Power 1929년에 일본에서도 번역되어 출판된 한국과 일본의 웨슬리안 성결운동 노선 성결론의 고전이라고 있다. 그는 성령세례가 회심 이후에 받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축복이라고 보았다.15) 힐즈도 역시 성결과 성신세례를 동일한 체험으로 보았다.16) 그리고 은혜는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17)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성결에 대한 저서를 사람은 김상준인데, 그는 신생의 물세례를 받은 후에 반드시  성령의 불세례를 받아야 여러 가지의 악한 성품을 소유한 옛사람을 죽이고 참된 안식인 성결을 누릴 있게 된다고 말했다.18) 그러므로 그의 노선은 철저하게죄성제거설 입각한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을 추종하고 있음을 있다.19)

  이명직은성결을 어떻게 체험할가라는 글에서 성신의 세례로 성결하여진다고 전제하였다.20) 이명직은 성령세례 받은 표적으로서의 방언에 대한 명백한 부정을 하였으며, 대신 성령세례의 결과는 성결과 능력이라고 보았다. 그는물세례와 불세례에서 신자들이 물세례와 성신세례를 받아야 의무와 특권이 있다고 전제하였다.21) 그가 성결의 체험을 성령세례로 동일시하는 것은 <활천> 글을 통해 분명하지만,22) 「기독교의 사대복음」에서는 성신세례 혹은 성령세례라는 용어보다는성결을 체험하다’, ‘성신을 받다 표현을 즐겨 사용하였다.23)  글에서도 있는 바와 같이, 이명직의 성령세례 이해는 근본적으로순간적인 성결체험에 핵심을 두고 있음을 본다.

  이상에서 바와 같이 분열 이전 한국 성결교회의 성령세례 이해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한다는 점에서 명백하며, 또한 분명한죄성제거설입장의 성결 체험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있다. 이처럼 죄성제거설과 순간적 성결 체험의 강조는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전형적인 특색으로서, 성결교회의 성령세례론은 놀랄만큼 정돈된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4. 기독교대한성결교회

  1961년에 성결교회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로 분열된 이후에도 교단의 공식적인 성령세례 교리는 초기 성결교회와 달라진 없다. 현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헌법에는, “성결이라 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신의 세례를 받음이니 거듭난 후에 신앙으로 순간에 받을 경험이다. 은혜는 원죄에서 정결하게 씻음과 사람을 성별하여 하나님을 봉사하기 위하여 현저한 능력을 주심이다”24)라고 되어 있다. <헌법> 6 2

  에서도 역시 성결의 체험이란 신자가 받을 성령세례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1:5, 2:1-4; 12:14). 이처럼 성결교회에서 주장하는 성결론은 성결교회 초기부터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일관성 있게 주장되어 교리임을 확인할 있다. 다만 초기 성결교회에서는 성결론에 대해 단순한 교리적 표명과 설명에 중점을 두었지만, 분열 이후 최근까지의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는 성결론에 대한 다양한 신학화 작업에 힘을 쏟아 것이다.

  성결론에 대한 주제는 성결교회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관심과 연구가 모아지는 분야이지만, 그러나 특히성령세례 관해서는 그다지 일반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유는 성결교회의 성결론이 원칙상정화와 능력 가지 차원을 함께 언급한다고 할지라도, 실제적인 강조에 있어서는 아무래도정화 차원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결과, 단어의 의미상 정화와 관계 있는성결이라는 용어가 성령세례라는 말보다는 훨씬 자주 사용되었다. 그리고 가지 이유는 1960년대 이후 오순절주의에 대한 교계의 비판이 가속화되어감에 따라, 성결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성령세례라는 용어가 마치 오순절주의자들의 방언과 연관된 성령세례를 연상케 해주기 때문에, 점차 성결교회에서 용어의 사용이 줄어들게 것이라고 사료된다.

  교단 분열 이후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성령세례론을 조사하기 위해서, 필자는 교단 교리로서의 성결론에 관련된 주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선정하게 되었다. 물론 교단 내의 여러 학자들과 목회자들이 교단신학으로서의 성결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별히 웨슬리안 성결론 입장에서성령세례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저술을 통해 신학적 영향을 끼친 인물로는 사람을 꼽을 있다. 첫째는 조종남으로서, 그는 1960년대 이후 웨슬리신학과 연관된 성결신학의 위치를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둘째는 한영태로서, 그는 1980년대 이후 조직신학의 속에서 성결교회 성결론의 신학화 작업에 힘을 쏟았다. 셋째는 박명수로서, 그는 1990년대 이후 교회사적인 조명 아래서 성결교회 성결론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에 공헌하였다.

  조종남은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웨슬리신학에 입각한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 성결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성결론에 있어서의 웨슬리신학과 성결교회와의 관련성을 강조하였다.25) 성결교회와 성령세례에 대해서는, 성결교회가 성결을 성신의 세례로 설명하면서, 은혜를 받는 순간 봉사의 능력을 받을 아니라 동시에 죄에서 정결하게 씻음 받음을 주장하는데, 점에서 웨슬리의 해석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그는 보았다. 또한 이것은 성결교회가 성령세례를 이해함에 있어 개혁파 교회들의 주장과 구분되는 점이라고 보았다.26)

  한영태는 성령세례가 오직 회개하고 믿어 신자가 자에게 다가오는 경험이라고 하였고,27) 성령세례를 성화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이유는 신자가 거듭난 후에 성령세례를 이차적으로 받음으로 성결해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28) 그는 성령세례가 정결케 하는 역사이며( 3:16,17), 또한 섬김을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1:8).29) 그는 성결교회가 성결 체험의 순간적인 면만 강조한다고 지적하였다.30) 그런가 하면 성결의 본질적 내용은 사랑인데, 성결교회 성결론은 면에 대한 언급이 없고, 단지 정결과 능력 받음을 체험과 함께 강조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하였다.31) 그가 「삼위일체와 성결」에서 성령 체험에 강조를 성령론은 기독론과 신론의 약화를 가져올 있다고 것은 복음적인 성령론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지적이었다고 본다. 정결이나 능력의 강조보다도사랑 성결의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역시 삼위일체론적인 시각에서 균형 잡힌 성령론의 위치를 다룬 것이라고 본다. 물론 이같은 방향성은 성결교회의 전통적인죄성제거설노선의 강조를 약화시켜서는 안된다는 과제를 또한 부여 받는 것이라고 본다.

  1993 471호부터 박명수의성결교회의 뿌리를 찾아서시리즈가 <활천> 연재됨으로 인해 한국성결교회의 뿌리가 직접적으로 19세기 미국의 성결운동에 있음이 널리 소개되었다.32) 그는 또한 웨슬리의 성결론과 근대 웨슬리안 성결론을 구분지을 필요성을 강조하였다.33) 그는 19세기 미국의 웨슬리안들이 웨슬리의 주장을 충실히 따르기는 했지만, 웨슬리의 성결론에 자기들의 강조점을 덧붙였다고 하면서, 사이의 구체적인 차이점을 제시하였다.34) 그는 19세기의 웨슬리안들이 웨슬리의 성화론을 받아들이면서도 무엇보다도 성화를 원죄의 개념과 관련시켜서죄성제거설 발전시켰다고 이해한 것이다.

  박명수는 웨슬리의 성결론과 19세기 웨슬리안 성결론자들의 신학적 차이점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였다.35) 그는 한국성결교회 헌법에 성결을 성령세례라고 말한 것은 웨슬리적이라기보다는 19세기 웨슬리안 성결론자들의 주장이라고 하면서,36) 19세기 미국의 성결운동은 성결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하였다고 주장하였다.37) 그런가 하면 그는 19세기의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과 20세기 전통 오순절운동과의 연관성과 차이점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그는 성령세례에 대한 성결교회 신학의 중요한 신학적 특색은 근본적으로 새사람이 되는 것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 웨슬리안 성결운동은 오순절운동과는 달리성령의 역사의 결정적인 요소가 방언, 신유, 입신과 같은 은사 체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변화에 있다는 것이다.38)

  이상과 같이 교단 분열 이후 현재까지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성령세례 연구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조종남, 한영태 그리고 박명수의 글을 고찰하였다. 종합적으로 , 교단 분열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성령세례에 대한 진술이 획일적인 교리적 표명에서 제한되었다고 본다면, 분열 이후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는 웨슬리신학과의 연관성의 강조, 조직신학적 체계화의 노력, 교회사적 조명에 의한 전통성 확립 등의 영역에서 성령세례론을 발전시켜 왔다고 있다

  5. 성령세례 경험의 실재

  이제까지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 바와 같이, 한국 성결교회에서 믿고 가르쳐  성령세례의 경험을 정리하면 대개 다음에서 소개할 내용의 것들이다. 먼저 성령세례의 경험과 관계된 성결교회의 가지 전통적 신념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이해와 함께 현실적 적용의 차원을 다룬다.

  (1) 중생과는 구분되는 순간적 경험이다.

  ‘성령세례를 받으라 표현을 교회 내의 이미 중생한 신자들에게 사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신학계에서 찬반 양론이 분분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Abraham Kuiper, Charles Hodge, B. B. Warfield, Richard Gaffin, John Stott 등의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장로교 신학이 오랫 동안 한국 신학계를 주도함으로 인해,39) 성령 은사의 중단

  (中斷性) 함께 중생과 연관하여 성령세례의 단회성을 강조하는 성령론의 노선이 기세를 떨쳐 왔다. 그러나 본인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교회에는 최소한 여섯 가지 유형의 성령세례론이 현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40)  중에서 가지 유형은 명확히 중생과 구분되는 성령세례의 체험을 강조하고, 나머지 가지 유형은 중생과 동시적인 사건으로서의 성령세례를 말한다. 성결교회의 성령세례론은 가지 유형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서 역사적 전통성을 다음과 같이 확인할 있다.

  John Wesley 그리스도인의 완전 교리로부터 출발하여 19세기 웨슬리안 성결운동을 거쳐 오늘의 한국 성결교회에까지 맥을 형성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전통은 단지 웨슬리안 성결론자들만의 독백이 전혀 아니었다. 19세기의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에서도 역시 전통은 보편적으로 강조되고 있었다. John R. Rice 중생과는 구별되는 성령세례의 경험을 강조한 웨슬리안 전통에 속하지 않는 유명한 인물들로서 D. L. Moody, C. I. Scofield, R. A. Torrey, Charles Spurgeon 등의 예를 들었다.41)

  그런가 하면 Vinson Synan 「세계 오순절성결운동의 역사」(The Holiness Pentecostal Tradition)에서 성령세례 체험의 교회사적 전통성을 힘있게 강조하였다. 책제목에도 나타났듯이 그가전통’(tradi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회심 이후에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성결-오순절운동의 기본 전제가 교회사에서 서방교회의 견신례(Confirmation) 기원이 같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사제가 견신례를 받는 사람에게 안수할  성령이 임한 것은 실제적일 뿐만 아니라, 성례전적인 2차적 축복(the Second Blessing)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2 축복 전통은 카톨릭과 성공회의 신비주의적 전통으로부터 웨슬리의 완전 성화의 체험을 거쳐, 성결운동 Keswick 운동 그리고 근대 오순절운동의 출현으로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분명한 노선이라는 것이다.42)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성령세례라고 부르는 체험의 핵심은 최소한 초대교회의 오순절 사건 이후 오랜 동안 교회의 공식적 예전의 일부분이었다고 있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약교회가 성령의 권능과 은사 가운데 경험했던 것들을 웨슬리안 성결론자들과 오순절주의자들을 포함한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지도자들이 현대 교회를 위해 재발견한 것이 된다.43)

  성령세례에 관해 정교회(Orthodox Church) 전통적인 신념을 살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일반적인 정교회의 신념에 의하면 성령은 이미 물세례받은 신자 안에 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충만히 받기 위해서, 다시 한번 성령으로 새롭게 나기 위해, 고통과 시련을 인내하거나 그들의 사역으로 믿음을 연단받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크리스천의 삶에 있어서 번째 은혜의 단계는 바로 성령세례인데, 이는 구주와 주님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내가 살고 있다고 하는 더욱 확신을 성령의 조명을 통해 의식하는 관문이다. 체험에 의해서 성령을 받는 자는 성령에 의해 인침을 받는다는 것이다.44) 이처럼 정교회의 역사성에 근거한 이차적 축복’(the Second Blessing)으로서의 성령세례에 대한 전통 역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노선에 서있는 이들에게 풍성한 교회사적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45) 이처럼 중생과 구분되는 성령세례의 경험을 강조하는 노선은 얼마든지 신학적 전통성을 확인할 있는 것이다.

  (2) 정결과 능력을 얻는 경험이다.

  Wesley로부터 출발한 완전 성화의 교리는 순간적인 체험을 통하여 신자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성으로부터 정결하게 씻음을 받게 되고, 원동력은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과 봉사의 승리하는 삶을 가능케 해준다고 하였다.46) 이같은 전통적 입장에 새로운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선구자인 Phoebe Palmer 통해능력으로서의 성령세례에 대한 강조가 많이 부가되었다. 이렇게 하여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특성은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 강조하는 데서 찾게 된다.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성령세례론이 한국교회, 특히 초기 성결교회에 접맥되는 과정에서 크게 영향을 주었던 책은 Thomas Cook New Testament Holiness, A. M. Hills Holiness and Power, George D. Watson A Holiness Manual 등을 대표적으로 있다. 책의 저자들은 한결같이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정결에 대한 해석에서도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전통인죄성제거설’(Eradication)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점을 있다.

  ‘죄성제거설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핵심에 속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었다 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으로 이루어진 영적 사실(spiritual truth) 내용이기 때문이다( 6:1-7; 5:24; 6:14). 사실에 대해 믿음으로 고백하게 당연히죄성제거설 성립될 밖에 없다.47) 경험의 차원은 뒤의 문제이다. 우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승리의 사실을 바로

  닫고 고백하는 일이 중요하다. 실제적으로 죄의 유혹을 지속적으로 이기는 삶의 경험은 우리가 영적 사실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 성결교회 내에서 김상준, 이명직, 김응조 등의 저술들, 그리고 <활천>, <성결> 등의 정기간행물들을 통하여 전통이 계승되었다. 현재 중생 이후의 이차적 축복으로서의 성결 혹은 성령세례, ‘죄성제거설로서의 성결론, 그리고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관념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구세군, 나사렛성결교회 , 한국의 웨슬리안-성결 그룹 교단들의 공식적인 교리로서 채택되어 있다.

  (3) 성령세례의 경험의 차원은 반복될 있다.

  한영태는 성령세례가 구속사적인 면에서는 반복될 없는 사건이지만, 그러나 경험적인 차원에서는 신자들의 경험 속에 반복되어지며, 체험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48)

  John R. Rice 세례란 담그고, 가라앉히고, 덮고, 압도하고, 적신다는 등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 그것은시초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 성령세례 받은 사람이 전에 받은 것처럼 번째 성령세례를 받지 못할 논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49) 그리고 박명수는 성화의 단계가 중생과 성결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좋은 구조이지만, 이것을 지나치게 도식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개성을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모든 종교 체험을 언제나 단계로 고정시켜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견해이다.50) 

  그러므로 영적 사실(spiritual truth) 차원과는 달리, 경험의 차원에서의 성령세례는 얼마든지 한번 이상 경험될 있다. 물세례야 당연히 그리스도인된 표식으로서 일생에 한번 받으면 충분하다. 이상 재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성령세례의 경우를 , 먼저 영적 사실의 차원에서는 일회적으로 중생과 연관지어 간결하게 설명을 마칠 있다. 그러나 한편 경험의 차원에서는 반드시 일회적이어야 한다고 제한할 필요가 없다.세례라는 말의 용법상, ‘성령에 충만히 세례되었다’, 또는성령세례를 받았다 표현을 반복적으로 쓰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4) 분명히 인식될 있는 경험이다.

  성결교회의 전통은 육감적(肉感的) 체험이라든가 방언이나 예언 등의성령의 나타남’(manifestation of Holy Spirit)으로는 성령세례 받은 증거를 확인하지 못한다는 입장에 분명히 서있다. 이같은 거부의 경향은 1930년대 백남주, 유명화 등의 신비주의 운동과 방언을 강조하는 오순절주의자들의 내한(來韓) 더불어 시작되었고, 1960년대 이후에는 순복음교회 성령운동의 일부 극단적인 면에 대한 반대와 신학적 비판으로 인해 고조되었다. 순복음교회의 성령운동은 육감적 또는 가시적(可視的) 체험을 중시하는 경향성을 확대시킴으로 인해, 자칫하면 말씀에서 떠난 신비 체험 중심의 신자들을 양산(量産)시킬 있다는 지적이 높았다.51)

  그러면 성결교회는 성령세례를 경험했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했는가? 물론 죄에 대한 자백과 온전한 헌신은 경험을 얻기 위해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신자 편에서의 일이다.52) 그런 이후에 경험을 얻는 순간을 인식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은 믿음이라고 가르쳤다.53) 이때 신자의 영혼 속에성령의 증거 뚜렷이 인식됨으로서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충만한 확신을 얻게 된다는 것은 웨슬리 이후 웨슬리안 성결론 전통의 확고한 신념인 것이다

  6. 닫는

  현대 웨슬리안 성결론의 바람직한 나아갈 길에 대하여 우리는 그동안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교훈들에 착념해 왔다; 순간적인 성결 체험의 차원만이 아니라 성화의 점진적인 면에 대해서도 강조되어야만 하며,54) 성결의 소극적인 차원인죄성의 제거보다는 적극적인 차원

  하나님 형상의 회복 대한 강조를 많이 해야 것이다.55) 그리고 특히 현대의 웨슬리안 성결론은 성령에 대한 이해를 기독론과의 연관속에서 다루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래서그리스도와의 연합모티브에 중점을 그리스도 닮기’(Christlikeness)로서의 성결론을 강조하는 경향이 점차 짙어지고 있다는 등을 중시해야 한다는 등이다.56) 

  성령세례와 연관지어죄성제거설 경험의 순간성이 강조되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경험 이후 지속적으로 범죄의 유혹으로부터 승리하는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속적 승리의 길은 성령의 지속적인 인도와 통치를 받는 삶에 있다( 5:16-26). 이런 점에서 교리의 실제적 구현은성령의 ()되심’(Lordship of Holy Spirit) 있다고 본다. ‘성령의 주되심이란그리스도인의 삶과 복음 전파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위격으로 신자 안에서 인격적으로 인도하시는 사역”57)이라고 필자는 정의한다. 신자가 순간마다 성령의 임재를 의식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살아갈 , ‘죄성제거설 복음적 이상은 우리의 속에 충분히 구현된다.

  이상과 같은 점에 대한 성결론 발전의 노력과 함께, 그러나 역시 성결교회 성결론의 가장 강조점은 순간적 성령세례 경험의 중요성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 초기 성결교회의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은 한결같이 성령세례 또는 성결의 순간적 경험에 대한 강조를 주저하지 않았다. G. D. Watson, E. A. Kilbourne 등의 선교사들, 그리고 김상준, 이명직 등을 비롯한 많은 성결교회 목회자들의 저술 속에서 우리는 한결같이 은총의 순간적 경험이 소개된 것을 본다. 이같은 관점에서 전성용은 말하기를, “순간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강조는 성결교회의 고귀한 전통으로서 계승되고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58) 하였다.

  그동안 한국교회와 신학계는 혼잡한 성령론 논쟁으로 인해 곤란을 겪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가 절실히 요청하고 있는 것은 성령론 논쟁의 갈등을 극복하고 이해와 일치의 정신속에서 도래하는 복음적 성령의 능력인 것이다. 5장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결교회 성령세례론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 정리된 성령세례 경험의 가지 특징은 교회사적인 전통성과 함께 신학적 합리성을 충분히 인정 받는다. 이제 성결교회는 교단의 전통적인 성령세례 교리가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발휘할 있도록, 능력의 경험에 대해 연구하며 이를 힘껏 전파하는 일에 더욱 진력해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