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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THEOLOGY

(스크랩) 내면의 상처치료


 

 

 

사단이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생각하며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낮은 자존감이다.

낮은 자존감은 열등감, 자신을 부족하게 느끼는 것,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는 감정들이다.

자신을 스스로 무시하며 비하하며 학대하며 스스로 고통을 받는 감정들이다.

개인적으로 놀라운 영적 경험과 믿음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감정들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억압하고 있다.

 


그러면 낮은 자존감은 어떤 파괴력을 갖고 있는가?

 


① 낮은 자존감은 잠재력을 마비시킨다.

② 낮은 자존감은 비전, 꿈을 파괴한다.

③ 낮은 자존감은 대인관계를 해를 끼친다

④ 낮은 자존감은 하나님을 위한 사역을 방해한다.

 


각자의 자존감을 형성시켜 주는 것은 외부의 세계와 내부의 세계로부터 온다. 외부에서 우리를 평가해 주는 것이 낮은 자존감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준다. 가족들에게 반사된 자기 모습과 평가가 내가 누군가라는 자존감을 형성한다. 그래서 부모의 태도가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어렸을 때 자녀들을 귀하게 키우지 않는 자녀들은 평생을 낮은 자존감으로 고생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주 중요한 타자(very significant others)이다. 세상에 자녀들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만나서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할 때 자녀들은 당연히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 “사랑받고 있다.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것들이 말없이도 전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녀들에게 부모가 언어로 폭력을 행사하고 저주와 욕으로 비하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낮은 자화상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누가 자신을 사랑해주어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부모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누가 나를 사랑하겠어..어떻게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겠어?” 하면서 사랑을 주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한다. 또한 자기를 비하하기 때문에 결혼을 할 때에도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해서 아주 형편없는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문제가 있는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결혼도 한다. 자신도 가치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고 불가능해 보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편하게 생각한다.

 


또한 우리의 자존감은 잘못된 자신의 내부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아담의 자손으로서

유전된 죄의 뿌리가 우리들 자신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낮은 자존감은 어떻게 치유 받을 수 있는가?

 


낮은 자존감은 개인의 가치와 평가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때만이 회복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이렇게 질문해보아야 한다.

 


무슨 권한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깊이 사랑하는 존재를 비하하고 멸시하는가?

무슨 권한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높이 대우해주신 존재를 비하하고 멸시하는가?

무슨 권한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높이 가치를 부여한 존재를 비하하고 멸시하는가?

무슨 권한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완전하게 필요를 채워주시는 존재를 비하하고 멸시하는가?

무슨 권한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세심하게 계획하신 존재를 비하하고 멸시하는가?

무슨 권한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기뻐하시고 사랑하는 존재를 비하하고 멸시하는가?

무슨 권한으로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신 값진 존재를 멸시하고 비하하는가?

무슨 권한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훌륭한 예술품으로 만든 자신을 비하하고 멸시하는가?

 


우리 자신에게는 그러한 권한이 없다. 만일 계속 자신을 비하하고 무시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솜씨에 대하여 비하하고 무시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길을 배워야 한다. 자신에 대하여 소중한 존재, 가치 있는 존재,

창조적인 예술품으로 대하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남을 귀하게 여기고

남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길도 배워야 한다.

 


낮은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칫 겸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것은 겸손과 다르다. 진정으로 겸손한 자들은 자기에 대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점수를 주며 사는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의 외모는? 나의 학벌은?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근거해서 점수를 준다. 하지만 낮은 자화상을 치유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점수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잘 하느냐? 외모가 어떠하냐? 우리가 얼마나 가졌느냐? 에 따라 평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점수를 주는 것은 자녀에 대한 존재에 대한 점수이다.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존재에 근거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생명에 근거한 것이다. 생명에는 값이 다를 수 없다. 우리가 자신을 평가하는 것도 이렇게 하나님이 존재와 생명에 대하여 주시는 점수로 평가해야 한다. 그럴 때 나 자신이 얼마나 귀한지...값으로 매길 수 없는 귀한 존재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 자신을 볼 때만이 낮은 자화상은 치유된다. 또한 자신에 대하여 낮은 자화상을 갖게

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풀어놓아주어야 한다. 또한 낮은 자화상을 갖게 한 환경들도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감사함으로 수용하고 받아드려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귀한 존재로 다시 서는 것이

인생을 파괴하지 않고 값지게 살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제1강 내면의 상처와 치유

1. 내면이 중요합니다.


1) 사람의 삶의 질은 외적 환경보다는 내면에 의해 결정된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 사람들은 외적인 환경을 만들면 삶이 행복해 지는 것으로 생각해서 그것을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정작 그들의 삶의 질은 외적인 부분보다는 내적인 부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2) 내적인 건강이 진정한 건강이다.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 
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옵 
시며”(엡 3:14-16). 
- 사람들은 외적 건강과 안녕에는 몹시 예민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 
만 정작 내면적 건강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건강은 내면적 건강이 
다.


3)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에 관심이 많으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신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 
라”(빌 4:7). 
“주께서 네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 
라”(살후 3:5).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 1:2).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환경의 모든 것을 다 바꾸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지만, 자녀 
인 우리의 삶을 인도하기 위하여 환경이나 외적인 요인보다는 마음을 인도하시고, 생각을 
지키시는데 중점을 두신다.


4) 예수님의 사역의 중점은 마음을 고치는데 있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
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사 61:1).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사역은 ‘Preaching, Teaching, Healing’ 이 세 가지의 
사역인데, 이 사역의 핵심은 물론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영적으로는 ‘대속’을 통하여 
구원하시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그 구원은 ‘마음을 고치는 것’, 즉 ‘마음에 있는 상처를 
고치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2. 상처란 무엇인가 ?


1) 상처란 상처 난 감정이다. 
- 감정에 상처를 받고 그것이 적절하게 해소가 되지 못했을 때 나는 이것을 덮기 위한 방 
어기재를 갖게 되고 그것이 나의 감정을 왜곡시키고 뒤틀리게 하며, 원치 않는 증상들이 나 
오며, 나의 전 존재를 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2) 상처란 내면의 평강을 빼앗는 것이다. 
- 상처는 감정에 받는 것이기에 상처받은 사람의 경우 내면에 평강이 없다. 혹시 감정적으 
로 무감각해져서 느낌이 없는 쪽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할 수 있는 데, 이것은 평강이라고 말 
할 수 없다.


3) 상처는 관계의 장애를 가져온다. 
-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 있는 가장 심각한 현실적 문제는 관계의 장애이다. 상처가 있는 사 
람에게 두드러진 특징은 ‘이기적’인 것과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① 하나님과의 관계 장애 : 영적이지 못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신앙 
② 자신의 내면과의 관계 장애 : 자학, 자고 등등의 잘못된 자아 인식 
③ 다른 사람과의 관계 장애 :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회피하는 것. 건강하지 못한 관계 
④ 자연과의 관계 장애 : 일이나 건강에 문제가 있음.


4) 상처를 가지고 계속 살게 되면 결국은 ‘생명력(Vitality)’을 잃게 된다. 
- ‘생명력’은 우리의 삶의 질을 재는 척도인데, 상처는 바로 이 생명력을 감소시킨다. 
<생명력 = 건강한 삶의 의욕 = 적절한 자존감 = 감동 있는 평강(행복감) = 영적 능력>


3. 상처의 원인들


1) 근원적 원인 : 원죄 
모든 인간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잠재적으로). 
-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면서 모든 상처를 모든 인간이 다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다. 
- 그러나 주변 환경의 영향이나 문제로 이 상처가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 치유 방법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거듭남)


2) 간접적인 원인 
- 자연적인 주변 환경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세상에 가난과 질병, 그리고 각종 고통이 들어 왔다. 
환경적 고통은 그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 
특히 어린 시절에 더욱 치명적이다. 
* 치유 방법 : 그 열악한 환경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이 아님을 성령 안에서 깨닫 
고, 이 고통까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음을 체험하여 아는 것. 
- 가계에 흐르는 저주(조상의 유전) : 
조부나 그 이상의 선대에서 영적이나 반인륜적인 죄를 범한 경우 그것이 그 후손에게 저주 
가 되어 내려간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 태어난 사람은 상처를 받을 수 있는 환경 가운데 태 
어난 것이다. 
유전적인 질병이 있어서 그것이 상처가 된다. 
원인 모를 열등감이나 정신적 질환, 그리고 각종 중독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러면서 이것이 
상처가 된다.


* 치유 방법 
①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결코 숙명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써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야 한다. 
- 성격의 차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의 성격이 아닌 다양한 성격으로 만드셨다(시 139:13-14). 
이 다양성은 축복이지 결코 저주나 죄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이기심)가 다른 사람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상처를 주고 받 
게 되었다.


* 치유 방법 
① 성격이 서로 다른 것이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아는 것. 
② 나하고 다른 그 성격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는 것(성령의 역사).


3) 직접적인 원인 
- 상처 있는 부모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은 상처 있는 부모이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자식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가깝고, 힘이 없는 상태에서 받은 상처는 그대로 깊은 상처가 된다(태아기, 영아기, 유아기,
학령기).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유전적으로 전이되는 상처도 있다. 
* 치유 방법 
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상처의 흐름을 끊어야 한다. 
② 성령의 능력 가운데 부모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③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해야 한다(은혜체험). 
- 주변 사람들(형제, 친척, 친구) 
우리에게 있는 상처를 가중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나와 분리할 수 없는 관계일 경 
우 더욱 그렇다. 
비교를 통한 상처를 내게 줄 수 있다. 
언어를 통하여 내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폭력적이거나 폭압적 행동으로 상처를 줄 수 있다. 
* 치유 방법 
① 그들의 행동이 상처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 나의 상처 때문임을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②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 
- 배우자, 혹은 자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현실에서 보다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상처 많은 배우자이다. 
(혹은 자녀이다. 
배우자가 상처가 많아서 나의 상처를 불러일으킬 경우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가 훨씬 심각 
하게 되어 나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배우자는 때로 치유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지 못할 때는 그만큼 상처 
를 많이 받게 된다. 
* 치유 방법 
① 배우자를 통해 얻으려는 잘못된 기대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② 성령의 능력 가운데 배우자의 내면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그를 위한 치유자가 되 
어야 한다. 
③ 진정한 가족이고 배우자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해야 한다(은혜체험). 
- 기타 (교회, 직장 동료, 친구, 이웃 등등) 
이들은 우리에게 있는 상처를 자극하는 일종의 환경과 같은 것이다. 본질적인 상처의 원인 
이 될 수 없다. 
* 치유 방법 :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고 그들을 용납해야 한다.


4. 상처의 종류들


1) 거절감 
- 모든 상처의 출발이다. 
- 관계의 장애를 가져온다.


2) 굶주림(결핍) 
- 관계에 장애가 생기면서 오는 상처로서 애정 결핍이다. 
- 집착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3) 분노 
- 채워지지 않는 데서 오는 상처이다. 
- 분노에 대하여 억압이 시작되는 데 이것이 계속적으로 내면을 망가뜨린다.


4) 두려움 
- 분노가 표출되거나, 혹 내면에서 표출했을 때 두려움이 엄습한다. 
-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하여 온갖 두려움을 느낀다. 
* 이러한 상처들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자존감(Self-Esteem)’을 낮게 만들고, 이로 인해 다 
음의 두 가지 뚜렷한 상처 있는 내면을 갖게 된다.


5) 열등감 
-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 가장 심하게 느끼는 상한 감정이다.


6) 죄책감 
-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 자신을 정죄하며 더욱 자신의 자존감을 끌어내리는 상한 감정이 
다. 
* 상처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상처가 다른 상처를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더욱 나쁜 
쪽으로 몰고 간다.


5. 상처의 발전 과정 
“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 
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사 61:1). 
여기에서 주님의 복음의 사역이 ‘마음이 상한 자(brokenhearted)’를 고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이 상한 자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① 상한 마음 
- 상처받은 모든 감정을 가진 마음들을 말한다. 자각 증세가 있으나 갈등하면서 지내고 있 
는 상태를 말한다. 
- 치유 방법 
이 상한 마음에 대하여 잘 정리해 준다(상처의 거품을 제거해 준다). 
상처받은 반대쪽의 영향을 주도록 한다. 특히 치유의 능력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지속적으로 덮어주면 치유가 일어난다(to bind up). 
② 포로 된 마음 
- 상처를 올바르게 해결하지 않고 방어 기제(defence-mechanism)를 사용하여 그 상처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상태이다. 
- 마귀의 영향을 심하게 받고 있는 상태이며, 각종 집착 등이 나타나고 있다. 
- 치유 방법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됨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집착에서, 잘못된 자기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움을 선포해야 한다 (to proclaim). 
③ 갇힌 마음 
- 이미 정서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장애 상태에 와 있는 상태이다. 
- 심한 우울이나 강박관념 등에 잡혀있을 수 있다(마귀의 영향을 심하게 받을 수 있다). 
- 영적으로 귀신들림이 있을 수도 있다. 
- 치유 방법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치유의 빛을 그 내면에 비추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모든 속박을 풀어야 한다(to release from darkness).

내적치유 제2강 거절감과 분노   
제2강 거절감과 분노

<거절감>
1. 거절감(rejection)이란 무엇인가 ?
1) 거절감이란 과거에 거절 받은 아픈 감정이 부적절하게 작용하는 마음이다.
과거 부당하게 거절당하거나 버림받은 경험이 감정의 형태로 속에 남아 있어서 유사한 상황
이나 혹은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부적절하게 튀어나오는 것이 거절감이다.
2) 모든 상처의 출발은 이 거절감인 경우가 많다.
거절감은 상한 마음이 되는 첫 출발이다. 어떤 형태든지 감당할 수 없는 거절이나 버림받음
을 경험했을 때, 그것이 내면의 상처가 되면서 다른 상처를 불러일으킨다.
3)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더 쉽게 거절을 느끼고 그로 인해 더 많은 거절감에 시달린다.
상처가 나름대로 악순환하는 이유는 이 거절감 때문이다. 상한 마음의 소유자는 더 많은 거
절감을 느끼고 그것이 더 심한 상한 마음의 상태로 몰아가게 된다.

2. 거절감을 갖게 되는 원인들
1) 원죄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이 거절감의 시작이다(창 3:23-24).
-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거절당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지만, 인간은
거절당했다는 자체만으로 거절감을 느낀다.
- 어린 시절부터 모든 인간은 소외되고 버림받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 부모가 거절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 자녀에게 유전된다.
2) 경쟁적인 환경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우리에게 시작된 것이 경쟁이고, 이 경쟁은 모든 사람에게 거절감
을 안겨 주었다.
- 형제간의 경쟁과 따돌림, 부모의 편애가 거절감을 갖게 한다.
- 사회에서의 경쟁이 거절감을 갖게 한다(경쟁에서 이기든 지든지 관계없이 경쟁 자체가 거
절감을 갖게 한다).
3) 상처(거절감)를 가지고 있는 부모
부모는 자녀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있든지, 없든지). 그러므로 상처가 있는 부모는 자
녀에게 거절감을 줄 수 있다.
① 원하지 않는 임신과 남녀 차별 - 태중의 거절감과 출생시의 거절감.
② 부모의 부적절한 거절 -일관성 없는 행동 / 지나치게 권위적인 아버지, 지나치게 신경질
적인 어머니
③ 부모의 잘못된 배변 훈련
④ 부모의 과잉보호
⑤ 부모의 편애(편애를 받는 쪽이나 받지 못하는 쪽 모두 다 거절감을 가질 수 있다. )
⑥ 부모의 조건적인 태도 - ‘하면’ 보다는 언제나 ‘하지 못하면’이 더욱 깊은 상처를 준다.
* 부모와의 이별은 자녀에게 깊은 거절감을 준다(사별, 이혼에 의한 헤어짐, 환경적인 헤어
짐, 등등).
4) 주변 사람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거절을 했을 때 우리는 심한 거절감에 시달리게 되고 상처
를 입는다.
- 이 경우에 대부분은 원죄와 어린 시절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거절감이 심하게 다시 느껴
지는 것이다.
- 거절감 가운데 가장 심한 거절감은 배신감이다.

3. 거절감의 증상들
* 우리 인간의 마음에는 벽이 있다. 이것은 자신의 내면을 지키기 위해서 있는 마음의 벽이
다(개성, 자아). 사람들은 이것을 의지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마음의 벽이 하나님
의 다림줄로 재어 보면 많이 기울어져 있어서 어느 날 무너지기도 하고, 또 그것에 의해 삐
뚤어진 반응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암 7:7-9).
이 삐뚤어진 마음의 벽은 사단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파괴하기 위하여 숨어서 노리고 있
는 가장 위험한 곳이며, 이것은 마치 집안에 벽에 손을 대었다가 뱀에 물리는 것과 같은 것
이다(암 5:19).
* 이렇게 우리의 마음의 벽이 삐뚤어진 이유는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권위의 존재
(Authority Figure)가 잘못된 영향을 우리에게 주고 바르지 못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유아기) 잘못 되어진 이 관계는 그의 평생을 힘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겔 18:2).
→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권위의 인물로는 누가 해당되겠습니까?
<거절/Rejection>
1. 감정적인 경우(Emotional)
1) 슬픔 - 슬픈 상태가 반복적이고 돌발적으로 나타남
- 슬픔은 누적된 거절감에서 오는 아픔을 대치한 감정이다.
- 슬픔은 일종의 감정의 순환기능 장애이다.
2) 자기 연민(Self-Pity)
- 자기 연민은 나쁜 습관이면서 동시에 죄이다.
- 거절을 경험하는 상황이 되면 언제나 도망치는 하나의 방어기재이다.
- 타인을 조작하여 스스로 자기 연민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든다.
3) 자기 증오(Self-Hatred)
- 타인에게 거절당한 상처 때문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거절하는 것이다.
- 또 다른 거절감을 맛보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이다.
-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자신을 포함해서 자기와 연관된 모든 것을
증오한다.
4) 실의(Depression)
- 사회적인 활동에서 움츠러들면서 모든 관계에서 스스로 단절된다.
- 모든 것이 슬프고 희망이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우울한 사고만을 한다.
- 죄의식, 자기 비하, 자기 평가 절하 등이 나타난다.
- 때때로 불면증이 나타나며 의욕이 상실된 상태가 지속된다.
5) 무관심
- ‘정열이 없이 존재함, 정신적인 나태함, 또는 감정의 부재’라고 표현될 수 있다.
- 거절과 실패의 기억 때문에 나타난 일종의 방어 기제이다.

2. 지적인 면(Mind)
1) 열등의식
- 삶의 현장에서 여러 번 거절당한 상처는 지적인 영역에서 스스로를 열등하게 인정하게
한다.
- 자기가 열등한 여러 가지 이유들을 늘 수집해 쌓는다.
- 열등의식은 이러한 상태가 오래 방치되면서 굳어진 상태이다.
2) 불안정
- 사랑의 결핍과 어린 시절에 경험하는 거절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이다.
- 한곳이나 하나의 사고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고의 방황상태이다.
3) 실패 의식
- 권위 있는 부모나 교사 등으로부터 지속적인 무가치한 대접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것이
다.
-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로 강박관념에 잡히게 된다.
-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고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4) 죄의식
- 내면이 상처로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등이다.
- 어떤 기준에 이르지 못하고 실패한 경험이 누적되면서 나타난 내면의 상태이다.
- 심한 자책감에 시달릴 때가 많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죄의식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3. 영적인 면(Spiritual)
1) 침침함, 죽어감, 꺼짐
- 영적인 부분에 대하여 스스로 관심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 반복적인 거절감의 상처가 자기 존재 속에서, 특히 영적인 면에서 문제를 일으키면서 하
나님과 단절을 해 나가는 과정이다.
2) 낙심
- 신앙생활 가운데 자주 낙심을 하는 것은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영적 장애이
다.
- 영적 생활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간헐적으로 계속되는 장애이다.
3) 실망
- 영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버림받은 자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다.
- 영적인 패배상태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것이다.

4. 성경에 나오는 거절감을 가진 사람들
1) 모세
- 모세는 환경적으로 거절감을 갖게 된 사람이다.
출생시의 거절감
유아시절의 경험(3개월간 숨겨짐, 나일강에 버려짐)
바로의 궁궐에서 소외를 심하게 경험 / 다른 민족 속에서의 갈등
- 40세 때의 사건은 그의 거절감을 심하게 강화 시켰다(출 2:14).
-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대인 공포증이 있었다(출 4:10).
- 이스라엘에게 받은 거절감은 분노로 발전했다(민 20:10, 시 106:32-33).
* 두 가지 중요한 사실
- 대부분의 거절감은 출생시와 유아시절에 갖게 된다.
- 상처의 치유는 상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일하지 못하도록 은혜로 덮어놓은
것이다. 언제고 다시 튀어나올 수 있다.
<분노하는 마음>

1. 분노하는 마음이란 무엇인가 ?
1) 분노하는 마음이란 마음속에서 부적절한 분노가 자주 일어나는 마음으로서 그것 때문에
내면적으로, 관계에 있어서 고통 받는 마음이다.
- 권위의 존재로부터 부적절한 대우를 받았을 때에, 혹은 권위의 존재와 잘못된 관계 속에
있을 때, 이에 대하여 반항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분노이고 이것은 부적절한 분노가 된다.
그러므로 분노는 상한 마음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표출로서 자신의 내면과 관계에의 어려
움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2) 분노하는 마음은 분노를 억압했을 때 갖게 되는 것이다.
- 자신보다 힘센 대상에 대하여 분노할 때 억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억압은 분노를 자신의
내면에 쌓아두는 것일 뿐, 적절한 처리가 되지 못한다.
3) 분노하는 마음에는 반드시 두려움이 뒤따른다.
- 억압되었던 분노를 발하거나 혹은 속으로 분노했을 때 이제 이 분노에 대한 벌을 받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뒤따르고 그러므로 분노하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2. 분노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원인들
1) 원죄
죄의 결과로 하나님과 단절되면서 인간은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마음을 계속 갖게 되고 이것
은 인간에게 있는 지속적인 죄와 분노의 원인 된 것이다.
-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면서 갖게 된 버림받은 마음과 굶주린 마음이 분노의 원인이 되었
다(가인의 경우).
- 원죄의 유전 가운데에는 분노의 유전이 뚜렷하게 들어가 있다(가인의 후예/창 4:23-24).
2) 가정환경
① 분노하는 부모 : 분노는 내리 분노이다. 왜냐하면 억압된 분노는 자기보다 힘센 대상에
게 가졌던 분노의 감정을 억압한 것이기에 자기보다 약한 대상인 자녀에게 표출하게 되고,
자녀는 역시 그 분노에 의해 분노를 갖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억압하면서 분노하는 마음
을 갖게 되는 것이다.
② 결손 가정 : 부모가 없음으로 인해서 오는 어려움을 겪을 때, 막연한 대상에 대하여 분
노를 품게 된다. 그러나 그 상황이 분노할 상황이 아니기에 억압을 하게 된다.
③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 : 부모가 사랑을 주지 않으면 굶주림이 오고 필연적으로 분노를
갖게 된다. 그러나 부모이기에 억압하거나 망각 속에 넣을 수밖에 없다. 특히 부모가 편애
를 하는 경우 분노가 심하게 된다.
④ 왜곡된 사랑 : 왜곡된 부모의 사랑은 대부분 자녀를 무시하고 자기 식으로 사랑하는 것
이다. 이런 경우 자녀의 마음속에 직접적인 분노가 있을 뿐 아니라 거절감과 굶주림에서 발
전한 분노를 갖게 된다. 그러나 부모가 힘이 있으므로 억압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분노하는
마음이 된다.
3) 주변 사람들
유아기의 거절과 억압은 분모의 마음을 갖게 하지만, 그 분노는 나중에 만나는 사람들에 의
해 강화될 수 있는 상한 마음이다. 즉, 주변에서 거절과 억압을 자꾸 느끼게 할 때 분노가
강화되는 것이다.

3. 분노하는 마음의 증상들
* 권위의 인물이 부적절하게 주는 영향력에 대하여 수동적이 아니라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분노의 감정이 그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반항/Rebellion>

1. 감정적인 경우(Emotional)
1) 적개심
- 분노가 그의 내면에서 개성 발달의 장애로 나타난 경우이다.
- 분노가 적절히 해결되지 못하고 내면에 깔리는 것이 반복되면 그것은 내면에서 과잉-억
압의 악순환을 하다가 삐뚤어진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 이러한 감정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것이 적개심이다.
2) 자만심
- 노골적인 공허함과 자기 중심주의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 거절당한 상처에 대하여 상대를 얕보거나 평가절하하는 식으로 덮는 방어기재이다.
3) 비속화(궤변)
- 상처를 직시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변형시키는 궤변적인 방어기재이다.
- 여러 가지 잡다한 것을 섞음으로써 거절감에서 오는 상처를 덮으려는 시도를 한다.
4) 의기 양양(Elation)
- 실의(Depression)보다 더 심한 같은 부류의 방어기제이다.
- 실망과 저조함을 견딜 수 없어서 인위적으로 계속 자기 기분을 최고조로 올려놓는 행동
이다.

2. 지적인 면(Mind)
1) 우월의식
- 열등의식을 감추거나 보상하기 위한 방어기재이다.
- 스스로 우월한 것들을 자기 안에 수집함으로써 그런 의식을 만들어 간다.
- 남을 경멸하거나 비하함으로써 모든 관계가 단절되는 그런 피해를 가져온다.
2) 경쟁의식
- 편애에 의한 거절감과 결핍에서 오는 상처가 굳어진 상태이다.
- 항상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바닥에 깔고 있는 의식이다.
- 다른 사람의 어떤 것도 인정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보인다.
3) 군림
- 거절 받지 않기 위해 비정상적인 관계만을 맺으려는 것이 굳어진 상태이다.
-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굳어진 내면 상태이다.
- 관계 맺는 방식이 일종의 횡포이다.
4) 견고성(완고함)
- 심한 열등감에서 나오는 공격적 반응이다.
-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다는 것은 자기가 무너지는 것이라는 내면적인 의식 상태의
표출이다.
- 고집불통, 배우기를 싫어하는 것 등이 다 여기에 속한다.

3. 영적인 면(Spiritual)
1) 망상
- 자기기만이 심화될 경우 나타나는 것으로 영적인 장애이기도 하다.
- 일어나지도 않고 단서도 없는데 상상 속에서 단정해 버리는 그런 내적 문제 상태이다.
- 피해망상, 의처증, 의부증 등이 여기에서 발전해 나간다.
2) 분개 및 쓴 뿌리
- 용서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 분개이다.
- 이것이 우리 속에 자리 잡을 때 쓴 뿌리가 된다.
3) 비판적 성향
- 비판적 성향은 자기 연민의 공격적 변형이다.
- 타인을 비참하게 만듦으로서 자기 비하를 감추려는 방어기제로 영적인 피해를 가져온다.
4) 지배욕과 소유욕
- 심한 거절감에서 온 상처에 대한 공격적인 반응으로써 지배욕이 소유욕을 유도하고 소
유욕이 지배욕을 부추긴다.
- 자기 인생에 대한 비하에서 나온 상처 난 감정으로 남의 인생을 대신 살려는 상한 감정
의 표출이다.
5) 조작
- 사랑을 흉내 내지만 오히려 사랑을 말살시키는 악의가 있는 반응이다.
- 심한 두려움과 거절감의 상처에서 온 것으로 거짓을 통하여 배후를 감추려고 한다.
- 제한된 자기 시각 속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며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 자기가 모든 것을 통제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어떠한 대가를 주고라도 상황을 주물러야
한다는 생각에 잡혀 있다.
- 조작자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

4. 성경에 나오는 분노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1) 가인 창 4:3-8
-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으실 수 없었던 이유는 가인의 마음속에 있는 ‘죄의 소원’
때문이었다(창 4:7).
죄의 소원이란 ‘상한 심령’을 말하는 데 이것이 일종의 ‘반항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못하신 것은 그 상처 때문이었고, 결국 분노는
또 다른 거절을 경험하게 만드는 사실에 이르게 된 것이다.
- 거절감이 분노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가인을 죄에 의해 타락한 세상 사람의 대표로 볼 때, 죄의 본질은 ‘상처’인 것이다.
* 두 가지 중요한 사실
- 분노의 희생자는 반드시 소리를 지른다(창 4:10).
- 상처는 자신의 내면 속에서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내고, 상처가 많은 사람은 또 다른
상처의 사람을 만들어 내어서 세상에 상처(죄)가 증폭된다.
2) 요나
-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 행 배를 탄 것은 분노하는 마음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분노가 솟았지만, 하나님이기에 항거할 수 없고,
또 사랑하시는 것이 당연하기에 불평할 수 없어서 도망치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가 배를 타자마자 배 밑으로 내려가 깊이 잠든 것은 분노 이후에 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이 폭풍은 나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
- 니느웨가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에 분노한 것과 박 넝쿨이 말라죽은 것에 분노한 것은 억
압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 세 가지 중요한 사실
- 분노가 있는 사람은 은혜를 쉽게 잃는다(쏟는다) - 물에서 구원받은 후 요나의 분노
- 분노하는 사람은 분노 때문에 자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 죽는 것이 낫다!!
- 분노를 맞대응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을 때 분노는 힘을 잃는다 - 하나님의 사랑
내적치유 제3강 굶주림과 두려움   
제3강 굶주림과 두려움

<굶주린 마음>

1. 굶주림이란 무엇인가 ?
1) 굶주린 마음이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상처가 아니라 지속적인 애정 결핍에 의해 일어
나는 것이다.
- 거절감은 순간의 경험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굶주림은 지속적인 결핍상태에 의해서
형성되는 상처이다.
2) 굶주린 마음은 그 결핍감 때문에 느끼는 불안과 그 굶주림을 채우려는 잘못된 노력에
의한 관계 파괴, 그리고 채우지 못하는데서 오는 분노 등에 의해 고통 받는 마음이다.
- 인간은 굶주림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굶주림을 채우려고 애
쓰게 되는데, 그 과정 전반에서 또 다른 거절감과 이로 인한 분노와 불안, 두려움 등의 문
제가 나타난다.

2. 굶주린 마음을 갖게 되는 원인들
1) 원죄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면서 인간에게 찾아온 것이 굶주림이다(창 3:18-19).
-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후에 인간이 겪게 된 고통은 육신적으로 배고픈 환경만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데서 오는 굶주린 마음의 고통이었다.
- 인간은 근본적인 배고픔 속에 살고 있다(암 8:11-13). 이 근본적인 배고픔을 다른 것으
로 채우고 살려고 하지만 결국 삶의 어느 시점 에 가면 그것으로 채울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2) 가정환경
인간의 근본적인 굶주림을 채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밖에는 없다. 가정은 그런 굶주
림에 시달리지 않도록 막아주는 울타리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거절감을 갖게 함으로써 사랑
의 공급이 끊어지고 이로 인해 굶주림의 고통에 더욱 시달리게 한 경우에 심한 굶주린 마음
을 갖게 한다.
① 결손 가정 : 부모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모든 경우는 다 굶주린 마음을 갖게 만든다.
②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 : 부모가 상처에 의해 사랑을 주지 않을 때에는 굶주린 마음을
갖게 된다 (무관심, 편애에 의한 소외).
③ 왜곡된 사랑 :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하는 방식이 자기중심적이어서 자녀에
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굶주림을 경험하게 된다.
3) 주변 사람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배우자 포함)에 의해서 굶주린 마음이 생긴다기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
는 굶주림을 채우지 못하거나 더 심하게 느끼게 하는 경우가 있다.
- 굶주린 마음은 이미 상한 마음이기 때문에 쉽게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순간적으로 채워지는 것 같은 만족감이 있다가 곧 사라진다. 그러므로 더욱 치유가 쉽
지 않다).

3. 굶주린 마음의 증상들
1) 내면의 상태
-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인한 우울함이 있다. 언제나 이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 속에 살아간
다.
- 다른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또 그렇게 갈구하는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비
하한다.
- 시기심과 경쟁심에 스스로 시달리고,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 남에 대하여 속으로라도 우월감을 가져야 편하다.
2) 관계의 장애
-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갈구한다. 처음에는 굉장히 좋은 것 같으나 나중에는 사람의
진을 뺀다.
-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고 주목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받을 수 없을 때에는
무리한 행동을 하게 되고 이것이 관계를 힘들게 한다.
- 사람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굉장히 공격적이 되고 비난을 하
게 된다.
- 여러 사람이 더불어 친한 그룹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때로 심한 경쟁과 시기의
관계로 끌고 간다. - 이기적인 모습 (욕심이 많은 사람)
- 사람들 앞에서 위선과 교만을 통해 우월감을 나타내려고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갖게 한다.
- 공격적인 사람
- 질리게 하는 사람
- 되지 못하게 교만한 사람
3) 영적인 장애
- 이단이나 건강하지 못한 신앙 형태에 빠질 수 있다.
- 이적이나 현상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신앙 스타일을 가질 수 있다(기복적인 신앙).
-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 신앙의 성장이 어렵다.
- 영적인 교만이나 우월감을 과시하는 신앙 행태를 보일 수 있다.
4) 포로 된 상태
- 굶주림을 채우기 위한 잘못된 집착이 일어날 수 있다(사람, 일, 돈, 명예, 물건 등등).
- 심한 경우에는 ‘중독’이 일어날 수 있다(일, 술, 담배, 마약, Sex, 도박, 오락, Shopping,
등등).

<중독 현상>
- 몸이 피곤하고 건강을 해쳐도 계속한다.
-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 가족이나 주변과의 관계를 망가뜨리면서도 계속한다.
- 그것에 대한 생각이 항상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 그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심심하고 불안하고 어쩔 줄 모른다.
- 잠시는 의지로 끊는 것 같으나 곧 그런 상황을 찾아가고 거기에 빠져든다.

4. 성경에 나오는 굶주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
1) 야곱
- 야곱이 굶주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 이삭이 장자인 에서만을 편애한 것 때문이
었다.
- 야곱이 장자권과 축복에 대단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아버지 이삭의 축복, 얍복 나루에
서의 축복 간구).
- 야곱이 라헬과 그의 소생인 요셉을 사랑한 것은 일종의 굶주림에서 오는 집착이다.
- 야곱이 주변의 사람들과 경쟁관계에 있던 것은 굶주린 마음 때문이다.
-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고백한 것은 굶주린 마음으로 살아온 삶 때문이다(창
47:9).

* 세 가지 중요한 사실
- 아버지의 편애는 자녀에게 굶주린 마음을 갖게 한다.
-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무리한 집착을 하게 되고 그것이 인생과 관계를 망가뜨린다.
- 벧엘과 얍복 나루에서의 예배의 체험이 그 굶주림을 채울 수 있는 체험들이었다.
2) 다윗
- 다윗은 막내로 태어나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자라났고, 이것이 그에게 굶주린 마음을 갖
게 했다.
- 다윗은 부인에게 집착을 했다(미갈, 아비가일, 밧세바).
- 다윗의 자식에 대한 집착은 모두 굶주린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암논, 압살롬, 밧세바 사
이에서 난 아이).
-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건을 저지르게 된 것은 내면에 있던 굶주린 마음 때문이었다.

* 두 가지 중요한 사실
- 굶주림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고 있을 때에는 치유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성이 사라질 때는 그 상처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 굶주린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면 갈망하는 마음이 되고 그 굶주림이 하나님의
사랑의 채워지는 것이 은혜의 체험이다. / 다윗의 시편은 모두 이런 은혜 체험의 산물이다.

<두려워하는 마음>

1. 두려워하는 마음이란 무엇인가 ?
1) 두려워하는 마음이란 마음속에 부적절한 두려움이 자주 엄습하는 것으로 그것 때문에
내면적으로 평강이 없고, 관계에 있어서 고통 받는 마음이다.
- 억압되었던 분노를 발하거나 혹은 속으로 분노했을 때 이제 이 분노에 대한 벌을 받게
될 것에 대한두려움이 뒤따르고 그러므로 분노하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 그러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분노 다음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사실 상처가 많은 내면의
사람은 다 이러한 두려움에 자주 잡힌다.
2) 두려움은 내면을 지탱하는 어떤 것이 무너져 내릴 때 느끼는 감정이다.
- 사람은 자아를 지탱하고 있는 의지나 열정 등이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부담이나 실패,
좌절, 거절감등에 의해 내면이 무너질 때가 있다. 이때 매우 심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2.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는 원인들
1) 원죄
죄의 결과로 사망이라는 엄청난 벽을 모든 인간은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지속적인 실패
와 좌절을 맛보면서 인간은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나무 그늘에 숨은 것은 두려운 마음 때문이었다.
- 원죄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두려움의 부분이다.
2) 가정환경
① 상처를 자주 주는 부모 : 부모가 자주 상처를 주는 언사를 하게 되면 자녀는 거기에서
어떤 버림받음과 상처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특히 부모가 분노를 자녀에게
퍼 부을 때에는 자녀는 내면적으로 동일한 분노를 느끼면서 동시에 그 분노에 대한 두려움
을 느끼게 된다.
② 심한 싸움이 잦은 부모 : 부모가 서로 심하게 싸울 때, 자녀는 상당한 공포를 느끼고, 특
히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데서 오는 두려움이 심하게 된다. .
③ 불안정한 가정환경 : 가정이 여러 가지 이유로 안정감이 없을 때(아빠의 장기간 출장과
이로 인한 별거, 잦은 이사로 인한 전학, 부모의 사망이나 이혼 등에 의한 격심한 가정환경
의 변화 등은 두려움을 갖게 하는 원인이다.
④ 왜곡된 사랑에 근거한 자녀 교육 : 왜곡된 부모의 사랑은 자녀 교육에서 두 가지로 드러
난다. 하나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체벌이 심한 경우이다. 또 하나는 너무 과잉보호하는 경우
이다. 이 두 가지 경우 다 두려운 마음의 상처를 갖게 만드는데, 특히 전자의 경우는 더 그
렇다.
3) 주변 사람들
성격적으로 강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심하게 책임 추궁을 당한 경우 이것이 상처가
되어 두려운 마음의 상처를 계속 갖게 된다. 갑자기 책임 추궁을 당할 것 같은 두려움에 시
달리게 된다.

3. 두려워하는 마음의 증상들
1) 내면의 상태
- 무엇인가 정리되지 않은 내면적인 불안함에 시달린다.
- 갑자기 두려워지면서 불안해진다.
- 어떤 일이 이어나면 필요이상으로 놀래고 두려워한다.
-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2) 관계의 장애
- 강한 사람이나 심한 이야기를 들은 경우 그 사람이나 그곳에 가기를 꺼려한다.
- 문제가 생기면 책임 추궁을 두려워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 전가를 하려고 한다.
- 모든 종류의 훈련(Discipline)을 힘들어하고 어려워한다.
- 새로운 일에 대하여 부정적이거나 추진력이 없이 중도에 그만두고 싶어 한다.
3) 영적인 장애
- 하나님을 향한 지속적인 신뢰가 늘 흔들린다.
- 신앙생활이 기쁨이라기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 영적인 진보가 일어나지 못하고 계속적인 Up & Down을 경험한다.
-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두렵고 멀기만 하다.
4) 포로 된 상태
- 심한 불안감을 이기기 위해 약물에 집착하거나 물질에 매어 달린다.
- 피해 망상적인 감정에 시달린다(건강 염려증).
- 안전하게 자기를 표출할 수 있는 술 중독, TV 등에 빠진다(두려워하는 마음 때문).

4. 성경에 나오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1) 여호수아
- 모세의 사망 이후 그가 느낀 것은 심한 두려움이었다.
모세라는 존재가 없다는 사실 자체에서 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모세 없이 하나님과 직접 만난다는 것에 대하여 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모세 없이 인도해야하는 백성에 대하여 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 아이 성의 가벼운 패배 이후에 그가 느낀 두려움은 정도를 넘어선 것이었다(수 7:5-9).
* 하나님의 전폭적인 돌보심과 함께 하심은 이런 두려움의 사람을 용사로 만드셨다. 하나
님 안에서 두려움이 치유된 모델이 바로 여호수아이다. 그가 마지막에 백성 앞에서 신앙의
선언을 담대하게 하는 순간 그는 두려움에서 완전히 치유된 사람이었다(수 24:15).
* 세 가지 중요한 사실
-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새로운 상황에 대하여 특히 못 견뎌 한다.
-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사람이나 물건, 제도 등을 심하게 의지하려고 한다.
-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작은 실패도 너무나 크게 받아들인다
제4강 열등감과 죄책감

<열등의식>

1. 열등감이란 무엇인가 ?
1) 모든 종류의 상한 감정은 공통적으로 열등감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원죄를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은 다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2) 열등감은 자기 자신에 대해 평가 절하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마음이다.
실제 능력이 있고 없고 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자
신 없어하는 것이 열등감이다.

2. 열등감을 갖게 되는 원인들
1) 원죄
죄의 결과로 눈이 밝아져 벌거벗은 부끄러움을 본 것은 바로 인간 스스로가 자기 열등감속
에 빠지기 시작했음을 말한다.
- 인간은 원래 조물주 하나님에 비해서 열등하게 지어졌다. 그러나 그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에는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을 가지고 하나님
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죄에 빠졌고 그것이 열등감을 갖게 만든 것이다.
- 죄 때문에 자기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더 깊이 열등감을 갖게 된다.
2) 가정환경
① 결손 가정(고아, 편부모, Broken Family, 떨어져 사는 가정) : 결손 가정은 자녀에게 깊
은 열등감을 준다. 왜냐하면 그것이 상한 감정을 주기 때문이다.
② 문제가 있는 부모(사회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모, 인격적 장애가 있는 부모, 부부
싸움, 바람 피는 아버지) : 부모는 자녀에게 모델이다. 그런데 부모가 문제가 있을 경우 자
녀는 심각한 자기 비하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③ 편애와 비교가 심한 가정 : 편애와 비교는 결국 모든 자녀를 열등감속에 몰아넣는다.
3) 자기의 내적인 상태
모든 종류의 상처는 열등감을 일으킨다.
① 버림받은 마음(거절감) : 거절 받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편 거절당한 자기에 대해
스스로 비하하고 열등감을 갖는다(나는 버림받아 마땅한 존재이다).
② 굶주린 마음 :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경우 스스로가 비참해지고 열등감을 갖게
된다.
③ 분노하는 마음 : 분노를 억압하는 것은 내적으로 분노하는 것이고 이것은 심한 열등감을
갖게 한다.
④ 두려워하는 마음 : 두려워하는 마음은 벌에 대한 두려움,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 소외
당함에 대한 두려움 등인데 결국 이런 두려움에 떠는 자신에 대하여 열등감을 갖게 된다.
4) 자기의 외적 조건
심각한 이유는 아니지만 자신의 외모적인 특성이나 이름, 학력 등이 열등감을 갖게 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비교에서 나온 상처이다.

3. 열등감의 증상들
1) 내면적인 문제 - 두려움, 불안, 자기 학대
- 작은 실수나 문제에도 심하게 불안해하고 자기 비하와 자책을 한다.
- 열등감이 많은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 포기한 것 같으나 굶주림에 의해서 오히려 내
적으로는 ‘욕심’을 많이 갖고, ‘자존심’을 세우려고 한다.
- 열등한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데서 오는 완벽주의적 증상이 있다.
2) 관계의 장애
- 지나치게 겸손하고 희생을 자처하여 겉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는 좋아 보이지만, 내적으로
는 감사가 없고 불만이 언제나 상존한다.
- 이유 없는 분노를 느끼며,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 같은 피해의식이 늘 있다.
3) 영적인 장애
-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받지 못하고 ‘나 같은 것이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
가운데 있게 된다.
-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오히려 큰 부담으로 가지거나 뒤로 후
퇴한다. 그러므로 영적 성장이 매우 늦다.
4) 포로 된 상태
- 의존적 자아를 갖게 되어 사람에게 종속된다.
- 부담을 주는 일은 다 포기하게 되어 결국 무능력하고 소용없는 자로 전락한다.
- 모든 정상적인 관계가 불가능해지고 대인 기피증을 갖게 된다.

4. 성경에 나오는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
1) 사울
- 처음에 나타난 사울은 겸손한 사람이었다(삼상 10:22) - 열등감에서 나온 겸손
그는 출신도 훌륭하고 인물도 좋았으나 자신은 열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삼상 9:1-2, 21).
-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를 드린 것은 열등감에서 나온 두려움 때문이었다(백성이
자기를 버리고 다 떠날 것 같은 생각,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 자신이 없다).
- 다윗을 향해 갖게 된 열등감은 그를 파멸로 이끌었다(삼상 18:7-9).
스스로 자신감을 잃고 평강을 잃었다.
모든 결정이 열등감을 감추려는 부적절한 것이었다(딸의 혼사).
주변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점점 어려워졌다(아들, 딸, 사위, 제사장, 백성).
다윗을 쫓는 데 온 정력을 낭비하고 결국 불레셋에게 전사당했다.
* 두 가지 중요한 사실
- 열등감은 때로 겸손으로 나타날 수 있다(드러내어 인정하고 적절히 처리되면).
- 열등감을 감추려는 모든 행위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한다.
2) 베드로
- 베드로는 깊은 열등감의 소유자이다.
그가 계속 장담하고 큰소리친 것은 열등감을 감추려는 행위였다.
물 위를 걷다가 파도를 보고 빠진 것은 그의 내면의 열등감 때문이었다.
- 계집종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고, 결국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고기나 잡으러 가련다”(요 21:3)라고 말한 것은 이 실패의 기억으로 더욱 강화된
그의 열등감 때문이었다.
- 주님 앞에 솔직히 자기의 사랑이 한계가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한 후, 성령을 받고
나서야 그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두 가지 중요한 사실
- 열등감의 소유자들 중 외향적인 사람들은 그것을 감추려고 큰소리를 잘 친다.
- 성령께서 역사 하시면 열등감이 강한 사람도 담대해지고 능력을 갖게 된다.

<죄의식>

1. 죄책감이란 무엇인가 ?
1) 모든 종류의 상한 감정은 공통적으로 열등감과 함께 죄책감을 일으킨다. 이 가운데 열등
감은 막연히 자기를 비하하는 것이고, 죄책감은 어떤 기준을 제시하고 그것에 미달된 부분
을 놓고 자기를 정죄하는 감정이다.
2) 죄책감은 부적절하게 자기 스스로에 대하여 죄의식에 시달리는 상한 감정이다.
- 실제 상황으로는 넘어갈 수 있는 것을 혼자 Guilty Feeling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것이 죄
책감이라는 상한 마음이다.
3) 죄책감은 자기 자신 및 남에 대해서도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 죄책감은 자기 뿐 아니라 남에 대해서도 심한 정죄 속에 고통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므
로 용서를 통한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정죄를 통한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내면을 갖게 된다.

2. 죄책감을 갖게 되는 원인들
1) 원죄
타락의 결과로 죄인 되어 낙원에서 추방당한 후 모든 인간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
었다.
- 원죄가 꽉 찬 세상은 자기중심이 되어 자기를 지키는 방법으로 남에게 죄책감을 강요하
는 세상이 되었고,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계속되어 결국 사람들이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게
만들었다.
2) 가정환경
① Broken Family : 가정의 결손은 부모의 마음 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깊은 죄책감을 넣어
준다. 특히 부모가 결손의 책임이나 문제를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전가한다면 상태는 더욱
심해진다(너 때문에…)
② 상처가 있는 부모 : 상처가 있는 사람은 모든 문제를 본인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남
에게 전가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 대상으로 자녀가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자녀는 죄
책감을 갖게 된다.
③ 율법주의적인 가정 : 스스로 높은 기준과 신앙적 열심을 갖는 부모(두려움과 굶주린 마
음, 버림받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의 도덕적 신앙적 기준 제시는 자녀에게 죄책감을 심하
게 넣을 수 있다.
3) 삶에 있어서의 실패의 경험
삶 가운데 심한 실패의 경험은 인간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데, 특
히 이 실패가 배신에 의한 것이어서 용서의 문제가 걸려 있을 때에는 더욱 심하다.
→ 죄책감의 문제는 용서의 문제와 밀접하다.

3. 죄책감의 증상들
1) 내면적인 문제
- 언젠가 나쁜 일이 닥칠 것 같은 불안감 속에 산다.
- 심각한 죄책감이 작은 실수에도 찾아와 내면을 뒤흔들어 놓는다.
- 은혜를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 좋으면서도 그것을 잃을까하는 두려움에서 자기를 계속 정
죄 한다(더 기도하고 더 잘해야 돼!).
- 정죄 받지 않기 위하여 자기를 계속 자아 비판하면서 학대해 나간다.
- 감추기 : 자기를 감추려고 노력하지만 잘 감추어지지 않을 때마다 심한 고통을 느낀다.
2) 관계의 장애
- 지나친 희생과 봉사 : 남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자기 희생
을 하려고 함(일에 열심)
- 죄에 대하여 민감 : 죄나 Scandal에 대하여 아주 민감하고 심하게 정죄함.
- 정당한 비판도 받지 못하고 심하게 반발함. 그리고 본인은 그것 때문에 혼자 괴로워 함.
3) 영적인 장애
-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함.
- 습관적인 회개로 신앙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함.
- 마귀에게 공격을 받아 자주 넘어짐.

4. 성경에 나오는 죄책감을 가진 사람들
1) 사도 바울
- 사도 바울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특히 죄책감의 문제는 그에게 심각했다. 그러나 그리
스도의 용서의 사랑으로 이 죄책감을 극복한 사람이다.
로마서 8:31-39을 보면 그의 죄책감과 이것을 극복하는 치유의 장면이 다 나온다.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공개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용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딤전 1:15-16).
* 바울이 이런 죄책감을 갖게 된 것은 엄격한 부모, 율법주의적 환경에서의 성장 때문이었
다.
2) 다윗
- 시편 51편에 나타난 다윗은 심한 죄책감과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극복한 사람이다.
3절: 심각한 죄의식
4절 : 사람들의 정죄에 시달리기를 거부하는 모습.
5절 : 자기가 근원적으로 죄인임을 인정
7-12절 : 죄로 인한 버림받음의 두려움
16-19절 : 죄 용서의 체험
내적치유 제5강 상처와 영적 전쟁   
제5강 상처와 영적 전쟁

1. 상처는 거짓 선지자들로부터 온 것이고 그 거짓 선지자는 사단의 영향과 조종을 받고 있
는 상태에서 우리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2. 우리 안에 있는 상처를 이용해서 우리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고 우리의 삶
을 파괴하려는 마귀의 공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것이 영적 전쟁이다.
* 영적 전쟁에서 중요한 세 가지는
- 원수의 전략을 간파하는 것(Recognizing)
- 그들의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를 거부하는 것(Refusing)
- 그것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것(Resisting)

 

1. 마귀가 하는 일의 세 가지 속성(요10:10)
- 도적질하고(steal)
- 죽이고(kill)
- 멸망시키는 것(destroy)
→ 이것이 상처가 인간 속에서 역사하는 경우의 삶의 모습이다.
*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속성(요 10:10)
- 생명을 얻게 하고,
- 이것이 가득 차게 하는 것이다.

2. 마귀가 우리에게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 권위(Authority)
* 이 권위란 원래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일부를 위임해
주신 것이다(사랑하시므로). 이것을 자유 의지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사탄 마귀는 이
권위를 갖기 위하여 인간을 유혹했고, 인간의 동의 하에 이 권위를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
다. 이것이 타락이다.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바로 이 인간이 빼앗긴 권위를 되찾아 주시는 일이
었다(골 2:14-15).

3.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도 마귀의 공격을 받는가?
→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잃었던 권위를 되찾았지만, 우리의 권위를 다시 빼앗으려는 마귀
의 공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면에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기에 더 심하게 공격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4.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때 주로 공격하는 네 부분은 어디인가?
1) 생각 (Mind)
2) 마음 (Heart) / 태도(마음가짐), 감정
3) 입(Mouth) / 언어
4) 관계 (Relationship) / 일치됨을 파괴하고 갈등을 유발하려 함.

 

1. 모든 사람에게 있는 두 개의 문이 무엇입니까?
- ‘음부의 문’(The Gate of Hades/ 마 16:18)
- ‘천국의 문’(The Gates of Heavenly Kingdom/ 마 16:19)

2.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한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주님의 사람이 된 자들에게 주님께서 주
신 것은 무엇입니까?
→ 천국의 열쇠(마 16:19)

3. 천국의 열쇠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 매는 것(Binding)
- 푸는 것(Loosing)
* 이 매는 것과 푸는 것은 수동적으로 할 수도 있고 공격적으로 할 수도 있다. 이 중에서
수동적으로 하는 것을 ‘거부’(Refusing)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거부입니까?
- 생각 속에서 마귀가 주는 생각은 잘라내고(Binding), 하나님이 주신 생각은 받아드린다
(Loosing).
- 마음속에서 마귀가 주는 감정과 태도는 거부하고(Binding), 하나님이 주신 느낌과 마음가
짐을 붙잡는다(Loosing).
- 말을 할 때 마귀가 주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고(Binding), 하나님이 주신 언어를
사용한다(Loosing).
- 관계를 깨고 단절시키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Binding), 일치를 이루기 위한 부분을 노력
한다(Loosing).

 

1. 영적 전쟁에서 우리는 무엇을 통해 음부의 문을 닫고 하늘의 문을 열 수 있습니까?
- 기도 (Praying)
- 언어 (Speaking)
- 삶 (Living)

2.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영적 전쟁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 우리에게 있는 모든 영적 장애들을 제거할 수 있다. 두려움, 의심, 불순종하는 마음들..
- 우리 자신의 의지를 주님께 내어 드릴 수 있다. 주님께 마음을 여는 것
- 성령님에 의해 인도 받을 수 있다. 영적 깨달음, 영적 감동, 영적 계시
- 성령님에 의해 힘을 공급받을 수 있다. 영적 영향력, 성령님이 흘러넘치는 것.

3. 말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영적 전쟁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 마귀의 세력을 향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므로
- 마귀의 세력을 향해 십자가의 공로를 선포함으로
- 마귀의 세력을 향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선포함으로

4. 삶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영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 경건 생활
<상처를 Blocking하면서 우리가 쓸 수 있는 도구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Blocking의 무기이다. 예수 그
리스도의 이름 속에는 다음 두 가지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예수 이름은 그의 능력을 의미한다. 모든 악한 것들을 내어쫓고 병든 것들을 치유하는 능력
이다. 모든 염려와 불안, 근심, 두려움 등이 계속 엄습할 때, 이 이름을 사용하여 이 능력으
로 내어 쫓을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 갈 수 있는 공로이다. 우리를 향
해 끝없이 정죄해 오는 영적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의의 흉배이다. 죄책감이 들고 열등감에
시달릴 때 이 이름의 공로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통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 분이 우리의 주되심의 선포이다.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은 예수
님이심을 선포하고 우리는 그의 사람임을 선포함으로 우리의 내면을 자기의 영역으로 삼으
려는 모든 공격을 막는 것이다. 조상의 모든 잘못된 상처의 유전을 이 이름의 다스림으로
막을 수 있다.

2.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이 죄 문제
에는 상처의 문제도 들어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 (공로)는 치유를 위한 강력한 도구이다. 특
히 상처가 우리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을 때, 그것을 blocking해 주는 능력이 있다.
- 감추임에서의 해방(드러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감추임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계속 감추려고 하고 숨기려
고 할수록 더욱 더 그 상처에 잡히게 되는 데 본인이 그것을 알면서도 그 감춤에서 벗어날
수 가 없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벌거벗은 채 그대로 다 드러나신 분이다. 그 십자가의 능력
이 감추어야 한다는 공격을 막아 준다.
- 권리 포기
십자가에서 주님은 완전한 버림받음을 경험하셨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능력이다. 우리의 상처가 계속 우리를 붙들고 있는 것은 우리가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잡혀
서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랑과 관심, 물질, 명예 등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에 상처에
지속적으로 잡혀있게 된다. 십자가는 다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을 줌으로 이 지속적인 상처의
공격을 막아 준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치유하는 능력의 도구이다. 주님은 단순히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
아니라 보혈을 흘려주심으로 우리 가운데 온전한 치유를 선포하셨다.
- 모든 허물(부끄러움)을 가리는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는 허물을 가리는 능력이 있다.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가죽옷이 지어졌을 때 흘린 피가 보혈을 의미한다. 레위기에 속건제를 드릴 때 흘린
제물의 피가 보혈을 의미한다. 자기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아프고 추한 기억들이 자기를
계속 힘들게 할 때 우리는 이 보혈을 사용하여 덮을 수 있다.
- 깨끗하게 하는 능력
예수님의 보혈은 죄를 씻는 능력이 있다. 더러운 죄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을 때 예수 그리
스도의 보혈이 그 죄를 씻어 준다. 온갖 유혹과 욕심, 음란, 도박, 교만 등 굶주림에서 오는
상처를 통하여 공격해 들어오는 것들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를 깨끗이 씻어 새롭게
함으로 이런 생각들에서 우리를 지키신다.
- 의심을 사라지게 하는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언약의 피이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지 아니하신
다는 사랑의 언약을 의미한다. 마음에 의심이 들고 두려움이 있을 때 이 보혈의 공로를 의
지하여 그 지속적인 불신을 막을 수 있다.

→ 어떻게 사용하여 Blocking하는가?

1. 열린 문을 통하여 상처의 세력들이 밀려 들어와 우리를 공격할 때 직접 사용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나를 지켜 주옵소서

2. 기도할 때마다 근원적으로 Blocking할 수 있다.

3. 상처가 많은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할 때 사용할 수 있다.
- 개인을 위하여
- 가정을 위하여
- 공동체를 위하여
- 사회를 위하여

4. 찬양을 하면서 사용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 보혈 찬양,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는 찬양
내적치유 제6강 Christian Identity   
제6강 Christian Identity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치유>

1. 하나님의 형상(창 1:26-28)
-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을 처음 지을 때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Design 원본이다.
-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다음과 같은 삶을 산다.
전제 :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삶
내용 : 열매있는 생활(Fruitful), 상승되고 증가하는 삶(Increasing), 가득 찬 삶(Full), 다스
리는 삶(Ruling)
- 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예배의 회복’이다.

2. 예배는 세 가지 타입이 있다.
① 성전 뜰 예배 / 육적인 예배
→ 이곳에서는 예배의 모양만 있을 뿐 어떤 속죄나 만남의 경험이 없다(양 잡고, 버리고,
태우고 등등).
② 성소의 예배 / 혼적인 예배
→ 이곳에서는 지적, 감정적, 의지적 터치가 있고, 어느 정도의 영적 감동도 있다(상-진설
병, 등대, 분향단).
③ 지성소의 예배 / 영적인 예배
→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과의 만남
캄캄한 곳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성이나 감정을 초월한 곳
속죄소 앞에서의 체험/ 죄 용서의 체험
‘시은좌’ - 은혜의 체험 : 있는 그대로가 받아들여지는 체험

3. 지성소 예배의 경험 - 이사야의 경험(사 6:1-8)
1) 상한 심령(1절 상/시 51:17)
웃시야 왕의 죽음은 이사야의 모든 상처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2) 하나님과의 만남(1절 하-4절)
주님은 보좌에 계심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함
스랍 천사가 찬양함
문지방 터가 요동, 연기가 가득
* 이 모든 것은 그의 전 존재가 완전히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3) 회개(5절/욥 42:5-6)
왜 이사야는 ‘입술’이 부정하다고 했는가?
4) 치유(6-7절)
제단의 핀 숯불로 입술에 대는 체험은 독특한 touch의 체험이다.
‘네 악이 제하여 졌고, 네 죄가 사해 졌다.’는 말의 의미는?
5) 하나님의 음성이 들림(8절)
하나님의 탄식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됨
치유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Calling)
강압적인 형태의 부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형태임/ 요나서
6) 부르심에 응답(8절)
Calling에 대해 거부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헌신하게 됨.

4. 지성소 예배의 경험이 어떻게 Healing을 하는가?
1)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인간의 고유의 Identity 회복
① ‘왕’ 같은 존재 / 제사장, 선지자(벧전 2:9 / 왕 같은 제사장) /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
리고, (창 1:26-28) → 이것은 치유받은 자의 삶의 모습이다.
② 특징 : 다른 피조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 흙으로 지어졌다는 부분은 아니다.
- 지 정 의라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면/그러면 그것이 창조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
고 있는가?
- ‘하나님의 호흡’이 그 대답
Spirit - Soul - Body의 온전한 모습을 가진 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특징
2) ‘하나님의 형상’은 어떻게 회복하는가 ?
- Not, 지적이거나 감정적인 자기발견(성소 예배)
- But, 예배의 체험 / 영이 꽉 찬 상태에서 영이신 하나님과 만나면서 내면의 질서가 다시
회복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자기 identity를 회복함.

5. 지성소 예배의 경험을 통해 Healing된 내면의 상태(사11:6-9)
(1) 서로 회복된 상태- 갈등과 적대적인 모든 것이 사라진 상태
-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상태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한 상태
-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상한 감정이나 이기적인 죄악이 내면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
나님의 법이 마음에 꽉 차 있는 상태

<새로운 피조물 /고후 5:17>

1. 상처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옛 사람에 머물러 있을 때 만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치유는 죄의 몸이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것이다(롬 6:6-11, 갈 5:24).
그러나 거듭난 우리를 아직도 옛 사람에 묶어두려는 것이 있다.
- 치유의 빛이 온전히 비추지 않은 내면
- 우리 살아가는 죄 된 환경들(상처를 자극하는 것들)
- 마귀의 영적 공격, 속임수 - 아직도 넌 죄인이다.
- 옛 습관 : 예수를 믿고 내면은 변했는데 습관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것이 마귀 공격의
빌미를 주고 자신을 옛 사람에 계속 묶어 둠 → 로마서 6:12-19을 읽어 봅시다.

2. 옛 습관을 바꾸기 위한 훈련 - 경건 훈련
→ 경건 훈련이란 옛 자아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써 완전히 변하기 위한 삶의 완결 훈련이다.
그러므로 경건의 훈련을 통한 습관의 변화가 없이는 온전한 치유가 유지 될 수 없다(딤전
4:7-8).

<옛 습관 - 시간 사용/갈 5:19-21>
1) 음행, 더러움, 방탕의 습관 :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습관들
2) 우상 숭배, 마술의 습관 : 세상의 멋과 가치를 추구하는 습관들
3) 원수 맺음, 다툼,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 세상의 정치, 사람 사이의 갈등
에 참여하여 열을 내는 습관
4) 술 취함과 흥청거리는 연회 : 세상의 오락, 문화에 몰입하는 습관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습관>
1) 사랑과 희락(기쁨)과 화평(평강)의 열매가 있을 수 있는 습관 : 내면의 상태
2) 인내와 자비(친절)와 양선(선함) 있을 수 있는 습관 :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모습
3) 충성(신실함)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히는 습관 : 성숙한 인격의 모습
→ 이런 열매를 얻기 위한 습관들을 확립해야 한다 / 시간 사용
→ 이런 경건의 훈련은 마귀의 유혹과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

3. QT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치유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1) QT는 다음 세 가지의 유익이 있다
- 하나님과의 교제
-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 하나님의 공급
2) 이것은 모두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다.
- 하나님과의 교제 : 버림받은 마음, 열등감, 죄책감의 치유
-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 두려워하는 마음, 열등감의 치유
- 하나님의 공급 : 굶주림, 분노하는 마음의 치유
3) QT를 통해서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에로의 분명한 전환을 맛볼 수 있고 유지 할 수
있다(출 19:5-6).

4.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부수고 세움’이라는 복음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1) 옛 삶의 모습을 부수자.
- 사람 :
- 장소 :
- 오락 :
- 습관 :
2) 새로운 삶의 모습을 세우자.
- 사람 : 하나님께서 맺어 주신 사람들과만 만남(가족, 신앙의 동역자들).
- 장소 :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장소만 거함(집, 교회, 일터, 자연)
- 오락 : 주님께서 함께 기뻐하실 오락만을 행함(유익하고 삶을 살리는 오락)
- 습관 : 경건의 훈련을 받는 습관(예배, 성경 읽기, 기도 등등
2002년 한해는 내면 세계부흥의 해로 계속해서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가정환경과 내적치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A. 육신의 아버지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까지 미치는 영향

 


  1. 육신의 아버지는 인간이 처음 만나는 가장 강한 하나님을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와 만나는 그 시기는 우리의 자아가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모든 경험과 사건, 느낌은 우리의 성격 형성의 근본을 이루게 되고, 이것은 우리가 평생 쓰고 다니는 마음의 안경이 됩니다.

 


  2. 하나님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없을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보편적인 증상들은 무엇인가? 막연한 불안감입니다. 이 불안감이 늘 마음을 지배하고 있고 언젠가는 나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따라서 기쁜 일이 있을 때 마음 놓고 기뻐하지 못하고 마음 한 구석은 더욱 불안해 집니다.

 

이 기쁜 일 뒤에 갑자기 괴로운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자리 잡고 있어서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애도 허전함을 느낍니다. 무슨 일을 해도 실패할 것 같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으며 무엇엔가 ?기고 있는 듯한 조급함과 죄의식 그리고 정죄감으로 항상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긴장감을 가져옵니다. 긴장감이란 보호자가 없어 자기가 자신을 보호하고 책임지려 할 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B. 육신의 아버지의 유형과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 시 145 : 14 >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1. 좋은 아버지: 좋은 아버지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아버지로 쉽게 느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독립된 성인으로 이 세상에 보내실 수도 있었겠지만 인간이 인간을 통해서 아주 연약하고 어린 갓난아이의 상태로 태어나 그 아이가 가정에서 양육 받는 관계들을 만드셨다. 가정이라는 형태 속에서 인간은 아버지라는 개념과 어머니 그리고 헌신적인 사랑의 개념을 배우게 되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사랑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아버지 밑에서 양육을 받는다 할지라도 아이는 상처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아이가 상처를 받는 것은 자신이 접하는 사건의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 화를 잘 내는 아버지: 언제 화를 낼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들은 자신도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가지는 개념도 무엇인가를 잘못하기만 하면 때리기를 준비하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로 상상하게 된다. 인내나 용서보다는 지적과 질책이 앞서는 짜증스러운 하나님의 인상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벌벌 떨며 긴장하고 있는 상태이다. 잘하려고 열심을 다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실수가 잦아져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실수를 용납하기 어렵다. 하나님 안에서 열려있고 평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질책하고 때리시는 하나님으로 우리 무의식속에 잠재하게 된다.    

  3. 거리감이 있는 아버지: 정서적, 감정적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아버지다. 슬퍼하지도 웃지도 않고 언제든지 가족의 통치를 위해 거리를 두고 한 발치 뒤에서 위엄 있게 있는 아버지다. 아침 일찍 나가고, 일 마친 후 동료들과 술 마시고 늦게 돌아온다. 그래서 자녀들과 만날 시간이 없다. 이런 아버지의 자녀들은 점점 자라면서 삶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자신의 감정에 대해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 외에는 아버지와 나눌 수 없게 된다. 이런 자녀는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 자기의 자녀에게 자신의 감정을 나누기 힘들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자신의 섬세한 감정들을 나눌 수 없고, 친밀함을 기대할 수 없는 분으로 생각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만나도 사무적으로 만난다. 하나님에 대해 극히 막연  하고 종교적인 관계 그 이상은 기대하지 못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자신의 작은 일상사의 일이나 감정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신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죽고 사는 문제나 세상의 큰일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4. 연약한 아버지: 육체적 혹은 성격으로 약하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아버지. 이런 가정은 반대로 어머니가 강하며 어머니가 집안의 권위를 갖고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처리한다. 재정적인 권리를 어머니가 갖고 있으므로 아이들은 모든 필요를 어머니에게 부탁한다. 이런 아버지를 둔 자녀들은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의뢰할 수 없다.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나중에 그들의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꾸려 나가기 어렵다. 아들들은 대개 그 아버지처럼 연약하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처럼 강한 여자를 싫어하면서도 막상 결혼은 그런 여자를 선택한다. 그러나 그 가정은 하나님이 만든 질서가 깨진 가정으로 그 자녀들은 아픔을 갖게 되고 자기의 결혼 생활 속에서는 어머니처럼 강한 부인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 딸들은 아버지를 멸시하고 어머니에 대해 화를 낸다. 자신의 남편이 자기 아버지처럼 유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런 남편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남편을 지배하려 한다. 연약한 아버지의 밑은 자녀들은 두려움이 크다. 그러기에 자녀들은 그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더욱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간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기의 힘을 길러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5. 안 계신 아버지: 아버지가 군인이거나 다른 나라에 취업하여 장기간 떠나 있는 가정, 혹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가정, 이혼 등으로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경험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역할게 대해 현실적인 인식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 개입해 주시는 것에 대해서도 믿기 어렵고, 관계를 갖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결여된 분이 아니고 실제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애가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 그곳에 같이 계셨던 아버지이시다.

 


  6. 알콜 중독에 빠진 아버지: 이런 가정의 자녀들이 겪는 괴로움을 크며 자녀들이 받은 정서적 고통 또한 심각하다. 자녀들은 자신의 부모를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고 아버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므로 자신이 아버지의 술  주정으로 인해 겪고 있는 아픔이나 수치심 등에 대해 결코 남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녀들은 그 상황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처하려고 한다. 이런 가정은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난 기분에 의해 가정 분위기가 좌우된다. 아이의 감정이 아무리 슬프다할지라도 아버지는 밤에 아이를 불러 일으켜서 노래를 시킬 수도 있고 이유 없는 야단을 맞기도 한다. 아이의 감정과 인격은 무시되고 표현되지 못한다. 아이들은 오히려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고 술로 인해 거칠어진 아버지의 손 지검에서 어머니를 구해 주어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보편적인 결과는 정서적인 미성숙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이 존중되지 못하므로 자기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는다. 항상 다른 사람의 기분에 맞추어 일을 결정하고 자신의 의견은 없다. 가장 아이다워야 할 시기가 공백으로 없어지고 아이는 이상한 어른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자신이 참견하지 않을 일에도 참견하고 쉬지 못한다. 이런 자가 하나님을 섬길 때에 매우 충성되고 열성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희생하려 한다. 그러나 그 마음 안에 왜곡된 것들을 보면 놀랄 정도이다. 그는 하나님의 로봇처럼 행동하려 한다.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하나님 앞에 나타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하나님도 자기 같은 사람의 기분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7. 나를 버린 아버지: 아버지가 자식을 버릴 수도 있을까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이런 일들이 너무도 많다. 현재 고아원 시설에 수용된 고아의 70% 이상이 부모가 생존해 있는데도 버려진 아이들이다. 버림 받았다는 느낌을 가진 아이들은 자신을 죄에 쉽게 내어준다. 부모가 나를 버렸는데 나도 나를 버리지 못할 것이 없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자포자기하는 것이다.

 


  8. 나를 부끄러워하고, 나를 용납하지 못하는 아버지: 자신의 체면 때문에 자신의 자녀를 부끄러워하고 그 자녀에 대해 속으로 화를 내며 실망하고 있는 아버지. 자녀의 부족한 부분을 용납할 수 없는 아버지이다. 가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자녀가 도달하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혹은 자신의 죄의 결과로 몰래 낳은 자녀이기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은밀히는 사랑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모르는 척하는 아버지이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극악한 죄를 지은 부패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의 자식인 것과 자신이 아버지이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9. 나에게 해를 끼친 아버지: 세상의 죄악이 관영해 감에 따라 가장 놀랍고 무서운 죄악은 가정에서 아버지가 자녀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이다. 성 폭력에서 시작하여 온갖 행할 수 없는 죄악을 자녀에게 행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버지에게 이러한 해를 받은 자녀의 마음에 받은 상처는 너무도 치명적이다. 어떤 훈련이나    정신 수양으로도 이러한 상처는 지워지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이 모든 것을 치유하시는 능력이 있으심을 우리는 목격한다.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은 결코 자녀를 이용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결코 자녀에게 해를 끼치는 분이 아니다. 우리를 징계함은 그분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그분은 자신의 감정 때문에 자녀에게 매를 드시는 분이 아니며 보복하기 위해 어려움을 보내시는 분이 아니고 자신의 일을 위해서 우리를 이용하는 분도 아니다. 그분은 자기를 죽음에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돌보시고 기르시는 분이다.      

 


  C. 가정환경과 저주의 굴레

 


  < 출20 : 5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음란함, 사기, 도적질, 저주의 말들, 악독, 알콜, 거짓말, 점치는 것, 저주의 끈은 죄악의 끈이다. 성경은 이러한 끈들이 4대째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마술, 성적인 음란함, 우상숭배의 죄악, 질병, 우울함.... 이런 죄악의 끈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바로 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는 이 모든 죄악의 끈을 끊으신다. 또한 주님은 우리의 대에서 이러한 죄악의 끈이 끊어지기를 원하신다. 자신 안에 자기의 부모에게서 발견된 죄악들과 같은 죄악들이 발견되지 않는지 살펴보고 예수의 이름으로 이러한 죄악들을 다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거부하고 대적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그 민족과 조상들의 죄악을 발견하고 그리고 자신 안에서도 동일한 죄악이 있음을 보고 회개하며 그 죄악을 끊었다. 바로 나의 세대에서 이런 끊음의 역사가 일어나서 다음 세대 자녀들에게는 그 저주의 끈을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

  D. 문제를 바르게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거짓된 사고방식들 

 


  < 롬 12 : 1 - 2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지나간 모든 것들은 현재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내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이제는 완전한 하나님 아버지를 알았기에 모든 괴로움은 지나갔으며 과거의 일은 현재의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영적인 새 삶을 시작한 것이지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이 완전히 변한 것은 아니다. 이제 변할 수 있는 완전한 가능성의 길 위에 서게 된 것이다. 

 


  2) 정서적 장벽과 성격의 장애들이 신앙생활과 성경적 지식이 쌓여 가면 자연히 없어지리라는 생각: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이나 성격의 이상들, 그리고 죄에 특히 약한 어떤 특정 부분들은 아주 어린 시절 유년기에 획득된 것들이다. 그리하여 계속 반복 실행하여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것들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버릴 수 없다.

 


  3) 부모가 우리의 잘못된 삶에 있어서 영향을 끼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죄스럽다는 생각

 


  4) 우리의 지난 시절을 생각한다는 것은 부모에게 나의 죄에 대한 책임을 돌리는 행위라는 생각

 


  5) 부모와 나의 어린 시절의 가정 문제를 말하는 것은 나의 체면을 손상시키고 나의 자부심을 손상시킨다는 생각

 


  E.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의 사고방식”

 


< 요 8 : 32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1) 부모를 바르게 판단하는 것은 부모를 배반하는 것이나 또는 부모에게 욕을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바른 진단을 내리는 필수적인 과정일 뿐이다.

 


  2) 부모를 사랑한다는 것은 죄악을 용서하는 것이지 은폐하는 것이 아니다.

 


  3) 성령께서 우리의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뒤돌아보게 하시는 것은 잘못을 캐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이다.

 


   F. 문제해결

 


  < 느 9 : 2 >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

 


  1) 나와 부모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경험해 가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라.

  2)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께 대한 숨겨진 인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런 인상을 갖게 되었는지 하나님께 여쭈라. 깨닫게 된 것을 놓치지 말고 붙잡아 하나님께 말씀드리라.

  3) 부모에게 받은 상처와 아픔들이 있다면 부모를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라.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부모라도 용서하고 사랑을 고백하라.  

     4) 조상들로부터 온 굴레들에 대해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끊어서 더 이상 나의 자녀들에게 이것을 유전시키지 않도록 기도하       라.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라. 예수의 이름은 창조와 기적을 일으킨다.

 


침묵기도와 내적치유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내 삶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셨던 순간이 없었던것 같아요.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들고 대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게 실망이 되었었는데, 지내놓고 보니 그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던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나를 택하셨습니다.(장로교의 예정론) 그러니까 내가 잉태되어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순간까지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내 삶의 온갖 기쁨과 슬픔과 고통과 환희와 상처와 미움과 사랑가운데 하나님이 계셨다는 말입니다. 
지난 과거의 삶 가운데 아픈 기억이 있습니까? 그 기억 가운데 하나님이 어떤 모습으로 계셨었는지 과거의 기억 속으로 침묵기도를 통하여 주님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의 아픈 장애물들을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내적치유가 됩니다.
  정리하면 과거의 상처를 두 가지로 치유 할 수가 있는데, 하나는 과거의 고통스런 상황 속에 예수님을 초청하여 예수님이 하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치유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과거의 기억을 상상하면서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최용우 
내적치유의 정의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 참으로 보기 좋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우리가 인식하는 부정적인 것들이 없는 깨끗하고 순결한 상태였다. 그러나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상처와 악한 저주들로 묶기고 찢기고 말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그 아름다운 상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상한 심령 때문에 하나님과의 대화가 단절이 되었다. 마음에 커다란 담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가 참으로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주신 것일 것이다. 이 죄악의 쓴 뿌리는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도 한다. 그리고 인간들과의 관계에도 파괴적인 역할을 한다. 이 쓴 뿌리들을 마음에 계속 담아두게 된다면 모든 것들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내적치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상처들은 바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모두 씻어낼 수 있다. 어떤 상처나 저주일지라도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멸하지 않을 것이 없다. 즉 내적치유란 인간의 내면에 있는 모든 쓴 뿌리와 조상서부터 내려오는 악한 저주(고집, 혈기, 음란 등등)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냥 씻기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 의지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그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직 유일한 위로자이고 치료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을 의지해서 말이다.

 


◎내적 치유의 필요성

 

  내적치유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만드셨던 그 관계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물론 내적치유가 100%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과 더욱 사랑하기 위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터놓고 이야기하며 사랑하며 나아가기 위해서 내적치유는 필요하다. 또한 인간들 사이에서 천국의 기쁨들을 온전히 나누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은 상처가 없이는 남에게 상처를 줄 수가 없다. 즉 모든 이들이 상처가 있고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상처에 대한 또 하나의 다른 개념은 상처는 밖에서 안으로 받는 것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예전에 받은 상처가 안에 있을 때 어떤 특정한 상황을 통해서 그 상처가 드러나게 되는 것도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처를 받았다는 말은 어쩌면 대부분이 상처가 들어난 것일 것이다. 이 증거는 상처가 적고 내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누가 무슨 말을 할지라도 긍정적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볼 때 증명된다. 이처럼 인간들 사이에서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하실 귀한 교제들을 나눠야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내적 치유를 받아야 한다. 이 내적 치유를 받을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성품들을 회복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간들과의 관계에 회복이 있을 것이다.

 


◎내적치유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 칭함을 받은 다윗을 보면 죄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우리아를 죽인 그는 자신의 죄를 알았을 때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가서 죄를 고백했고 떳떳이 주님 앞에 다시 생활했다. 그는 시편51편에서 이렇게 말을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심령이다.” 이것은 내적치유의 이상저인 방법을 말해준다.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다. 죄가 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러한 인간들이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그 사랑을 통해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내면의 상처들은 어떻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가? 인간의 죄성으로 인한 상처들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다. 물론 좋은 것들을 드려 영광을 돌릴 수 있지만 죄인인 인간으로서 우선 회복되어야하는 부분이 바로 이 죄로 인한 상처와 심령이기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 상한 심령의 고백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라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지만 인간은 죄책감과 사단의 정죄감 때문에 이 고백을 할 수 없다. 내적치유는 다른 사람이 치유를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물론 충분히 효과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 상처들을 갖고 나아가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성경말씀과 기도 그리고 성령님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상한 마음들을 가지고 나아가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아픔이 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또 다른 신호이다.

 


◎내적치유와 선교

 

  세계의 모든 나라들의 문화란 참으로 다양하다. 그래서 그 문화에 따라서 선교의 전략이 다르게 된다. 언어, 전통, 문화, 관습 등등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지역의 전문 사역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바로 죄인이라는 것과 이 죄로 인한 마음의 상처들이 있다는 것이다.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즉 예수그리스도를 전함으로써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창조당시 아담과 하와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 전쟁이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이 내적치유의 사역은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가능한 그리고 효과적인 사역이다. 위에서 언급한 전제 조건 때문이다. 또 하나의 조건을 달자면 인간은 누구나가 외로워한다는 것이다. 비록 자신이 외롭지 않다고 섬에서 혼자서 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 또한 깊은 곳에 외로움을 갖고 있고 자신의 행위들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버릴 수 없는 성격이다. 바로 이것을 통해서 내적치유사역을 접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안으로 내면은 바라보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개인 개인에서 말을 할 때 감동이 없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것이 무리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개인적으로 선교를 나가면 영적인 대결을 우선 할 것이고 영혼들을 먼저 대할 때 나의 생각과 나의 것들을 전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상태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를 말해줄 것이다. 나는 이 하나님 말씀을 신뢰를 한다. 이 치유의 능력들을 믿는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거룩한 통로가 되기 위해서 하루하루 회개하면서 주님을 의지하면서 나아갈 것이다. 이 귀한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하기 위해서 말이다.

 


내적 치유

크리스 해리슨 (Chris Harrison)

 

"내 이름을 경외하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말 4:2) 하나님의 치유와 사랑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정보만을 알기를 원하지 않고 진리와 은혜가 있어야 한다. 성령님을 위하여 기도하자.

 

1. 왜 하나님은 내적 치유를 원하시는가?

1)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요1 3:1): 개인적으로 개별적으로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2)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 (고후 1:3,4): 구원하다의 의미는 온전케 됨이다. 온전케 됨의 한 부분이 치유이다. 속사람이 치유를 받으면, 속사람의 치유가 필요함을 알며 다른 사람에게 나누게 된다. 성경의 원리는 전하는 것이다.

Flowing은 물건과 돈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이 받는 것 중의 하나가 내적 치유이며 이것을 받아서 전하는 것이다.

고후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고후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목표가 있다 (사 61:1-3): 성경에는 많은 목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3절에서 보는 대로 의의 나무가 되어서 영광을 나타낼 자가 되는 것이다. 영혼이 아름다운 모습이 됨.

하나님은 우리가 아름다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나무처럼 되기를 원하신다. 모든 나무가 다르나 각각의 나무가 다 아름답다.

사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1)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가난한 자는 ①돈이 없는 자(인도와 필리핀)와 ②예수님을 모르는 자(부자일지라도 교회를 간다 할지라도 영원한 기쁨과 희망이 없다)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아름다운 소식이란 죄에 대한 용서함이며 이것이 가장 큰 복된 소식이다.

*하나님은 정보만을 주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체험을 원하신다. 용서함은 자유함이며 우리 깊은 곳에서 그것을 안다. 우리는 성경에서 용서함에 대해서 알지만 체험이 없다는 위험이 있다.

하나님은 이 용서함을 알기를 원하신다.

 

--왜 사람들이 용서함을 받을 자유가 없나 (5 이유)--

(1) 거듭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교회를 간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에서 해야 한다(must)를 사용하셨다. 그것이 영생을 갖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리고 죄사함을 받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2) 낮은 자아상(self-image) 때문에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온다. 자랄 때 부정적인 말을 들은 것 때문에 (너는 쓸모 없다, 너는 실패자다. 너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이런 말을 권위자로부터 들었다면 자란 후 낮은 자아상을 가지며 세대를 통해 이어져 간다

(3) 우리가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셨지만 우리가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에게 오는 것을 막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용서 못하고 항상 후회 속에 산다.

(4)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용서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선택이며, 용서하지 못해라는 거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용서함을 내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5) 죄책감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 지배할 때

어렸을 때 부모님들이 사랑을 전하지 못하고 격려할 줄 모르고 control하기 위해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어린이가 자랐을 때 죄책감에 익숙해 있다 (가정, 학교, 교회, 직장에서)

 

2)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기 위하여: 내적 치유,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온 것이다.

 

3)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하여

죄(sin) + 상처(hurt) = 묶임 (bondage) → 분노, 거짓말, 정욕, 나쁜 습관에 대한 묶임

 

3. 내적 치유는 성령의 역사이다 (엡 3:16-19).

엡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엡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엡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는 자신을 치유할 수 없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점점 정죄감이 생긴다.

*16절. 속사람이 그 능력으로 강건하게 됨.

*17절.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터(foundation)는 토대이다.

*18,19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가는 것: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체험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

롬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5): 마음은 영어에 정신(생각)과 가슴(느낌)의 두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슴에 부어지면, 우리가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성령에 의해서 부어짐.

 

1) 좋은 토대란

 

진리 은혜 사랑

 

①진리를 알면 우리가 자유케 되며 자유 속에 있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가 매일 필요하다.

진리를 말하고 진리 가운데 산다.

②은혜: 매일 필요함

③사랑: 토대가 튼튼하면 문제가 올 때 흔들리지 않는다.

 

2) 나쁜 토대란

 

속임 율법 거절

 

①속임: 항상 두려움. 보이지 않는 벽에 의해서 갇힌다.

②율법: 최선을 다하나 항상 비참함. 겉으로는 강하고 종교적이나 약한 사람.

③거절: 깊은 뿌리. 거절 받은 느낌. 거절 받음. 거절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고후 3:17,18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절. 성령이 계신 곳에는 어디나 자유함이 있다.

18절. 성령이 계신 곳에는 영광에서 영광으로, 믿음에서 믿음으로 변한다. 변화는 항상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한 번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더욱 같아지도록 계속 변화과정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고 성령만이 변화시킨다.

 

4. 변화가 어려운 두 가지 중요한 이유: "수동성"과 "상한 심령"

 

1) 수동성 (passivity)

*선택은 여러분의 것이다. 생명, 축복, 주님사랑, 순종, 부종하기(cling to)를 선택하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선택할 권리를 주셨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같이 유혹을 받았으나 나쁜 것을 거부하시고 좋은 것을 선택하셨다. 항상 유혹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피할 길을 주신다 (고전 10:13). 그러나 우리는 선택을 하여야 한다. 이것은 차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수동적인 사람은 변화가 어렵다

(1) 수동성의 증거는?

①선택을 할 수 없다.

②결정을 못하고 수행할 수 없다.

③해야 할 때 '예', '아니요'를 못한다.

잘못되어 있고 문제와 이웃에게 상처를 줄 때에도 항상 예라고 말함. 모든 것에 과분한 책임을 느낌. 사람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의 나에 대한 의견, 친구를 잃는 것, 거절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점점 묶임이 된다.

④문제에 대해서 흔히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아버지, 장모님, 남자친구의 잘못으로. 하나님까지도).

그렇다면, 자유롭게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만들지 않으셨다.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시험하셨다고 하지 말라.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된 것이다.(약 1:13-15).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나님은 피할 길을 주시나 수동적인 사람은 피할 길을 찾지 못한다.

⑤"이런 일이 생겼다 (It happened to me)." 모든 환경이 나보다 크다. 항상 환경이 나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⑥마음 깊은 곳에서 화와 좌절이 있다.

⑦다른 사람과 화해하는 것이 어렵다. 관계문제(가족과 교회에서)가 커지기만 한다.

⑧두 마음을 품는다 (약 1:6-8). 그래서 항상 변하며 일관성이 없다.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 불안정하며, 수동성 때문에 당신이 거절당할 수도 있다. 결혼했어도 외롭다. 결혼상대와 잘 관계하지 못하며, 두 사람 사이에 벽이 있다.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⑨생각에 공포가 있다. 통제가 안되며 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여야 할지를 모른다.

⑩충동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다 한다.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2) 수동성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

하나님은 세 인격이 한 분이시다.

각각 다른 인격이 하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우리의 영, 혼, 육체로 우리를 하나로 만드셨다.

① 영 : 거듭났을 때 영이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하여 영원히 산다.

영적 생활은 영의 생활이다.

②육체: 일시적이나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③ 혼 : 건강한 혼은 정신, 의지, 감정 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회복에 관해서 (요엘 2:25-29)

요엘 2: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요엘 2: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요엘 2: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요엘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요엘 2: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25절, 먹힌 횟수대로 갚아주리라 26절, 풍족히 먹을 것이다

27절,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 28, 29절, 성령의 부으심에 대하여

 

수동성의 원인들

①우리의 의지가 어렸을 때 상처를 받게 될 때:

ⓐ항상 "하지 말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을 할 지, 어떻게 할 지 가르쳐 주지 않고, 하지 말라는 말만 들었을 때는 십 대가 되기 전에 수동적이 된다.

ⓑ"너는 틀렸어. 너는 바보야. 너는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할 꺼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십대가 되가 전에 수동적이 된다. 무엇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항상 따라가며, 상처입고 외롭고 어려워지게 된다.

ⓒ어렸을 때 너무 많은 책임감을 지는 경우: 어린이들이 놀면서 만드는 소음은 좋은 것이며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어린이들은 놀아야 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유 ㉮바쁜 부모님: 사업상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부모님들은 열심히 일해야 되며 큰 아이는 작은 아이를 돌봐야 된다.

어린 시절을 즐기는 즐거움을 뺏긴다. 10-11살이 되었을 때 대리 엄마와 아빠가 됨.

어린아이가 다치면 내가 벌받기 때문에 실수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 함.

이 책임감이라는 짐은 어린아이가 지기에는 너무 크다.

㉯부모가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다면: 아이일지라도 내가 무언가 해야 된다고 생각함. 어른이 되었을 때 수동적이 된다.

②과거에 만든 잘못된 결정과 선택들: 상처받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준다.

"나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으니 당신이 선택하세요."

③세대에서 내려오는 수동성

두 가지 배움의 근원이 있는데 학교에서 지적으로 정보를 모으는 것과 가정에서 삶을 배우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다른 예가 없으므로 좋은 예와 나쁜 예들을 다 배운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조용하나 쉽게 화를 내는 분이라면, 본인은 아버지와 같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하나 결혼 후에 아버지와 같이 된다. 수동적인 부모들이 수동적인 자녀들을 만든다.

④종교적인 수동성: 많은 종교가 운명을 믿는다 (이슬람)

⑤주술 (무당, 점쟁이, 별자리, 사악한 영들)

이 곳에서 쓰여지는 언어가 우리의 삶을 묶으며 죽은 자들과 접촉하려고 하는 것들이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⑥국가적 상황: 전쟁, 다른 세력에 선택할 수 없이 점령당했다면.

전쟁 중이나 점령당한 나라에 부모님이 계셨다면, 상처받고 그 상처 속에서 살게 되며, 해결되지 않는다.

상처(hurt) ⇒ 분노(anger) ⇒ 쓴뿌리(bitterness) ⇒ 증오(hatred)

부모님이 고통받기 때문에 아이들도 고통받으며 전쟁이 끝나고 압제하는 나라가 떠났어도 3,4대까지 이어진다.

너무 고통스럽고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치유하시고 회복하시기를 원하신다.

⑦수동성을 가진 문화적인 근원

ⓐ어떤 문화에서는 특정한 인종이 억압을 받는다: 호주의 원주민,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남아프리카의 흑인들, 미국의 인디안, 에스키모, 하와이 원주민들, 오사까 사람들.

원주민들은 부드럽고 친절하나 가슴 깊은 곳에 분노와 슬픔이 있다.

ⓑ어떤 문화에서는 국민 전체가 억압받는다: 가난 때문에. 필리핀, 태국.

ⓒ어떤 문화에서는 여성들이 억압받는다. 무슬림 여성들.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하여 이용당하며 희생물이 되고 자신들이 여성인 것을 증오한다.

 

(3) 수동성을 파하는 능력: 어떻게?

①기도로: 믿음으로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끊어짐

②열심 (초점을 맞춤)

③용서: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든 사람들을 용서함

그 이후에는. . .

우리는 자유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결정하고 선택하고 예 아니오를 말하며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는 긍정적인 삶을 살며 우리의 경계를 알게 된다.

 

우리의 경계를 아는 법

① 우리의 몸 고전 6: 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② 우리의 태도 수 1:8,9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③ 우리의 감정 전 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④ 우리의 행동 갈 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빌 2:12,13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⑤ 우리의 생각 고후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빌 4: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⑥ 우리의 능력 롬 12:4-8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⑦ 우리의 소원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 145:19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⑧ 우리의 선택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⑨ 우리의 넘지 말아야 할 경계들 빌 1: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고후 1:14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2) 상한 심령 (broken spirit)

잠 18:14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육신은 병들었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건강한 심령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심령이 상하면 누가 그것을 일으키겠느냐? 아무도 할 수 없다. 상한 심령을 가지는 것은 매우 어렵고 견딜 수 없다. 그것은 밑이 빠진 컵과 같아서 우리는 삶 속에 좋은 것을 담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개인적인 약속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가 되며 단지 견디고 견딘다. 변화시키는 것은 너무 어렵다.

(1) 상한 심령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4가지 방법

① 슬픔 가운데 사는 것

잠 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우리의 마음의 슬픔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 때때로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잠 7:4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다. 우리에게는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용량과 능력이 있다.

어린아이들이 부모가 싸우는 것을 보거나 들으면 감정이 손상이 된다.

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며,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멸시치 아니하신다.

 

② 거칠고 삐뚤어지고 거짓말하는 혀

어떤 사람들의 혀는 너무 강하여 우리의 심령을 상하게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목사님이 교회에 거짓말을 하면, 상대방의 심령을 상하게 한다.

 

③역기능 가정

아버지가 문제가 있음 → 어머니가 짐을 짐 → 자녀들이 고통받음

어머니가 문제가 있음 →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신실하지 못함 → 자녀들이 고통받음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며 시간을 내어주지 않고 단지 물질만을 준다. 수동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표현되어야 하며 주어야 하며 느껴져야 한다.

골 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강요하거나 억압하거나 노하게 하면 안된다. 그러면 역기능 가정이 된다.

 

- 특히 가정에서의 사랑은 무엇인가?

 

ⓐ가족들을 위하여 시간을 내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양의 시간이 아니라 의사소통과 표현이 있는 질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때로는 무엇인가를 같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등산, 운동경기에 같이 가기)

ⓒ사랑은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communication)은 말하고 듣는 것을 의미한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가 의사 소통이 필요하다. 만일 자녀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게 되고 그들에게서 나쁜 정보를 들으며 배우게 된다.

모든 어린이들은 아버지의 사랑(자신감과 자유를 줌)과 어머니의 사랑(위로와 보호를 줌)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러한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치유 받아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 "능동적인 사랑"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리라. 내가 너를 고치리라.

고후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어머니의 사랑

사 66: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사 66:1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사랑은 부모가 자녀를 순전하게 만지는 것이며, 또한 제자훈련이다.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제자훈련이란 아버지가 자녀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하는 것이다. 제자훈련이란 배우는 것이다. 사는 법, 생각하는 법, 무엇을 하여야 할지를 배우며, 재미있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역기능 가정의 원인들

ⓐ부모가 벌할 줄만을 알고 제자 훈련 하는 법을 모르는 경우: 사랑은 제자훈련이며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이 제자훈련이 시작되어야 한다.

ⓑ의사소통이 없는 가정

ⓒ자신의 부모를 두려워하는 가정 : 부모에게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거칠고 분별이 없고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자녀는 두려워한다. 고통받고 부정적이며 가혹한 어머니에게는 이야기하기가 두렵다.

ⓓ무책임한 아버지 : 가족을 상관 안하는 아버지. 아버지는 집에 늦게 오고 어머니가 모든 짐을 진다. 어머니는 모든 일을 해야만 하므로 사랑을 할 수 없다.

ⓔ부재중인 아버지 : 아버지가 집을 나갔거나, 돌아가셨거나, 직장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일년에 한 두 번 집에 온다.

ⓕ신실하지 않은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들의 심령을 상하게 한다.

ⓖ보상하는 부모들 : 부부가 서로 감정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딸에게 관심을 돌려 딸에게 사랑을 보이는 경우. 아내를 사랑할 수 없는 남편이 딸과 즐긴다. 어머니는 딸을 질투하게 된다. 혹은 남편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아들을 사랑하는 경우.

 

④학대(abuse)

 

- 예수님이 받으신 학대 : 십자가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인간을 뛰어넘는 고통과 고문과 잔인함이었다.(골고다: 해골이라는 장소)

사람에게 얼굴이 가리운 바 되었고(3절): 너무 끔찍해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하여 벌을 받고, 사람들에게 거절과 멸시를 받았고 고통을 받았다.

그는 우리의 고통과 질고를 아신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5절).

*그가 십자가에서 받으신 학대는:

ⓐ 말로서 - 가장 비참하고 끔찍하게. 신성 모독

ⓑ 신체적으로-십자가에서 피흘림. 채찍에 맞음. 가시관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시 22:14). 십자가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고문이었다.

시 22:14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 권위자들로부터 학대받으심

제사장들과 지방의 총독. 그들은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것을 알았으나, 십자가에 못 박았다.

ⓓ 모욕을 당하심

"나는 벌거벗었다" (시 22:17).

 

- 학대받은 사람들이 사는 방법 (두 가지)

ⓐ 희생물이 되어서 산다: 자기 연민과 더불어 자유가 없이. 나는 희생물이므로, 희생물처럼 믿고 느끼고 이야기하고 행동한다.

ⓑ 영웅이 되어서 산다: 거부한다. 문제가 없어, 없단 말이야. 문제는 그러나 있다.

나는 견디어야만 해. 문제없어.

 

- 뿌리와 터 :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뿌리들: 
ⓐ쓴뿌리(bitterness) 
ⓑ거절(rejection) 
ⓒ반항(rebellion) 
ⓓ교만(pride) 
ⓔ어린아이(little child, 유치한 어린 아이와 같음, childish) 
ⓕ돈을 사랑함(love of money):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됨(딤전 6:10)

하나님은 이러한 나쁜 뿌리들을 우리 가운데서 꺼내시기를 원하신다.

 

- 학대의 종류

①말로 하는 학대 (verbal abuse)

*화살: 쓴 독이 묻은 화살. 어떤 사람의 입을 통해 마음으로 와서 상처와 독을 줌.

시 64:3 저희가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 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시 64:4 숨은 곳에서 완전한 자를 쏘려 하다가 갑자기 쏘고 두려워하지 않도다 
*부주의한 말들: 말하는데 대하여 주의를 안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 : 혀는 치유하며 축복하며 선한 길을 보이는 권세를 가진 반면 파괴하는 권세도 가졌다.

잠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그리스도인의 혀에 대하여

약 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약 3: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말로 하는 학대는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거절감을 갖게 한다.

ⓑ우리를 외롭게 한다. 사회 활동과 친구 사귐을 두려워하게 한다.

ⓒ권위자를 두려워하게 한다. 희망이 없이 만든다.

ⓓ우리의 가치와 행동을 부패하게 만든다.

 

②신체적 학대 (physical abuse)

*예. 남편의 아내구타 (분노, 술):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잔인한 것이다.

*부모가 분노 속에서 아이들을 때릴 때 그것은 학대이다. 자신의 분노를 없애기 위해서 아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처벌은 항상 사랑 속에서 해야 한다.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

술에 취하였거나 피로할 때 쉽게 아이들을 때리면, 아이들을 상하게 한다.

*선생님이 다른 학생들이 보고 두려워하도록 본을 보이기 위해서 한 학생을 때린다면, 신체적 학대이다.

*상사가 고용인을 때린다면, 신체적 학대가 된다.

*예수님의 리더십의 예: 예수님은 섬기고 구원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고 묶인 자들을 자유케 하려고 오셨다.

마 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③권위자에 의한 학대 (abuse by authority figure): 황제의 영(emperor spirit)

*황제의 영이 집과 학교와 대학과 사무실과 교회와 기독 사역 안에서 지배하고 학대한다.

*황제는 항상 외롭다. 교제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상처를 준다.

*황제는 외롭고 쉽게 부패한다. 황제는 관계를 가질 수 없다.

*일리가 없는 일이라도 시키면 하여야 한다.

*IMF: 황제의 영, 어둠의 영, 적 그리스도의 영이 재정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한다. 사람들 마음에 돈만을 자리잡게 하려고.

 

④성폭행 (sexual abuse)

- 성폭행의 4가지 유형 (어린아이들, 십대들, 성인들에게 있다)

ⓐ강간 
ⓑ불결한 만짐 
ⓒ원하지 않는 성관계로 조종함(권위자, 장소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상황 때문에)
ⓓ결혼에서 비정상적인 성행위(perversion)

삼하 13: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아들 암논이 저를 연애하나 
삼하 13:2 저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 누이 다말을 인하여 심화로 병이 되니라 
삼하 13: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저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삼하 13:4 저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뇨 내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뇨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연애 함이니라 
삼하 13:5 요나답이 저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 하다가 네 부친이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말하기를 청컨대 내 누이 다말로 와서 내게 식물을 먹이되 나 보는데서 식물을 차려 그 손으로 먹여주게 하옵소서 하라 
삼하 13:6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 하다가 왕이 와서 저를 볼 때에 왕께 고하되 청컨대 내 누이 다말로 와서 내가 보는데서 과자 두어개를 만들어 그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삼하 13:7 다윗이 사람을 그 집으로 보내어 다말에게 이르되 네 오라비 암논의 집으로 가서 저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삼하 13:8 다말이 그 오라비 암논의 집에 이르매 암논이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 보는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삼하 13:9 그 남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싫어하고 가로되 모든 사람을 나가게 하라 하니 다 저를 떠나 나가니라 
삼하 13:10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다말이 자기의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 오라비 암논에게 이르러 
삼하 13;11 저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삼하 13:12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비여 나를 욕되게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치 못할 것이니 이 괴악한 일을 행치 말라 
삼하 13:13 내가 이 수치를 무릅쓰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괴악한 자 중 하나가 되리라 청컨대 왕께 말하라 저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치 아니하시리라 하되 
삼하 13:14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동침하니라 
삼하 13:15 그리하고 암논이 저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이왕 연애하던 연애보다 더한지라 곧 저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삼하 13:16 다말이 가로되 가치 아니하다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듣지 아니하고 
삼하 13:17 그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어 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삼하 13:18 암논의 하인이 저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 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삼하 13:19 다말이 재를 그 머리에 무릅쓰고 그 채색 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며 가니라 
삼하 13:20 그 오라비 압살롬이 저에게 이르되 네 오라비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저는 네 오라비니 누이야 시방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인하여 근심하지 말라 이에 다말이 그 오라비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삼하 13:21 다윗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암논과 다말은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사이였으며 실제로 암논은 다말을 사랑하지 않았다.

*6절: 암논은 나쁜 계획을 세워 병이 든 척을 하였고, 다윗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는 나쁜 아버지였다. 다말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어린 소녀로서 아버지에게 순종하였다.

*15절: 그는 다말을 미워했다. 그가 그녀를 사랑했으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끔찍한 이야기를 이해하시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가 기록되었다.

*20절: 압살롬은 다말을 위로하거나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다. 단지 질문하고 아무말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네 오빠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두 목소리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아라.

ⓑ이것은 너무 수치스러운 일이다. 너는 견디어야 한다.

*다말은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냈다. 처량하게: 부정적인 성격,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죄책감을 느끼며. 우리는 죄가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죄책감을 느낄 수가 있다. 불결하고 희망이 없다고 느끼며 부정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21절. 왕이 노하니라. 도움이 안되고 다말은 외롭게 지낸다. 암논은 도망한다.

 

5. 나쁜 씨

*복음이 좋은 열매를 맺듯이, 나쁜 뿌리는 나쁜 씨에서 온다.

*그 씨는 역기능 가정에서 우리의 삶 속에 뿌려진 씨이다. (다윗, 압살롬, 엘가나의 가정)

*그들이 모두다 끔찍한 죄인들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성경에서의 유일한 완전한 인물은 예수님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①하나님은 역기능 가정을 진실로 이해하신다.

②하나님은 우리가 역기능 가정에서 나왔을지라도 우리를 도외시하지 않으시고, 역기능 가정에서 나온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③우리가 역기능 가정에서 나왔다면, 우리는 치유될 수 있다.

 

1) 나쁜 씨의 원인들

(1) 처음 씨를 받은 방법: 태중에서 어머니에 의하여 거절됨

하나님께서는 태중에서 나를 취하여 내셨다

시 71:6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바 되었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①가난 때문에 더 이상 아이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 때

②부모의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남편이 해를 입히거나 불성실해 질 우려로 인해 어머니가 임신하기를 원치 않는 경우

③어머니가 좋은 직장을 가진 경우: 좋은 경력, 지적이며, 명석하고, 일터에서 성취감을 가지고 행복해 한다면. 이 아이가 나의 성취와 친구들을 가져가 버리기 때문에 나는 이 아이를 미워해.

④결혼 안한 상태에서 임신한 경우: 남편이 없음. 수치스럽고 숨고 싶다. 낙태가 해결은 아니다. 영적으로는 저주와 같은 어두운 구름아래 놓이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쉽게 자유케 된다.

 

(2) 부모님이 원하는 것과 반대의 성으로 태어난 경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다.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참소하는 자들을 이기기를 원하신다 (계 12:9-11).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기고 승리하라.

계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났고
계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3) 부당한 처벌

이것은 많은 씨를 심는다. 부당한 처벌은 어린이를 두려워하게 하고 거짓말을 하게 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결혼생활의 묶임이 된다.

 

(4) 부모의 기대 밑에서 살게 될 때

네가 잘하면, 우리는 너를 인정한다. 네가 잘하지 못하면, 너는 힘들 꺼야.

 

(5) 부모에 의하여 버려짐

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①감정적인 버려짐: 차갑고 낯설고 사랑이 없고 따뜻함이 없고 의사소통이 없는 경우.

단지 의무와 공부만이 있다. 집에 있는 것은 비참하다.

②신체적인 버려짐: 부모가 자녀를 고아원에 맡기는 경우. 아이를 떠나는 경우

③영적인 버려짐: 특별히 행복하지 않은 그리스도인 가정인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가 좋지 않은데 그리스도인들이다. 가정생활을 즐기지 않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교회에서 바쁜 일정을 보낸다. 이 때 자녀들은 부모와 교회에 의하여 자신이 버려졌다고 믿는다.

 

- 때로는 성인이 되었을 때의 깨어진 관계(깨어진 결혼, 깨어진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와의 관계 경험)로부터 오는 상처를 치유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①우리는 마음속으로 더 이상 관계를 하지 않기로 맹세하게 된다. 너무 고통스러우므로.

②더이상 위탁을 안하게 된다.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는 가질 수 있으나, 위탁은 더 이상 없다.

③결혼 후에는 배우자를 신뢰하지 않는다. 배우자 때문이 아니라 나의 과거의 경험에 의한 문제로 인하여.

 

6. 나쁜 뿌리

*그는 나무와 같다 (시 1:1-3; 렘 17:7,8): 신선한 나무, 열매 맺는 나무, 일관성 있는 나무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렘 17: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렘 17:8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예) 망고 열매에 벌레가 있는데 뿌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원인이었다. 사단은 분노, 거짓말, 정욕으로 우리를 참소 한다. 때로는 직접 우리마음에 생각을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통하여 말하기도 한다. 나는 나무를 베어내려고 하나 뿌리는 그대로 있게 된다.

나쁜 뿌리는

①거절 ②쓴뿌리 ③반항 ④교만 ⑤어린아이 ⑥돈을 사랑함이다.

*나쁜 뿌리의 결과는 나쁜 열매이다.

 

7. 나쁜 열매의 유형들

1) 공격적인 열매들

①다른 사람들의 위로를 거절함: 나를 혼자 내버려 둬. 음식이나 차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②다른 사람들 특히 권위자들을 거부함

③가혹하며 강퍅한 태도

④회의주의나 불신

⑤논쟁적임: 쉽게 논쟁을 함

⑥완고함: 권위에 순복하려고 하지 않음

⑦살인: 다른 사람을 파괴시킴. 만일 누구를 미워하면 살인이다.

2) 거절로부터 오는 열매들: 거절이 일상화되었거나 심각한 거절 경험이 있을 때 (예. 직장해고→자기거절→열매들)

①낮은 자존감: 자신을 미워함

②열등감: 비교한다. 성경은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가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예수님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 (고후 10:12)

③불안정함: 기질적인 불안정함. 기질적인 화.

④의사소통의 결핍

⑤실패에 대한 두려움: 자기 거절감이 있는 사람은 항상 실패를 두려워한다.

⑥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대하여 가지는 의견에 대한 두려움

⑦우울증: 모든 우울증이 자기 거절감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우울의 영으로부터: 다루기 쉽다. 찬양하라. 그러나 대부분의 우울은 영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자기 거절감으로부터

ⓒ어린 시절로부터: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슬프고 외롭다. 어린아이로서 놀지도 않고 웃지도 않는다.

ⓓ유전적인 우울증: 가족 안의 우울증. 의학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생리중인 여성들: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나 3-4일간은 정말 우울하다. 의학적인 원인이며 영적인 원인은 아니다.

⑧희망 없음: 희망을 포기한다.

⑨자살

- 자살의 네 가지 유형

정신적인 자살: 포기하는 것. 결코 끝내지 못한다. 대학에 가나 중간에 나오고 일을 시작하나 끝내지 못한다. 
도덕적인 자살: 나는 내 몸이 무엇을 하던지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을 즐기려고 한다. 
영적인 자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간다. 
신체적인 자살 
위의 네 유형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시 118: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나쁜 열매의 두가지 유형중 첫 번째 유형은 다른 사람들을 파괴하고 두 번째 유형의 열매는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 
거절은 항상 파괴한다. 사단은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왔고,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다. 
어떤 사람들은 이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 나쁜 열매를 감추는 방법들

때로는 나쁜 열매들을 고의로 혹은 자동적으로 감추게 되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된다.

①성취하려고 힘씀: 고의로 자신을 밀어붙인다.→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자신에게 주지 않는다.

②독립성과 외로움: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있지 않음. 그러므로 DTS의 소그룹이 매우 중요하다. 함께 웃고 울면서 같이 성장해 간다.

③이기심: 이기심은 4가지로 표현된다.

ⓐ자기 보호: 하나님과 이웃으로부터 항상 자기를 보호한다.

ⓑ자기 중심적

ⓒ자기 합리화: 너는 나를 이해 못해.

ⓓ자기 연민: 네가 나를 위해서 우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나는 변화하지 않는다.

 

8. 어린 아이에 대하여

1) 어린 아이와 같은(childlike) 것

*신약이 어린이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 2가지

①어린 아이와 같은(childlike) 것 : 긍정적인 것

마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②화목케 함(reconciliation)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단어는 원어 성경에서는 이탤릭체로 되어있다. 새로운 피조물은 어떤 경험을 의미한다.

*18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받은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것으로 화목을 의미한다. 마지막에 화목하게 하는 직책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19절에서도 화목하게 하는 것을 말씀하신다.

 

2) 어린 아이와 같음 (childishness, 고전 13)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바울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하여 말한다. 11절에 하나님의 사랑을 막히게 하는 것이 있는데 바울이 어린 아이와 같았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아마 그가 결혼했었고 그의 결혼이 깨어졌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른이 되어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바울은 하나님이 어린 아이의 일을 가져 갔다고 하지 않았다.

 

어린 아이와 같음의 예

①비밀 단추와 같다: 누군가 이 단추를 누르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평정을 잃는다. 분노와 정욕과 연관되어 있다

②조작(manipulation): 아버지와 어머니가 관계가 좋지 않으며 자녀는 어머니에게 매어 달리다. 아이가 커서 결혼을 하면, 남편은 분노로 아내를 조작하며, 항상 이기나 항상 외롭다. 아내는 눈물로 남편을 조작하며 항상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3) 새로운 관점으로 해결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어린 아이는 문제를 해결할 줄 모른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베드로는 베드로서에서 "나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한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아주 긍정적으로 말한다- 왕같은 제사장, 택하신 족속, 은혜를 입은 자들로.

*잘못된 관계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는 방법을 모르게 한다.

*우리의 영혼을 거스리는 정욕과의 마지막 싸움: 정욕은 우리의 생각, 의지, 감정을 거스림. 우리는 정욕의 문제로 항상 싸워야 한다.

 

4) 잘못된 세 가지 관계

①의존적인 관계: 혼이 묶임. 필요 중심.

우리를 동성이나 이성에 거머리와 같이 묶이도록 끌어 내린다. 우리의 기쁨과 순수함과 영적인 비전을 잃게 한다.

②부도덕한 관계: 육신이 묶임.

부도덕한 관계(결혼 밖에서의 성관계)로 우리의 육신을 묶는다.

③환상의 관계: 생각이 묶임

ⓐ영혼의 묶임: 관계가 끝났을 때도, 우리 안에 살아서 우리를 망친다.

ⓑ외로움: 다른 사람들과 관계할 줄 모르는 사람들

ⓒ포르노: '60-'70년대에 독일, 영국, 미국의 사단 숭배자들은 많은 포르노들이 사람들 생각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포르노의 배후에는 생각을 조종하는 사단의 영이 있다. 이러한 생각의 조종은 두 가지 효과가 있는데, 첫째로 점점 더 원하게 되는 욕구(비록 죄책감을 느끼면서도)와 둘째로 영상들을 남기는 효과가 있다. 이것은 자석과 같아서 사람들을 유사한 문제를 가지도록 유혹한다.

 

9. 나쁜 뿌리를 뽑아내기

*우리의 상한 심령을 치유하려면

히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히 12: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14절. 관계,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

15절. 돌아 보라.

①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함. 좋지 않은 율법적인 관계들을 돌아봄.

②쓴뿌리: 거절과 반항의 뿌리.

③잘못된 관계: 에서와 같이.

 

*거절의 쓴뿌리에 대하여

하나님은 지금 그것을 꺼내기를 원하시는가? 그것은 성령님의 일이다.

뿌리는 수분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우리가 꺼내지 않으면 거절의 쓴뿌리 안으로 깊이 들어감.

뿌리는 온기 속으로 올라온다.

16절. 거절의 쓴뿌리가 있을 때, 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생긴다.

①하나님과의 관계: 기도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②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쓴뿌리가 나서 더럽게 하고- 두 가지 의미

히 12: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①많은 사람이 더러움을 입었다 (아시아: 거절, 유럽: 교만, 호주: 반항)

②만일 우리가 거절의 뿌리와 쓴뿌리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을 더럽힌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뿌리를 꺼내시기를 원하신다.

1) 부드러움으로

나무 주위의 흙을 파서 흙을 털고 부드럽게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한다.

성령님께서는 부드러우시다. 우리는 자유케 된다.

2) 마음을 토함으로

시 62:8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당신의 마음을 아버지께 토하라. 많은 사람들이 토하지 않고 침묵하며,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견딘다.

삼상 1:15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것 뿐이오니 
한나는 술 취하지 않았고 마음에 있는 것들을 토하였다.

렘애 2:19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찌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찌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찌어다 하였도다 
물 쏟듯이 마음에 있는 것을 쏟는다. 물을 쏟는 일은 쉬운 일이다.


내적 치유는 자기인식과정  

나는 대학시절 주님을 만났다. 청소년시절이었다면 갈등을 겪을 수도 있었겠지만 날카로운 이성의 시기였기에 만난 감격은 더욱 크고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전인격적인 것이었으며 확고한 것이었다. 그 이후 외적으론 한번도 슬럼프를 겪지 않고 현재까지 달려왔다. 적어도 사역과 비전의 측면에선 그렇다. 받은 은혜를 따지자면 말로 형용할 수 없으리라. 문제는 주님을 만난 뒤 생긴 내면의 갈등이었다. 배운 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기쁨과 감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무리 기도해도 열등감이 없어지지 않았다. 믿음과 성공은 함수관계가 아니었다. 예수 믿는 것이 곧 자동적인 행복은 아니었다. 큐티(말씀묵상) 를 하는 날은 승리의 삶을 산다는 것도 거짓이었다. 심지어 금식기도를 하고 난 후에도 자기연민과 방황은 없어지지 않았다. 신앙의 선배들의 위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앙과 인격의 괴리, 신앙과 삶의 간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당혹감을 감추고 신앙생활을 오래 동안 해왔다. 그리고 사역자이라는 이름으로 그 갈등을 무마시켜 왔다. 내면의 문제를 선교지향, 사역지향으로 돌리면서 꿋꿋하게 버텨왔다. 주님을 만나고 난 후 처음 이십년 동안 사회적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도 나름대로 주님위해 산다고 생각하며 ‘세계복음화’라는 월드비전에 몰입했었다. 그런데 정말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어느 순간 내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종교인으로 전락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말로는 주님을 이야기하면서 인격의 에너지는 항상 자신을 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인격의 에너지는 자신의 약점이나 콤플렉스가 있는 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즉 치유되지 않은 방향으로 자아의 중심이 쏠리는 것이다. 사역과 일도 주님중심이 아닌 나 중심이었다. 에너지가 끊임없이 병든 자아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병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치유의 시작이었다. 그렇다. 내적 치유의 비결은 병든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원주에 가면 토지 문학관이 있다. 소설가이신 박경리 선생님께서 글쟁이들을 위해 지으신 곳이다. 시편23편을 완성시켜야 하는 절박감에 나는 그곳을 찾았다. 기도원에 가면 기도가 잘되고 독서실에 가면 공부가 잘되듯 그곳은 글이 잘 써지는 곳이었다. 도착한 첫날 혹시나 해서 선생님을 뵐 수 있겠느냐고 사무실에 연락을 했더니 한참 후에 면담이 허락되었다. 오래 동안 칩거하고 계시는 분이라 만나시겠다는 연락이 반갑기 그지 없었다. 최근에는 아무도 잘 만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라 더욱 반가웠다.

고풍스런 안방에서의 대화는 오래동안 기억에 남을 정도로 화기애애하고 정이 넘쳤다. 건강에 대해 묻자 선생님은 자신이 15년전에 수술받은 암환자임을 밝혔다. 당시 유방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수술만 받고 항암치료는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재발하지 않고 있는 것이 놀랍다고 하셨다. 의사들도 혹시 오진이 아니었을까하며 신기해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많은 암환자를 치료해본 나에게는 집히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정색을 하고 말씀드렸다. ‘그것은 오진이 아니고 완치된 것입니다. 선생님같은 분은 암에 걸려도 다시 재발되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시며 그 이유를 물으셨다.

암에 걸리면 일단 자유가 주어집니다. 상황이나 관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끌려가던 삶에서 자기가 주도권을 찾게 됩니다. 그러면 암이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암에 걸렸는가를 인식하게 됩니다. 과거를 재해석하게 됩니다. 그 인과관계를 파악하게 됩니다. 암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자기인식과정이 시작됩니다. 나무를 보던 눈이 숲을 보게 됩니다. 상황을 초월하여 포괄적인 시각에서 인생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암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암의 재발을 막으려면 과거의 삶에서 돌이키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암이 좋아하는 삶에서 암이 싫어하는 삶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처럼 통찰력과 결단력이 있는 분들은 암이 재발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치유는 처절하게 나의 실체를 깨달을 때 시작된다. 
내 문제를 고백하고 나의 병든 영역을 드러내는 것,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의사이신 주님께 나를 맡기는 것이다. 
나의 한계를 인정할 때부터 성령의 역사가 내 인격 속에서, 사역 가운데 체험되기 시작한다
내적치유는 해방되는 것이다.

 

    내적치유는 바르게 하는 것이다.

 

   내적치유는 과거의 사건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재조명이란, 과거에 일어난 어떤 사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을 말한다.

 

   내적치유는 바꾸는 것이다.

         나는 종종 내적 치유 사역에서 과거의 부정적인 결과를 제거해주시고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과거의 사건자체를 변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결과를 바구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서 거부감을 없애고 그것을 용납으로

        바구어 주시기를 기도하거나, 죄책감을 제거하시고

        구원의 즐거움으로 채워 주시기를 간구한다.

        이런 점에서 내적치유는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5:21에서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하셨다.

          죄를 의로 대신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교체인가 !

       베드로전서 2:24에도 이 개념이 반복되고 있다.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내적치유는 보통 한 사건 이상의 과정이다.

     우리들의 기억들은 마치 양파껍질처럼 여러 겹으로 형성되어 있다.

     양파의 껍질을 벗기면 다음 껍질이 있듯이 우리의 기억들도 겹겹이 연결되어

     한 단계의 치유가 끝나면 다음 단계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때대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릇을 꺼내려면 먼저 찬장문을 열어야 하듯

    내적 치유에서도 문제에 맞는 과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면 상처받은 사람에게 내적 치유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적 치유의 일반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고통을 접한다.

           고통의 원인을 찾는다.

           고통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한다.

           예수님이 상처 받은 사건에 임재하셔서 치유해 주시도록 기도한다.

 

    내적 치유는 기억의 치유이다.

 

       보통 사건 자체는 한번의 상처를 입히지만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 계속 상처를

       주게 된다. 실로 기억은 강한 힘이 있어서 하나님의은혜가 없이는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시간의 흐름이 어느 정도의 기억의 고통을

       무디게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그것을 완전히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60세가 되어도 여전히 감정적인 상처로 인해 부정적 영향을 받으며

       고통 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적 치유는 용서를 적용하는 것이다.

 

     내적 치유는 접근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던 과거의 시간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나게 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내적 치유는 우리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역사하시는 주님의 원동력이며 적용방법이다.

      원동력은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 적용방법은 실제 사역현장에서

      성령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내적 치유사역을 하려는 사람은 그 원동력을 알고 존중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내적 치유란 주 예수님이 과거의 상처들을 해결하시도록

    그 분께 의탁드리며 그 상처의 부정적인 결과들을 치유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1장 - 치유사역의 출발점1.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사역모델
예수님의 당신의 생애의 3분의 2를 치유하시는 일에 보내셨다.
예수님은 전하시고 도를 가르치시고 치유하시는 일을 꼭 하셨다.
또한 제자들에게 치유를 명하셨다.

2. 성경적인 안수사역 방법
은혜는 받지만 치유를 일어나지 않는 안수 방법.
충분한 맡김의 자세가 기도사역 시 표현되어야 한다.

3. 다만 손만 대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을 찌어다> - 단순 명령 
하나님은 이성과 판단을 버리기를 원하신다.
다만 순수하게 믿고 순종을 기다리신다.

4.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사용하는 자
그들이 손을 대면 병이 낫는다는 공식이 따르는 사람.
은사는 사용할수록 증가한다.
정기적인 사역은 기름부음을 준다. 
- 아귀까지 항아리를 채우라. 많은 사람들은 많은 기도와 행위적인 노력을 인하여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치유의 은사는 사역하면서 그 파워가 증가하는 것이다. 사역자의 영성관리와 꾸준한 사역이 치유사역의 꽃을 피게 한다.

5. 선택과 결과
스위치
전구
전류(동원력)
빛(치유의 기적)
신유는 선택이다.
최대한 사용해야 한다.
사랑으로 손을 얹어라.
아픈 사람에게 가까이 서라.
능력은 사역자의 모든 사방에서 흘러나온다. (옷자락의 원리)
치유의 명령을 십계명처럼 지키는 자가 되라.
믿고 행하는 것이 순종이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고 명령하셨다.
즉시 시도하라. 미루지 마라. 기쁨의 체험을 하게 되면 계속 치유의 역사와 이적은 증가가 될 것이다. 
- 치유사역자가 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지금 치유 사역자가 되라. 치유 받고 치유하는 자가 되어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라.

출처:
일반인들은 물론 크리스천들도 부딪히게 되는 가정 폭력과 인터넷 포르노 중독에 대한 새로

운 시각과 해법을 제시한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인간 범죄의 배후에 언제나 마귀의 역사

가 있다는 것을 알고 대적하여 승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본문 중에 몇가지를 발췌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와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엡6:12)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 (시편142:1,2)

 

[저자 소개 / 크리스티 김 선교사]

세계적 선교단체 YWAM(Youth With A Mission:예수전도단)이 운영하는 열방대학

(University of the Nations)에서 기독교 상담과 내적 치유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7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된 열방대학은 YWAM이 하와이 코나(Kona)와 우리나라 제주도 등

지에 세운 국제적 기독교 교육기관으로서, 110개국 280개 지역에서 DTS(예수제자훈련

학교)와 같은 선교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크리스티 김 선교사는 전 세계에 위치

한 열방대학 중에서 일부를 순회 강의하며, 하나님이 그녀에게 베풀어주신 영적 치유의

놀라운 은혜와 비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영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가능한 이중 언어자이

기에 해외 교포와 서구의 크리스천 사이에 더욱 널리 알려졌으며, 해외 한인 유학생들

의 수련회인 코스타(KOSTA:유학생선교운동)의 인기 강사로서, '승리하는 영적 전쟁'과

'용서해야 산다'는 주제로 명강의를 펼치기도 합니다.


14세에 유학길에 올라 미국 남가주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U.S.C.)을

 졸업(심리학 전공)하고, 국제신학대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Theology:I.S.O.T.)

와 탈봇신학대학교(Talbot School of Theology, Biola University 바이올라대학교)에

서 상담학과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녀 자신도 하와이 코나에 있는 열방대학을 수료

했으며 1996년부터 동 대학에서 내적 치유 교수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 곳에 가시면 크리스티김 강해가 동영상으로 올려져 있습니다.  [바로가기]

 

[본문 중에서]

이 자매가 아홉 살 때 위 친오빠가 중3이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집에 안 계시던 어느 날, 이 오빠가 아홉 살짜리 자기 동생을 강간하는 일

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너! 엄마 아빠한테 이르면 죽인다'라고 협박했습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한테 말도 못했습니다. 그녀는 오빠가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그날 하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집에 안 계실 때 오빠는 여동생을 거듭 거

듭 성폭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역시 엄마 아빠가 집에 없는 틈에 끔찍한 일

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엄마 아빠가 외출했다가 일찍 돌아오면서 아들이 딸을 강간하는 장면

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목격한 부모는 아들에게 한마디 꾸지람도 하

지 않고 '네 방으로 건너가라'라고 아주 조용히 말했습니다. 매를 들기는 커녕 야단도

안 쳤습니다. 아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이기 때문에 무조건 떠받드는 그런 가정이

었습니다. 그러나 강간을 당한 아홉 살짜리 딸에게 돌아오는 행패는 이만저만이 아니었

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딸에게 몹쓸 욕을 하며 다그쳤습니다.

'이놈의 계집애?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계집애야. 오빠가 너한테 그럴 수도 있어.

넌 오빠 말이나 잘 들어.' 그 어린 나이에 오빠에게 강간 당하고 폭행당하고, 부모한테

까지 억울한 일 당하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돌아와도 오빠는 아들

이라고 안 때리고 딸만 때렸다는 겁니다. 저는 한국 여성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많은지,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많이 당하고 살아 왔는지 깨닫고 경악했습니다.

 

이런 아픔을 간직한 자매가 용서 기도를 시작하려고 하자 귀신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

다. 귀신 들린 자매였는지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용서해야 산다고 강조하면서 용서

기도를 하자고 하고 실제로 용서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목소리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용서합니다' 이렇게 나와야 되는데 '용~', '용~'하더니 '서'라는 말이 안 나왔습니다. 그

리고 다시 '용~' 하더니 목소리가 바뀌어 이런 말소리가 났습니다.

'얘는 내 거야. 내가 애를 통해 식구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얘도 죽이고 말거야.'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잠잠하라'라고 하고 우선 귀신을 잠잠케 했습니다. 그

리고 자매에게 기도를 마치도록 했습니다. 물론 그때 그냥 귀신을 쫓아내면 귀신이 나

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귀신이 나간 다음에도 이 자매의 영혼

이 용서할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그냥 두면 더욱 악한 것이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용서

함으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이상 용서기도를 못하자 자매는 눈을 감고 땀을 많이 흘리며 헐떡거렸습니다. 온 몸

에 힘이 빠지는 듯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 했습니다. 저는 자꾸만 눈을 감으려고 하는

자매를 붙잡고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자매를 격려했습니다. '자매님, 눈을 뜨고 절 보세

요. 힘이 들더라도 기도를 마치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 엄마 아빠와 오빠를 용...'하

는데 이번에는 입술과 혀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습니다. 그 자매의 입이 굳어버리자

제가 다시 명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귀신아! 너 손 떼! 너 이 자매 입에서 손 떼!'

사탄이 무서워하는 기도 중에 하나가 바로 용서하는 기도입니다. 용서기도를 하면 틈이

없어지고 그 사람에 대한 지배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용서기도를 못하도록 훼방하는 것

입니다. 자매는 다시 용서하는 기도를 시도합니다. 힘겹게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엄마 아빠, 오빠를 용~서~합니다.'

 

그야말로 힘겹게 기도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요청했습니다.

'잘 했어요, 자매님, 한 번만 더 합시다. 다시 한번 해봅시다.' 그러자 자매가 또 다시 기

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엄마 아빠, 오빠를 용서합니다.' 조금 전보다 더 힘 있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저 역시 다시 한번 명했습니다. '예수이름으로 명한다. 더러운 귀신

아! 나가! 그랬더니 그 자리에서 하품하듯이 '하~'하며 귀신이 나갔습니다 그런데 하나

가 나가고 다 된 줄 알았더니 귀신이 셋이나 더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자매는 그간

수없이 자살을 기도했던 터라 자매의 영혼에 자살의 영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자매에게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제 목숨을 제 마

음대로 하려 했던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 회개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데 주님이

용서 안하시겠습니까?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나면 그 사람은 그 죄에 대

해서 깨끗해집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

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저는 다시 명령했습니다.

'귀신아! 너는 이제 있을 곳이 없다. 이 자매는 용서 받았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나가!' 그랬더니 그 때부터 귀신은 꼼짝없이 전부 나갔습니다. 귀신이 모두 나가자 자매

의 얼굴은 몰라 보도록 훤하게 광채가 났습니다. 눈이 반짝 반짝 빛나 보였습니다. 같은

얼굴인데도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예뻐지기 원하십니까? 용서하십시오.

그러면 영적인 아름다움이 나타납니다.

 

'선교사님!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저는 문득문득 음란한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 교

회에서도 여자 성도들을 보면서 야하고 추잡한 생각을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저도 제 자신에게 말해보지만 그게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기도하

는 것도 힘듭니다.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야한 영상이 자꾸만 떠올라 미치겠습니다.'

어떤 형제님이 저에게 이런 문제를 토로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다 듣고 그 분에게 이

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형제님, 그건 형제님의 생각만이 아닙니다.' '예? 무슨 말씀이세

요? 제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데 제 생각이 아니라뇨?' '그렇죠. 형제님 머리 속에서 떠

오르죠. 그런데 형제님, 그건 형제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사탄이 그 생각을 넣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각나게 하여 말씀하실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귀 또

한 우리에게 생각을 넣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

탄이 넣어주는 생각은 죄의 생각입니다. 음란한 생각, 훔치는 생각, 속이는 생각, 거짓

된 생각, 추한 생각, 더러운 생각을 넣어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생각을 주

입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생

각하는 이 추하고 더러운 생각, 남자분들의 경우에는 음란하고 야한 생각들 때문에 괴

로워합니다. 이럴때에 대체로 누구를 미워하게 됩니까? 바로 자기 자신을 미워합니다.

 

이러한 자기 증오는 또 하나의 함정이 되고 맙니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생각을 할까?

이러고도 내가 집사냐! 내가 어떻게 장로냐? 이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나?' 그

러면서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지할 때 쓸데없이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무지는 사람을 잡습니다.

무지할 때 우리는 당합니다. 무지할 때 우리는 손해를 많이 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무

지할 때 우리는 당하고 손해 볼 때가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무지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당합니다. 승리를 맛보지 못합니다. 저

는 그 형제님께 요한복음 13장 2절 말씀을 보여드렸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이렇게

사탄은 우리에게 나쁜 생각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귀는 흔히 만화에서 보

듯 머리에 뾰족한 뿔이 두개 나있거나 화살같은 꼬리가 달렸다거나 삼지창을 들고서 우

리에게 접근해 오지 않습니다. 사탄은 자기정체를 드러내지않습니다. 사탄은 교묘합니

다. 그런 생각이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생각을 조작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형제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형제님, 사타은 대개 우리의 약점을 알고 찌릅니

다. 형제님이 지금 이렇게 야하고 음란한 생각을 하는 것도 사탄이 그 약점을 알고 찌르

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형제님, 혹시 포르노 잡지나 비디오를 보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형제님은 머리를 북북 긁으면서 멋쩍게 대답합니다. '예, 학교 다닐 때 친구들하고 좀

보고, 그 후로 조금 더 봤습니다..'

 

'네, 귀신은 이런 일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귀신은 그것을 알고 훼방하는 것입

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려고 눈만 감았다 하면 봤던 포르노, 비디오, 잡지의 장면이 떠오

르고 교회에 와서 여자 성도들을 볼때에도 자꾸만 그런 영상이 떠오르게 하는 겁니다.

형제님, 형제님이 보셨던 것들에 관해 주님께 용서를 구하시고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이제부터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피합

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

라'(약4:7) 며칠 후에 그 형제님을 만나게 되어 어떠신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형제는 흥

분하며 대답했습니다.

'선교사님, 진짜 효과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했더니 더러운 생각이 그 자

리에서 끊어지더라고요! 승리를 맛보니 더욱 통쾌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당신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

적할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

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마16:17) 교통 정리

하는 경찰을 보십시오. 그 경찰이 아무리 체구가 작더라도 호루라기를 불면서 손을 내

밀면 모든 차들이 멈춥니다. 왜냐하면 모든 차들이 그 신호에 따르도록 그 경찰에게 법

적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귀를 제압하는 권

세를 주셨습니다.

 

저는 다시 그 집사님께 이렇게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집사님, 이렇게 하십시오. 이

제부터 혼자 있을 때 야한 생각이 떠오르면, 기도하려고 하다가 추한 생각이 떠오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잠잠할지어다라고 명령하십시오.' 명령할 때 큰 목소리를 내

야 귀신이 더 두려워 할까요? 그래서 떠나갑니까? 아닙니다. 큰 목소리에 권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큰 목소리에 권세가 있다면 우리는 귀신을 쫓을 때마다 확성기를

하나씩 들고 다녀야 합니다. 그러나 권세는 예수님의 이름에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너를 대적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어떤 분들은 귀신을 쫓을 때 크게 소리를 질러야  능력이 있다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아니면 누가 귀신 들렸을 경우, 그 사람을 때리면서 귀신을 쫓아야 된다

고 합니다. 성경에 어느 곳에서도 구타하면서 귀신을 쫓아 내라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심한 경우에는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면서 구타로 사람을

죽이는 사건들도 일어났습니다. 무지가 사람을 죽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꾸 가위눌리는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가위 눌리는 사람들의 고백을 들

어보십시오. 눈을 뜨고 있고, 정신도 멀쩡한데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무언

가 자기를 누르고 있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평균 세 번씩 가위 눌리는 사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끊어질지어다. 주여! 주님의 보혈로 덮어주시고 보호하여 주옵소

서'라고 기도하자 더 이상 가위 눌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어느 자매님은 이런 체험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혼자 누워 있는데 누가 만

지는 것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아무도 없고 혼자 누워 있는데 자신의 비밀한 부분을 더

듬는 것 같아 너무나 무섭다고 말합니다. 설겆이를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팔로 쑥 끌어

안는것만 같아 집에 혼자 있기가 두렵다고 고백하는 집사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수작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두렵게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무지하면 속습니다.

 

특별히 성적인 부분을 만졌다고 말하는 자매의 경우에는 성적으로 문란한 배경이 있었

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했던 혼전관계가 그 자매의 약점이었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약점

삼아 그 자매에게 심한 두려움을 심어준 것입니다. 이 자매는 성적으로 문란했던 자신

의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그런 다음 '더럽고 음란한 귀신아! 떠나갈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라고 대적했더니 더 이상 그런 일이 반복되

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응어리를 풀라 / 크리스티김 >

 

마음에 어떤 아픔이 있습니까? 마음에 분노, 실망, 외로움, 슬픔, 답답함이 꽉 차 있을 경우,

문제는 그 상한 감정을 느끼기 싫어진다는 겁니다. 자기가 분노를 느낀다는 것도 지긋지긋하

고,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싫어집니다. 그 느낌이 싫으니까 과거의 아픔을 다루려는 생각조차

도 싫어합니다.

 

이런 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불륜의 관계를 맺으며, 불

신자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으신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심지어 사역

자들까지. 안타깝게도 하나님 앞에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는 것 같아도 교회 밖에서 보는 그들

의 삶의 모습은 너무나 부끄러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성적인 죄, 음란함이 있습니다.

결혼했는데도 다른 이성과 은밀히 만납니다. 또는 결혼하기 전에 관계를 갖습니다. 찬양대에

서 봉사하거나 더욱이 리더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감추어진 죄를 반복해서 지으며 하나님 앞

에 부끄러운 행동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척합니다. 왜 이런 모습들이

있습니까? 상한 마음이 치유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없으면 죄를 즐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사랑과 진리로 치유되면 죄가 싫어집니다.

 

마음이 허하고 외롭고 힘들면 배도 안 고픈데 자꾸만 먹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먹

는게 죄가 되나요?"라고 하지만 먹는 것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탐식은 죄입니다. 특히 여자

분들의 경우 남편한테 구박받거나 부부싸움하고 난 뒤, 남편 출근한 뒤 배도 안 고픈데 괜히

자꾸만 먹습니다.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나 외로움을 풉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체중이 불어나

고 더욱 울적해집니다. 체중이 늘어난 아내에게 남편이 핀잔합니다.

"당신, 자꾸 둥그레진다. 못 봐주겠어. 자꾸 살찌면 이혼감이야."

 

남편이 이렇게 툭툭 내뱉는 말에 아내는 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시 먹

습니다. 악순환입니다. 저도 예수 믿기 전에(한동안 신앙을 가진 후에도) 마음이 허하고 울적

할 때면 굉장히 먹었습니다. 뷔페식당에 가면 무섭게 먹었습니다. 배가 불러서 트림을 꺽꺽

하면서도 계속 먹었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파서 먹었던 것이 아닙니다. 공허함과 외로움을 채

우려고 먹었습니다.

 

환갑이 넘으신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신앙의 열심은 있었지만 두 가지 문제 때문에 괴

로워했습니다. 첫째, 현재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와의 관계가 평생 좋지 않았다는 점, 둘째, 옷

의 사치가 심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정적으로 축복해주셨기 때문에 물질로써 주님을 섬기고 싶은데도, 예쁜 옷을

보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에 옷을 구입하는 데 드는 돈이 엄청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옷장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수많은 옷가지 때문에 방 하나를 옷장으로 사용할 정도입니

다. 교회에서 바자회를 할 때마다 많은 옷을 내놓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계속 옷을 나눠주는데

도 옷을 둘 곳이 모자랍니다. 옷에 너무 많은 돈을 낭비한다는 죄책감에 옷을 그만 사기로 아

무리 다짐하고 결단해도 도무지 속수무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 강의를 들은 권사님은 왜

자기에게 이런 문제가 있는지,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지 묻고 기도하던 중에 주님의 음성을 깨

달았습니다.

 

주께서 권사님이 태어난 날의 환상을 보여주시는데, 권사님의 어머니는 딸을 넷이나 낳고 창

피해서 더는 못 살겠다면서 갓난아이를 방 한구석으로 밀쳐놓았습니다. 같이 죽겠다고 하면

서 젖도 안 물리고 본인 역시 미역국도 안 먹고 이불을 뒤집어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환상

중에 주님께서 권사님에게 말씀했습니다. 평생 어머니와의 관계가 어려웠던 것은 태어나자마

자 받은 거절감 때문이라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벽, 거절감의 벽이 어머니와의 사이를 갈라

놓았으니 먼저 거절감의 벽을 허물고 어머니를 용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두 번째 문제를 놓고 기도하던 중에는 불현듯 열 살 때의 일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주 예쁜 블라우스를 사다가 셋째 언니에게 입혀주셨습니다. 그 블라우스가 어찌나 예뻐 보

이던지 열 살배기 소녀는 어머니에게 자기도 하나 사달라고 막 떼를 썼는데 어머니는 즉시

"네 언니는 무엇을 입혀놓아도 예쁘지만, 너는 아무리 예쁜 옷을 입혀도 소용 없어!"라며 면박

을 주더니 아예 사주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 같지만 그때부터 권사님

의 마음 가운데 예쁜 옷에 대한 욕심이 자리 잡게 되었고 어른이 되고 재정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니까 무절제하게 옷을 사들이게 된 것입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

니라"라는 야고보서 5장 16절 말씀에 의지하여 우리는 함께 기도했습니다. 먼저 권사님이 넷

째 딸이라고 마다한 어머니, 못생겼다고 박대하던 어머니를 용서하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

런 다음 제가 권사님을 위해 기도해드렸습니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옷에 대한 욕심

과 집착이 끊어지게 해달라고.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권사님은 백화점에 다녀오는 길이라면서 얼굴에 환하게 기쁨을 내비췄

습니다. 양손으로 제 손을 꼭 잡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교사님. 어제 우리가 드린 기도가 정말 효과가 있네요! 혹시나 해서 백화점에 가보았는데

제가 어른이 된 후 난생처음으로 백화점에 들어갔다가 옷을 안 사고 빈손으로 나왔어요! 전에

는 이 옷도 사고 싶고 저 옷도 사고 싶어 못 견디다가 적어도 한 가지 옷은 꼭 사가지고 나왔

는데 오늘은 옷을 봐도 마음이 덤덤하고 사고 싶은 충동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우리는 함께 손을 잡고 기뻐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주님께 고백하십시오. 누군가와 나누고 함께 기도할 수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그렇게 할 때 놀라운 평강과 기쁨, 자유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의 마음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당신은 외로울 때 무엇을 하십니까? 마음이 상할 때 당신은 어떻게 위로받고자 하

십니까?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 15,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세상으로 좇아 온 것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으

면 세상의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세상의 것은 세 가지 입니다.

첫째, 육신의 정욕입니다. 무조건 몸에 느낌이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탐하는 죄입니다.

둘째, 안목의 정욕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을 눈으로 보고 즐기면서 짓는 죄

입니다. 셋째, 이생의 자랑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높이기보다 자기 성취, 자기 자신을 나

타내며 그것에 자기 정체성을 두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자면, 술, 담배, 마약, 혼전관계, 간음, 근친상간, 동성연애,

음란 잡지, 비디오, 영화, 인터넷사이트, 소아성애, 동물과의 섹스, 나이트 클럽, 도박[복권,

로또도 해당됩니다. 땀흘림과 노력 없는 한탕주의는 성경의 교훈에 위배됩니다.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살후3:10)]

탐식, 충동구매, 쇼핑, 싸움 도벽, 자기학대, 잠(현실을 도피하느라 필요 이상으로 자는 것),

컴퓨터, 돈 명예, 권력, 운동, 일 봉사, 학벌, 수집, 애완동물 등이 있습니다.

 

술, 담배를 비롯하여 탐심, 충동구매 등 먼저 언급된 것들은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시할

때, 거기에 자기 정체성을 둘 때 죄가 됩니다. 컴퓨터부터 애완동물까지 나열된 데는 오해가

없기 바랍니다. 그것 자체가 죄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일이 죄입니

다. 특히 운동, 일, 봉사욕, 학벌욕, 애완동물 등은 우리의 삶 가운데 중요한 것들입니다. 문제

는 이런 것에 중독되거나 하나님보다 더욱 의존하게 될 때입니다. 균형과 우선순위가 중요합

니다.

 

저는 예수 믿기 전에, 마음이 허하고 외로울 때는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서 디스코텍에 가곤

했습니다. 또 그 당시에 '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라는 디스코 영화가 히트

를 쳤습니다. 저는 땀을 흘리며 열심히 춤을 췄습니다. 그렇게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서 춤을

추면 그 때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숙소에 돌아오면 또 허전하고, 외롭고, 내 자신

이 추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응어리졌던 것, 원망스러웠던 것을 예수님 안에서 회개하고 용서받아 마음이

회복되자 먹는 것도 달라지고 그렇게 좋아하던 춤도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대접을 받

아 뷔페식당에 가도 예전처럼 먹지 않습니다. 먹을 만큼 먹고 수저를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

님 앞에서 마음이 회복되면서 절제가 생깁니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마

음이 변화되자 디스코텍에 가는 일도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돈 주고 가서 추라고 해도

싫습니다. 아마 제 마음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면 디스코텍 근처에만 가도 유혹과 갈등을 느꼈

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 앞에 온 몸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더욱 즐겁습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예배들릴 때 저느 찬양 테이프를 틀어놓고 수화로 찬양합니다. 마음이 변하니까 옛

날에 재미있던 것은 재미없어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즐거워하게 된 것입니다.

 

죄를 미워함

 

성숙한 사람은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게 됩니다. 당신의 마

음속에도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 원하십니까?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전에 덧글 달아 주신 분들의 글도 같이 올립니다

 

(하니)

정말 좋은 말씀이네요.. 주님이 이 글을 통해서 저에게 메세지를 주시는것 같습니다.. ㅠㅠ

 

(붉은 천사)

글의 전반부가 완전히 저를 두고 하는 얘기군요. 그래요 ,저는 천국책을 읽고 과감히 버린것이 참 많답니다. 지금도 버리고자 힘쓰고 있답니다. 감화 감동의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신과 세상의 욕심에끌려 종국에는 믿음까지 잃고 심판날에 주여 주여하지만 배척받는 일이 없도록 이미받은 구원을 잘 지켜야겠지요.

 

(은밀한중에 계신 아...)

아버지가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 즐겁내요. 우리는 연약하여 죄짓는일을 거부하기 어려우나 성령님은 우리마음속에 일하셔서 아버지의 뜻이 천국에서 이루어진것 같이 땅에서 특별히 우리의 행위가운데 아버지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읽게되어 즐겁고 고맙습니다


 
예수전도단이 운영하는 열방대학에서 기독교 상담과 내적치유를 가르치는 크리스티김

선교사님의 저서 '인생의 응어리를 풀라'를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고 하나님께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었기에 여러분과 같이 나누고자 본문 중에 몇가지를 발췌하여 올립

니다.

 

"하나님, 그의 마누라가 과부가 되게 해주시고, 그 아이들은 고아가 되게 해주시며, 빌

어먹게 해주시옵소서. 그 집안의 씨를 말려주십시오."

성경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시편 109편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가 이런 기도입니다.

다윗은 그 마음에 품은 것을 그대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의 장인인 사울왕은 그의 딸

을 아내로 줬다가 다시 빼앗아서 다른 남자에게 주었습니다. 이때, 어떤 기도가 나올 것

같습니까? 이럴 때 어떻게 기도하시겠느냐고 묻자 어느 장로님은 "주여, 모가지를 비틀

어주옵소서"라고 기도하겠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마음에 있던 원통함을 하나님 앞에 토해냈습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원수가 코앞에 있을 때도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마음에 원통함

을 품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 마음에 있는 것을 그대로 솔직하게 주님께 토해냈습니

다.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마음을 토하고 주님을 피난처로 삼은 다윗을 향해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포장하고 나오지 않

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폼 잡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솔직히 토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용서하지 않는 자가 당하는 영적 피해]

 

첫째, 용서하지 않으면 마음이 더러워지고 죄를 품게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죄를 품고 있는 자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용서하지 않으면 사탄이 틈을 탑니다.

사탄이 무서워하는 기도 중에 하나가 바로 용서하는 기도입니다.

용서기도를 하면 틈이 없어지고 그 사람에 대한 지배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용서기도를

못하도록 훼방하는 것입니다.

 

셋째, 용서하지 않으면 미워하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우리는 용서하지 않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거부하면서도 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꾸만 생각하다가 그 사람을 닮아갑니다.

 

넷째, 용서하지 않으면 그런 이성과 결혼하게 됩니다.

상대를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을 마음에 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에게 익숙해집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사람을 만나면 친근감을 느낍니다.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다보니

만나면서 결혼까지 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결혼한 다음에야 깜짝 놀라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어느 겨울 수련회 때 대학생들에게 이 주제를 가지고 강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그런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니까 학생들은너나없이 용서기도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얼마나 뜨겁게 기도했는지 모

릅니다. 이미 결혼하셨습니까?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용서하시면 하나

님께서 회복시켜주십니다. 변화시켜 주십니다.

 

다섯째,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과 멀어집니다.

여섯째,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을 닮아갈 수 없읍니다.

일곱째, 용서하지 않으면 관계가 회복되지 않습니다.

여덟째, 용서하지 않으면 몸이 쇠약해집니다.

아홉째, 용서하지 않으면 외롭게 삽니다.

열번째, 용서하지 않으면 과거에 묶입니다.

열한째, 용서하지 않으면 상처가 치유되지 않습니다.

열두째,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용서란 무엇인가?

첫째, 용서는 결단입니다.

용서할 마음이 없지만 용서의 결단을 내리고 고백하는 것, 그것은 가식도 위선도 아닌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변화시켜주시고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용서는 결단입니다.

 

둘째, 용서는 과정입니다.

용서는 한번 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했는데 그 사람이 또 밉다"라고 말씀하

시는 분이 있습니다. 한번 용서했다고 그 마음이 다 풀어지지 않습니다. 용서는 과정입

니다. 계속해야 합니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죽을 때까지 계속 용서해야 합니다.

 

셋째, 용서는 은혜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하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죄사함에 관한 깨달음과 감사가 없거나 있더라도 곧 잊어버리기 때문에 용

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할 때 복을 받습니다.

 

용서의 과정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떤 분은 용서했다고 하고 즉시 그 사람과 화해하거나 그 사람을 신뢰하며 함께 있어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간혹 상대가 전혀 화해를 원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화해는 상호간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화해하기 원하시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주셨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

국 하나님과 화목케 되지 못합니다. 상대방이 화목케 되길 거부한다면 그의 그러한 선

택 또한 용납해야 합니다. 물론 화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만 우리가 그들을 대신하여

결정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 용서했다고 그 사람을 즉시 신뢰하거나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자매가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했는데

그 뒤 그를 용서했고 진정한 용서의 증거로 그 오빠와 단둘이 두려움 없이 방에 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가산을 탕진해가며 도박하는

사람을 용서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돈을 요구할 경우 다시 돈을 줘야 합니까? 그것은 어

리석은 일입니다. 또 공금을 횡령했던 직원을 용서했다고 그 즉시 그에게 다시 재정을

맡긴다면 그것도 지혜롭지 못한 결정입니다.

 

우리가 용서했을지라도 그런 사람을 다시 대할 경우에는 지혜와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경우 잘못된 기준을 주장하거나 불필요한 의무감을 떠안아 본인도 상처받고 상대

로 하여금 또 다시 죄의식에 빠지도록 길을 열어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요즘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진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의 죄를 아무리 낱낱이 들어내고

내가 받은 상처를 아무리 들추어도..

하나님은 그저 내가 어떻게 행동하였는가에 대하여만

초점을 맞추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만큼 나도 사랑하지 않았고

그들만큼 나도 상처 주면서 살았다는 것을 왜..

이제야 깨닫게 된 걸까?..

단지 그들이 나를 증오했다는 이유로

나도 그들을 사랑치 않고 미워한 것을 죄로 생각하지

못했음을 주님은 깨닫게 하시었다..

 

다른 사람들의 죄 때문에 내가 죄를 지었다는 것,

악을 악으로 갚았다는 것이,

이제는 주님 앞에 아무런 설득력이 없어진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했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대했는가?..

선으로 대했는가?

악으로 대했는가?

 

상대가 어떤 사람이었든지간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어떻게 했는가?

그들에게 무엇을 했는가? 하는 엄중한 말씀..

 

상대방의 죄악을 들추어가며 합리화 시켰던 내 자신이

이제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치유는 하나님께 맡기고 심판도 하나님께 맡기고

이제는 나 자신이 스스로 내 행위를 주님 앞에 돌아보며

회개의 시간을 갖게 된다..

회개의 시간..

 

나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시간에

나는 주님을 다시 만나는 은혜 속에 잠겼다..

 

1. 내면이 중요합니다.


 

1) 사람의 삶의 질은 외적 환경보다는 내면에 의해 결정된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 사람들은 외적인 환경을 만들면 삶이 행복해 지는 것으로 생각해서 그것을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정작 그들의 삶의 질은 외적인 부분보다는 내적인 부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2) 내적인 건강이 진정한 건강이다.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
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옵
시며”(엡 3:14-16).
- 사람들은 외적 건강과 안녕에는 몹시 예민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
만 정작 내면적 건강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건강은 내면적 건강이
다.


3)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에 관심이 많으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신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
라”(빌 4:7).
“주께서 네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
라”(살후 3:5).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 1:2).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환경의 모든 것을 다 바꾸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지만, 자녀
인 우리의 삶을 인도하기 위하여 환경이나 외적인 요인보다는 마음을 인도하시고, 생각을
지키시는데 중점을 두신다.


4) 예수님의 사역의 중점은 마음을 고치는데 있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
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사 61:1).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사역은 ‘Preaching, Teaching, Healing’ 이 세 가지의
사역인데, 이 사역의 핵심은 물론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영적으로는 ‘대속’을 통하여
구원하시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그 구원은 ‘마음을 고치는 것’, 즉 ‘마음에 있는 상처를
고치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2. 상처란 무엇인가 ?


 

1) 상처란 상처 난 감정이다.
- 감정에 상처를 받고 그것이 적절하게 해소가 되지 못했을 때 나는 이것을 덮기 위한 방
어기재를 갖게 되고 그것이 나의 감정을 왜곡시키고 뒤틀리게 하며, 원치 않는 증상들이 나
오며, 나의 전 존재를 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2) 상처란 내면의 평강을 빼앗는 것이다.
- 상처는 감정에 받는 것이기에 상처받은 사람의 경우 내면에 평강이 없다. 혹시 감정적으
로 무감각해져서 느낌이 없는 쪽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할 수 있는 데, 이것은 평강이라고 말
할 수 없다.


3) 상처는 관계의 장애를 가져온다.
-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 있는 가장 심각한 현실적 문제는 관계의 장애이다. 상처가 있는 사
람에게 두드러진 특징은 ‘이기적’인 것과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① 하나님과의 관계 장애 : 영적이지 못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신앙
② 자신의 내면과의 관계 장애 : 자학, 자고 등등의 잘못된 자아 인식
③ 다른 사람과의 관계 장애 :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회피하는 것. 건강하지 못한 관계
④ 자연과의 관계 장애 : 일이나 건강에 문제가 있음.
4) 상처를 가지고 계속 살게 되면 결국은 ‘생명력(Vitality)’을 잃게 된다.
- ‘생명력’은 우리의 삶의 질을 재는 척도인데, 상처는 바로 이 생명력을 감소시킨다.
<생명력 = 건강한 삶의 의욕 = 적절한 자존감 = 감동 있는 평강(행복감) = 영적 능력>


 

 

3. 상처의 원인들


 

1) 근원적 원인 : 원죄
모든 인간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잠재적으로).
-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면서 모든 상처를 모든 인간이 다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다.
- 그러나 주변 환경의 영향이나 문제로 이 상처가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 치유 방법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거듭남)


 

2) 간접적인 원인


- 자연적인 주변 환경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세상에 가난과 질병, 그리고 각종 고통이 들어 왔다.
환경적 고통은 그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
특히 어린 시절에 더욱 치명적이다.
* 치유 방법 : 그 열악한 환경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이 아님을 성령 안에서 깨닫
고, 이 고통까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음을 체험하여 아는 것.


 

- 가계에 흐르는 저주(조상의 유전) :
조부나 그 이상의 선대에서 영적이나 반인륜적인 죄를 범한 경우 그것이 그 후손에게 저주
가 되어 내려간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 태어난 사람은 상처를 받을 수 있는 환경 가운데 태
어난 것이다.
유전적인 질병이 있어서 그것이 상처가 된다.
원인 모를 열등감이나 정신적 질환, 그리고 각종 중독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러면서 이것이
상처가 된다.
* 치유 방법
①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결코 숙명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써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야 한다.


 

- 성격의 차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의 성격이 아닌 다양한 성격으로 만드셨다(시 139:13-14).
이 다양성은 축복이지 결코 저주나 죄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이기심)가 다른 사람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상처를 주고 받
게 되었다.
* 치유 방법
① 성격이 서로 다른 것이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아는 것.
② 나하고 다른 그 성격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는 것(성령의 역사).
3) 직접적인 원인


 

- 상처 있는 부모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은 상처 있는 부모이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자식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가깝고, 힘이 없는 상태에서 받은 상처는 그대로 깊은 상처가 된다(태아기, 영아기, 유아기,
학령기).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유전적으로 전이되는 상처도 있다.
* 치유 방법
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상처의 흐름을 끊어야 한다.
② 성령의 능력 가운데 부모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③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해야 한다(은혜체험).


 

- 주변 사람들(형제, 친척, 친구)
우리에게 있는 상처를 가중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나와 분리할 수 없는 관계일 경
우 더욱 그렇다.
비교를 통한 상처를 내게 줄 수 있다.
언어를 통하여 내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폭력적이거나 폭압적 행동으로 상처를 줄 수 있다.
* 치유 방법
① 그들의 행동이 상처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 나의 상처 때문임을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②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


 

- 배우자, 혹은 자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현실에서 보다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상처 많은 배우자이다.
(혹은 자녀이다.
배우자가 상처가 많아서 나의 상처를 불러일으킬 경우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가 훨씬 심각
하게 되어 나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배우자는 때로 치유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지 못할 때는 그만큼 상처
를 많이 받게 된다.
* 치유 방법
① 배우자를 통해 얻으려는 잘못된 기대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② 성령의 능력 가운데 배우자의 내면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그를 위한 치유자가 되
어야 한다.
③ 진정한 가족이고 배우자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해야 한다(은혜체험).


 

- 기타 (교회, 직장 동료, 친구, 이웃 등등)
이들은 우리에게 있는 상처를 자극하는 일종의 환경과 같은 것이다. 본질적인 상처의 원인
이 될 수 없다.
* 치유 방법 :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고 그들을 용납해야 한다.


 

 

4. 상처의 종류들


 

1) 거절감
- 모든 상처의 출발이다.
- 관계의 장애를 가져온다.


2) 굶주림(결핍)
- 관계에 장애가 생기면서 오는 상처로서 애정 결핍이다.
- 집착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3) 분노
- 채워지지 않는 데서 오는 상처이다.
- 분노에 대하여 억압이 시작되는 데 이것이 계속적으로 내면을 망가뜨린다.


 

4) 두려움
- 분노가 표출되거나, 혹 내면에서 표출했을 때 두려움이 엄습한다.
-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하여 온갖 두려움을 느낀다.
* 이러한 상처들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자존감(Self-Esteem)’을 낮게 만들고, 이로 인해 다
음의 두 가지 뚜렷한 상처 있는 내면을 갖게 된다.


 

5) 열등감
-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 가장 심하게 느끼는 상한 감정이다.


6) 죄책감
-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 자신을 정죄하며 더욱 자신의 자존감을 끌어내리는 상한 감정이
다.
* 상처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상처가 다른 상처를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더욱 나쁜
쪽으로 몰고 간다.


 

5. 상처의 발전 과정


 

“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
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사 61:1).
여기에서 주님의 복음의 사역이 ‘마음이 상한 자(brokenhearted)’를 고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이 상한 자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① 상한 마음
- 상처받은 모든 감정을 가진 마음들을 말한다. 자각 증세가 있으나 갈등하면서 지내고 있
는 상태를 말한다.
- 치유 방법
이 상한 마음에 대하여 잘 정리해 준다(상처의 거품을 제거해 준다).
상처받은 반대쪽의 영향을 주도록 한다. 특히 치유의 능력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지속적으로 덮어주면 치유가 일어난다(to bind up).


② 포로 된 마음
- 상처를 올바르게 해결하지 않고 방어 기제(defence-mechanism)를 사용하여 그 상처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상태이다.
- 마귀의 영향을 심하게 받고 있는 상태이며, 각종 집착 등이 나타나고 있다.
- 치유 방법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됨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집착에서, 잘못된 자기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움을 선포해야 한다
(to proclaim).


③ 갇힌 마음
- 이미 정서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장애 상태에 와 있는 상태이다.
- 심한 우울이나 강박관념 등에 잡혀있을 수 있다(마귀의 영향을 심하게 받을 수 있다).
- 영적으로 귀신들림이 있을 수도 있다.
- 치유 방법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치유의 빛을 그 내면에 비추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모든 속박을 풀어야 한다(to release from darkness).

 

 

I. 내적 치유란 무엇인가?


인간의영적 문제, 심리적인 마음의 문제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성경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가는 것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내면적인 상처의 치료이며 영성의 회복이다.


1) 하나님과 나

2) 나와 나

3) 나와 환경


총체적인  인간  구원의  목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 까지이다. 이것은 이미 타락해 버린 우리 마음의 전반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은  뇌와  연결되어  있고  뇌는  컴퓨터와  같은  기억  장치를  가진다.  어떤  특정한  일은  우리  안에  깊은  상처를  내며  우리가  예수님 을 믿은 후 그 상처받은  마음  중에서  의식 속에 감지되는 것은 해결할 수 있으나, 어떤 것은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버려 감지되지  못하기에 치료되지  않고  발병이  시작된  감염  부위처럼  계속적인  영향을  우리의  현재의 삶에 미치기도 한다. 그러기에 성령은 우리 마음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잡고있는  상처들을  치료하시는  일을  하신다.  이것은  계속적으로  되어져야 하는 과정이나 내적 치유세미나를 통하여 가장 주된 문제가 드러나고 치료가 시작될 수 있도록 돕게 된다.

 

 


II. 상처받은 마음


상처받은 마음은 외부적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반드시 삶 속에 그 상처로 인한 결과가 나타난 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원인 모르게 화가 나고 우울하며 심난한 상태가 계속된다. 기도를 해보고 Q.T.도 하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  사실은 기도하고 Q.T.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다만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만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어서 억지로 살아간다. 몸도 아프고 피곤하다.


2)  반복적으로  짓는  죄(술,  담배,  Sex,  오락,  도박  등등에  중독된  것,  남을  험담하고  정죄하는 습관 등)  에서  벗어나올 수 없다.  이제 다시는 안 하겠다고  결심을 하지만 그 결심을 하는 순간에도 나는 결코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3)  늘  무엇인가  나쁜  일이  일어  날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다.  가족이  조금만  늦거나  연락이 안돼도 불길한  생각이 든다.  남들이 다 붙는다는  시험도 나는 안될 것만 같고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지가 않다. 언젠가 내 자신이 만천하에 낱낱이 다 공개 될 것 같은 두려움, 그래서 지금 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심하다.


4)  무엇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쁘게  나를  몰아간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무슨 큰일이 닥칠 것 같고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 신앙생활도  사실  두려움  때문에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주일을  빠지거나  기도를 조금만 게을리 해도 금방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쉬고 싶지만 조금

만 쉬고 있어도 이내 불안해서 쉴 수가 없다.


5)  예수를  꽤  오래  믿고  열심히  믿었는데도  확신이  없다.  잠깐  잠깐  감동도  있고  기쁨도  있었지만 이내 사라지고 여전히 나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확신 있게 선포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더  깊이  헌신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세상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내가 밉고 신경질 난다. 솔직히 예수 안 믿고 신나게사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잘못된  성격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받은  아픔의  결과이며  죄의  결과이다.  이것은  반드시  치료되어야만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성격은 새롭게되고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

 


III. 하나님만이 인간의 마음을 온전히 치료하실 수 있는 이유

 

1) 인간에게는 네 가지 마음의 영역이 있다.

  - 내가 알고 남도 알 수 있는 부분,  

  - 나만이 알고 남은 모르는 부분,  

  - 나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은  아는  부분,   그리고 

  -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부분이다. 

 

그중  자신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잠재의식의  부분이  인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  잠재  의식  속에  성격을 형성하게 만든 뿌리가 들어있다. 그러므로 잘못된 성격과 마음이 온전히 치료되기 위해 서는 잠재 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는 상처들의 치료가 필수적이다. 잠재의식의 형성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그  영역은 자신이 인식할  수 없는 수많은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인간의 마음을 치료하실 수 있다. (시편139)


2) 인간의 잠재 의식 속에는 부모의 여러 영역이 유전 되기도 한다. 이것은 계속 거슬러 올

라가면  인간의  처음  조상인  아담과  이브의  원죄로까지  연결된다.  이러한  문제의  구체적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행(4:12)    


3)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잠재 의식 속의 문제를 여러 가지  인간적인 방법으로  추론

하고  진단을  내렸을지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치료이다.  지나간  내  인생의  과거 문제까지를 치료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lV. 내면의 치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하신 가장 중요한 사역은 영적으로 죽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병든

인간의 마음 (성격) 을 치료하시는 것이었다. 그분은 우리의 내면적인 상처들이 치료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 마 9:12 ~13, 사 53:5, 사 61:1~3)

 

 

V. 인간이란 무엇인가?

 

1) 성경적으로 볼 때 인간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습니까? (살전5:23)
2) 몸(body) :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신 그것 (창 2:7) 동물과 동일한 부분이 많다(창2:19).   

3) 영 (spirit) :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호흡 (창 2:7)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통로가 됨 (고전 2:12, 요 6:63)

4) 혼 (soul) : -몸과 혼이 만나면서 생긴 것 (창2:7)

 

- 생령이 된지라 living being 혹은 living soul

- 지(知), 정(情), 意 (의),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격'이라는 말로 어느 정도 대치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외형적으로 인간을 대표하는 것은 이 '혼' 이다.

 


VI. 상처란 무엇인가?

 

1) 상처는 원칙적으로 '감정'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심한 감정의 상함을 입었을 때에 그것이 해소되지 않고 남아있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처

리되면 (예 :망각  속으로  처리), 그것이  상처로  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나는  상처

도  있을  수  있고,  기억은  나지  않으나  어떤  순간에  감정으로  터져  나오는  경우의  상처도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있지  않는  것을  미리  상상하여  분노하거나  염려하고   때로 부적절한 감정을 보이고는 당황하게 됩니다.


2) 상처라는 것이 감정에 국한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이란 '통전적(holistic) 존재'이므로
감정에 남아 있는 그 상처가 인간의 전 존재에 심각한 장애로서의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 입니다.

--> 지적인 장애, 의지적인 장애, 영적인 장애, 육적인 장애


3) 이 상처들이 우리의 내면에 있을 때 여러 가지 장애들을 일으키는데 특히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갖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적 치유란 관계 회복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성령의 역

사 가운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4) 상처란 비 신앙인(Non-Christian)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인에게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사역자가 되어서도  상처를 주고받으며  갈등과  괴로움 속에서 허덕일  수  있으며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죄  가운데  빠지기도  합니다. (예: 사도바울, 마틴 루터,고든 맥도날드)    


5) 상처는 나름대로 고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더 상처에 민감하며, 그래

서 더 많이 상처를 받게 됩니다.(상처의 악순환)  

- 내면적으로 하나의 상처가 다른 상처를 불러일으킴

- 자신의  상처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반응하여  주변에게  상처를  주고  그러므로  본인이다시 상처를 받음

- 주변의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어렵게 가져가고 분위기를 힘들게 함


6)  상처란  하나의  세력입니다.  물리적인  상처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한번  치유 받았다고 해서 완전히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VII. 상처의 종류들   (아픈 마음의 증상들)

 

상처의 종류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내면이나 경험을 대입하며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봅시다.


1) 아픈 마음의 증상들

· 거절감 (버림받음) / 창 3:23-24, 욥 6:4

- 모든 상처의 출발

- 거절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아감

- 사람과 깊은 관계를 갖지 못함

- 삶이 점점 폐쇄적이 되어 감


· 결핍 (굶주림) / 창 3:17-19, 암 8:11-13

-무엇엔가 집착하게 됨 (일,사람,물건,쾌락 등등)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지나치게 애씀

-사람을 독점하려 하여 결국 관계를 망가뜨림

-분노가 자주 일어남


· 분노 / 창 4:6-12, 요 12:5

-모든 것에 대해 부정적이 된다.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화가 한번 나면 통제가 안된다.

-속으로 화를 억압하므로 불안감이 늘 느껴진다.


· 두려움 / 창 3:10, 4:14

- 우상 숭배에 빠짐

- 약에 집착함

-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불안감

- 문제가 있으면 바로 과거로 회귀

- 결정을 내리지 못함

 


2) 상처로 변형된 마음

앞에 열거한 여러 가지 증상들 때문에 일그러진 상한 마음이 보이는 증상

 

· 열등감 / 출 4:13-14, 렘 1:6

- 앞에서 열거한 상한 마음의 증상이 다 나타남

- 자존감(Self-Esteem)이 낮음 / 매사에 자신 없어 함


a. 낮은 자존감은 잠재력을 마비시킨다.

b. 낮은 자존감은 꿈과 이상을 파괴시킨다.

c. 낮은 자존감은 대인관계를 망가뜨린다.

d. 낮은 자존감은 하나님의 부름 (Calling)을 거부하게 한다.

-무책임함 / 일을 중도에 그만두고 도피함


· 죄의식 / 롬7:24, 눅 15:18-21
-불안감 /언젠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완전주의 증상들 / 지나친 희생과 봉사

- 다른 사람을 향한 정죄,강요

-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생활을 못함


 

3) 상처의 원인들

 

· 불행한 가정 환경

문제가  있는  부모, 너무나  무섭기  만한 아버지,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 부모님의  부부싸움   무관심한  부모, 화만 내고 잔소리가  심한  어머니,  부모의 일관성 없는 태도 etc.                                 

- 결손된 가정

 

· 과잉보호
- 과잉보호는 자녀에게서 선택을 통한 자신감을 박탈하고 결국 열등감을 갖게 한다.

- 과잉보호는 자녀에 대한 불신감의 표현으로 열등감을 갖게 한다.


· 조건적 행위

- 네가 무엇을 해야 내가 이것을 해주겠다는 식의 교육


· 비교

-비교는 강한 거절감의 표현입니다.

-비교는 언제나 열등감으로 끝이 납니다.


· 원죄처럼 유전되는 상처

- 내리 분노

- 자기 좌절감 : 배변 훈련


 

VIII. 상처들로 인하여 오는 장애들

 

1) 인간의 전 존재에 걸쳐 일어나는 장애들

 

· 육체적인 장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마 4:23-24, 왕상 19:4)

- 여러 가지 신체적 질병
   마음의 상처가 육체의 신진 대사에 영향을 미치므로 식사 습관, 수면 습관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 무력증

 

*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육체의 치유를 언제나 내면적 치유와 함께 하셨습니다. (요 5:14)


· 인격적인 장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렘 1:6, 삼하 11:1-4, 창 4:5-6, 창 32:7)
-정서 불안   (장애)

-대인관계 장애/가족 관계 장애

(성적(性的) 장애,자폐성 장애) , 공동체 적응 실패

 

· 영적 장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삿 11:30-31, 창47:9, 갈4:9)

-왜곡된 신앙 / 조건적 신앙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함/구원의 감격이 없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거부

-구원의 확신은 있으나 구원받은 자가 누릴 권리인 `평강(Salom)'을 누리지 못함


2) 인간은 네개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 하나님과의 관계

- 자신의 내면과의 관계

- 이웃과의 관계

- 자연과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상처가 장애를 일으키는 영역은 이 네게의 관계 전체 다입니다.

a. 상처로 인하여 오는 육체적인 장애는 우리의 어떤 관계를 어렵게 하는 것입니까?

b. 상처 때문에 겪는 인격적인 (흔적인) 장애는 우리의 어떤 관계를 어렵게 합니까?

c. 영적인 장애는 어떤 관계를 어렵게 합니까?


 

*결국  상처는 "보이지 않는 변화 (소속의  변화)"에서 "보이는 변화 (삶과  인격의  변화)"에로의 전환을 어렵게 합니다.

 

그러면 이런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습니까?

어떤 공식이나 절차 에 의하여 치유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다만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가능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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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다음에 나오는 성경의 인물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원인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1. 가인은 왜 동생 아벨을 죽이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창 4:3-8)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으시지 않은 이유(창 4:7)

-거절감의 폭발/거절감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죄의 소원이 있으나 그것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2. 야곱의 이야기

- 야곱은 왜 그렇게 장자권에 집착했습니까? (창 25:27-34)

- 야곱은 왜 그렇게 병적으로 라헬만 사랑했습니까? (창 29:11-12, 창 33:2) 그리고 열두 아들 가운데 요셉과 베냐민만 사랑했습니까?(창37:3-4,33-35,42:4)

- 야곱은 믿음의 사람이면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왜입니까?

a. 아버지 이삭과의 관계 (창 27:12)

b. 외삼촌이면서 동시에 장인인 라반과의 관계 (창31:51-52)

c. 형 에서와의 관계 (창 32:7-8)

d. 부인 레아와 자녀들과의 관계(창 29:32; 37:32; 49:3-7)

- 야곱이 인생의 말년에 자신의 삶에 대하여 스스로 내린 결론은 무엇입니까? (창 47:9)


<이유>       

a. 경쟁적이고 투쟁적인 삶을 살았다. (속이고 속고) - 굶주린 마음

b. 사람과 깊이 사랑하고 교제하지 못했다.

- 표면적으로는 다 좋았으나...,

- 열등감

c.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난다는 의식, 즉 일종의 거절감속에 살았다.

d. 자기에게는 결국 나쁜 일이 오고야 말것같은 불안감속에 살았다.

(창 34:30, 38:30, 42:4)   - 죄책감

e. 주변과 자녀들에게 분노를 품고 살았다. (야곱의 유언)


3.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거절한 이유는? (출 2:14,4:13)

-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민 20:10, 시 106:32-33)


4. 사울왕

- 처음에 나타난 사울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삼상 10:22)

- 그러나 그것은 열등감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삼상 9:1-2, 9:21).

- 사울이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를 드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삼상 13:11)

-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열등감은 그를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삼상18:7-9)

(1) 스스로 자신감을 일고 평강을 잃었습니다.

(2) 모든 결정이 그런 열등감에서 나온 부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예  : 딸의 혼사).

(3)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어려워져 가게 되었습니다 (아들, 딸,  사위,  신

하,  제사장,백성)

(4) 다윗을 쫓는데 온 정력을 낭비하고 결국 불레셋에게 전사당함


5.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이유는? (시 51:11)

- 다윗은 사랑 받지 못하는 잊혀진 아이였습니다.  (삼상 16:11)

- 다윗은 형제들에게서도 따돌림받는 아이였습니다.  (삼상 17:28)


6. 요나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한 이유는? (욘1:2,4:1,4,8-9)

-요나는 분노의 사람이었습니다.


7. 사도 바울이 마가 요한 문제로 바나바와 다툰 이유는? (행전15:37-39,딤후2:4-5)
- 바울은 엄격한 아버지와 엄격한 교육 환경 속에서 상처받으며 성장했습니다. (행전22:3)   --바울은 분노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늘 괴롭히는 완전주의자적 증상이 있습니다.

-바울은 내면적인 갈등이 많던 사람입니다.(롬7:24).

 


II.  상처  있는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평강이  없었습니다.


1. 히 11:32-34
- 기드온 : 삿 8:24-27

- 바락: 삿4:8          

- 삼손: 삿16:16          

-입다: 삿11:35           
-다윗: 삼하18:33          

-사무엘: 삼상8:5-6


2. 딤후 4:6-8, 9-12, 21 (Q..T)

- 6 절    : 삶의 마지막에 서 있는 사도의 입장

- 7- 8 절   : 영적인 확신과 자신감이 넘치는 부분

- 9-12 절   : 다 자신의 주변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외로움이 깊이 배여 있는 부분입

니다.

- 21 절     : 내면적으로 추위를 느끼는 상태

 


III. 그러나 성경의 인물들은 예배를 통해서 다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 예배를 통한 치유의 이야기를 성경에서 찾아봅시다.

- 야곱 : 창 28:10-22, 32:22-32

- 모세 : 출 3:5 - 4:17 (참조 민 12:3)

- 다윗 : 시 23:1 (참조: 삼상 16:14-23)

- 예레미야 : 렘 1:4-10

- 사마리아 여인 : 요 4:3-26

- 사도 바울 : 행전 18:9-11 (참조: 고전 1:23-24, 갈 2:20,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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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부록>


I.  내면이  중요합니다.  상처  치유의  첫  단계는  우리의  내면이  외적인  모든  관계를  어렵게  하는원인이 됨을 아는 것입니다.
-환경 때문에 힘들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상대방에게서 문제를 찾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못됩니다.

- 내면이 평강 가운데 있을 수 있다는 소망이 없이는 모든 관계회복이 불가능합니다.

- 모든 상황에서도 평강을 유지할 수 있는 내면이 중요합니다. (빌4:7,11-13).


II. 드러내기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치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상처받은 것이 속에 쓴 뿌리로 남아 있어서는 절대 치유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 감춘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 피해는 어떠합니까?
(관계 파괴라는 측면으로 생각해 봅시다)

창 3:8-10       
창 3:7,16      

창 4:7,9      

요일 1:8
요 3:19-20

마 23:27      


*'감추기'는 가장 일반적이고 강력한 '방어 기재(Defence Mechanism)' 입니다.


2. 십자가는 상처의 표출입니다.

- 십자가는 영광의 상징이 아니라 추함의 상징이다

(고전1:23).        

- 십자가를 쳐다보아야 산다 (요 3:14) (민 21:8-9).


3.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이 십자가를 통한 드러냄을 현재 내게 일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 16:8)


4.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우리도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의  부활과 연합하여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새로운 몸은 영,혼,육 전 존재가 다 새로워지는  것이며,  이  구원의  순간에  엄청난  치유가  우리도  모르는  순간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치유) 이 치유의 내용을 좀더 살펴봅시다.                        


 

A. 십자가가 모든 방어 기재를 무너뜨린다.

-버림받은 마음 : 가장 지독한 버림받음 (사53:3, 갈 3:13)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굶주린 마음 :   모든 사람에게 빼앗기고 탈취 당함

(마 27:35, 요 13:1,4, 마 26:26-28) (내가 목마르다)

-분노하는  마음 : 십자가는  가장 강한  자기 부정이면서  동시에  가장  강한   상대방

에 대한 인정이다.

-주님은 모든 자의 분노의 표출을 다 받아 주셨다.

-십자가는 폭력에 대한 비폭력 대응이다.(마 27:1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십자가는 전통과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선언이다.(갈5:1, 마27:51)

-열등감 :십자가는 가장  낮은  위치이다. 그리고 인간의  인위적  노력에  대한  부정

이다. (고전 1:22-29)

-죄의식: 죄의  모습과 비참함을  적나라하게  보이면서도  죄의  권세를  무력하게

함. (롬6:6)   (네가 오늘 나와 낙원에 있으리라.)


B. 상처난 감정을 보혈로 감싼다.(엡 2:13, 히 9:7-22, 계 7:14)

 

C. 상처난 몸이 죽고 깨끗한 몸으로 부활한다.

- 강력한 치유의 경험으로써 '원죄'의 사슬을 끊어 버리는 사건임 (롬 6:6-11)


5. 구원 받을 때 치유되지 못한 부분들은 계속 치유를 받아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예배를 통한 치유입니다.

 

A. 예배란 무엇인가 ?

 

-구약에서 'abedah' 라는 말로서 '섬김' 이라는 뜻인데 이는 '종' 이라는  뜻의

'ebed'라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의 종은 노예가 아니라 주인

에게 있어서는 자녀와 같은 친밀한 존재라는 사실은 주목해야 합니다.

 

-신약에서 'proskuneo'라는말로서 '- - 에게  입맞추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

는데 존경과 친밀감을 가지고 엎드리어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관계  회복이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  인간의

전 존재가 창조의 질서로 돌아가 는 체험인 것입니다. 흙으로 되어진 몸에 하나님의 호

흡이  임하여  생령이  되던  그  체험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가장  강력한  치유의  순간이며, 회복의 기회입니다.

인간이 맺고 있는 네개의  관계는 사실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이 하나의  관계가 어떠한가에 의해 파괴되기도 하고 회복되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된 이후로 자신에 대하여 스

스로  수치와  두려움을  느끼는  자신과의  관계  파괴를  경험하고 (창 3:10 ),  그

다음  이웃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창 3:7,12), 자연과의 관계도 파괴된 사실(창 3:18)만 보아도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예배는 치유와 관계 회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B. 예배를 통한 치유의 과정은 어떠합니까 ?

- 말4:2    

- 사 11:6-9    


상처란 심하게 상한 감정의 흔적입니다.

그모든 관계를 어렵게 하는 쓴 뿌리입니다. 이런 상처가 왜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요?

것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있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의 몇 가지가 되지 않고는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없이는 상처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2. 상처받던 그 순간의 감정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치유가 어렵습니다.

3. 드러남이 없이는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4. 드러날 뿐 아니라 보혈로 덮지 않고는 치유가 어렵습니다.

5. 구원의 감격을 늘 새롭게 경험하지 않고는 완전한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 전심을 다해 도움을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고 우리는 구원받은 감격과 생명의 능력 가운데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뛸 것입니다.

 

이 글은 평안공주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카를로스 아나콘디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은혜출판사, 244~246p-

 

  나의 어린시절은 매우 가혹한 고통을 당하곤 했습니다. 사춘기 시절에 남편

을 만나서 겨우 행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역시

고통스럽게 지냈습니다. 두 사람이 가정을 꾸리고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지만

과거에 내 마음 속에 깊이 심어졌던 증오심과 원한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돈이 나의 마음 속의 진실을 숨겨주리라 생각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딸에게서 남편이 직장동료인 젊은 여자아이와 불륜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던 증오심이 더욱더 커져서 어

떻게 남편을 죽일까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부엌칼이나 면도칼, 권총

이라도 사용하여 남편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남편의 몸에는

그 상처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온 마음은 증오심에 사로 잡혀 있었고, 우울증 상태로까지 악화되어 갔습니

다. 체중은 15킬로그램이 줄었고, 거식증에 걸려 버렸습니다. 보통의 일상생활

을 영위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고, 침대 위에 누워서만 생활하는 지경에까

지 이르러 아이들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에도 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자살 욕구가 너무 심해서 혼자 있으면 자살을 시도하곤 했지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가 곁에 있었습니다. 달리고 있는 자동차를 향해 몸을 던지기도 하고,

철길에서도 자살을 시도해 보았지만 모두가 미수로 그치고, 그때마다 발각되

어 집으로 데려와 졌습니다. 식사도 하지 않고 정상적 수면도 취하지 않아서

신체의 모든 기관이 부조화에 빠지고 쇠약해 갔습니다. 그 결과 반신불수가 되

어 얼굴 전체와 신체의 우측 절반이 비틀어져 버렸습니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

아보자 진단은 "편집정신분열증" 이라고 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

다.                         


  어느 날 라디오를 듣던 중 나의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카를로스 아나

콘디아 형제가 치유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을 방송으로 듣

게 되었습니다. 그 전도집회에 가기로 마음먹고 병원 관계자를 어렵게 따돌리

고 온갖 노력을 다하여 집회장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나의 상태가 너무나도 심

하고, 한심스러웠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안내 봉사자들은 나를 곧 바로 카운

셀링을 위한 곳으로 데려 갔으며 그곳에서 카운셀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거의 광란의 상태여으며 시선은 초점이 없었고 눈을 크게 뜨고 한

쪽만 멍하니 바라보곤 했습니다. 아나콘디아 형제가 나를 위해 기도했을 때 반

신불수상태였던 몸의 우측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

도 잘라 찢어내는 듯한 예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뭔가 무거

운 것이 어깨에서 떠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짐승처럼 비명을 지르

기 시작하였으며, 그리고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수초동안 나의 몸은 공중에 떠

있엇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 해방의 사역이 행하여지는 천막 안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도록 카운슬러로부터 권유받았지만, 나는

그것을 거부해 버렸습니다.


  그 후 아나콘디아 형제가 나를 위해 개인적으로 기도하기 위해 와서 나의 손

을 잡고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당신의 마음 속에 용서와 평안이

없으면, 이제부터 당신이 무엇을 해도 도움과 해결이 되지 못합니다." 라고. 그

순간 예수님께서 계신 것을 느끼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케 되기 위해

지금까지 증오해 온 남편을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용서하기로 작정하고 그대로 했더니 즉시 몸이 치유되었습니다. 반신불수였

던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출혈도 멈추어 버린 것입니다. 휘어져 있던 등뼈

도 펴지게 되었고 신장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기관들도 정상적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날 이후, 모든 것을 진심으로 주님께 양도해 드리고, 주님을 따르게 되었습

니다. 남편은 주 예수님을 만나고 이제는 부부가 함께 교회에서 소그룹의 리더

로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최근 남편과 불륜 관계에 있던 젊은 여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회개하고 현재는 다른 교

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        베아트리스-

 
<거절감>


1. 거절감(rejection)이란 무엇인가 ?


 

1) 거절감이란 과거에 거절 받은 아픈 감정이 부적절하게 작용하는 마음이다.
과거 부당하게 거절당하거나 버림받은 경험이 감정의 형태로 속에 남아 있어서 유사한 상황
이나 혹은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부적절하게 튀어나오는 것이 거절감이다.


2) 모든 상처의 출발은 이 거절감인 경우가 많다.
거절감은 상한 마음이 되는 첫 출발이다. 어떤 형태든지 감당할 수 없는 거절이나 버림받음
을 경험했을 때, 그것이 내면의 상처가 되면서 다른 상처를 불러일으킨다.


 

3)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더 쉽게 거절을 느끼고 그로 인해 더 많은 거절감에 시달린다.
상처가 나름대로 악순환하는 이유는 이 거절감 때문이다. 상한 마음의 소유자는 더 많은 거
절감을 느끼고 그것이 더 심한 상한 마음의 상태로 몰아가게 된다.


 

2. 거절감을 갖게 되는 원인들


1) 원죄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이 거절감의 시작이다(창 3:23-24).
-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거절당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지만, 인간은
거절당했다는 자체만으로 거절감을 느낀다.
- 어린 시절부터 모든 인간은 소외되고 버림받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 부모가 거절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 자녀에게 유전된다.


 

2) 경쟁적인 환경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우리에게 시작된 것이 경쟁이고, 이 경쟁은 모든 사람에게 거절감
을 안겨 주었다.
- 형제간의 경쟁과 따돌림, 부모의 편애가 거절감을 갖게 한다.
- 사회에서의 경쟁이 거절감을 갖게 한다(경쟁에서 이기든 지든지 관계없이 경쟁 자체가 거
절감을 갖게 한다).


3) 상처(거절감)를 가지고 있는 부모
부모는 자녀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있든지, 없든지). 그러므로 상처가 있는 부모는 자
녀에게 거절감을 줄 수 있다.
① 원하지 않는 임신과 남녀 차별 - 태중의 거절감과 출생시의 거절감.
② 부모의 부적절한 거절 -일관성 없는 행동 / 지나치게 권위적인 아버지, 지나치게 신경질
적인 어머니
③ 부모의 잘못된 배변 훈련
④ 부모의 과잉보호
⑤ 부모의 편애(편애를 받는 쪽이나 받지 못하는 쪽 모두 다 거절감을 가질 수 있다. )
⑥ 부모의 조건적인 태도 - ‘하면’ 보다는 언제나 ‘하지 못하면’이 더욱 깊은 상처를 준다.
* 부모와의 이별은 자녀에게 깊은 거절감을 준다(사별, 이혼에 의한 헤어짐, 환경적인 헤어
짐, 등등).


 

4) 주변 사람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거절을 했을 때 우리는 심한 거절감에 시달리게 되고 상처
를 입는다.
- 이 경우에 대부분은 원죄와 어린 시절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거절감이 심하게 다시 느껴
지는 것이다.
- 거절감 가운데 가장 심한 거절감은 배신감이다.


 

 

3. 거절감의 증상들


* 우리 인간의 마음에는 벽이 있다. 이것은 자신의 내면을 지키기 위해서 있는 마음의 벽이
다(개성, 자아). 사람들은 이것을 의지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마음의 벽이 하나님
의 다림줄로 재어 보면 많이 기울어져 있어서 어느 날 무너지기도 하고, 또 그것에 의해 삐
뚤어진 반응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암 7:7-9).
이 삐뚤어진 마음의 벽은 사단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파괴하기 위하여 숨어서 노리고 있
는 가장 위험한 곳이며, 이것은 마치 집안에 벽에 손을 대었다가 뱀에 물리는 것과 같은 것
이다(암 5:19).
* 이렇게 우리의 마음의 벽이 삐뚤어진 이유는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권위의 존재
(Authority Figure)가 잘못된 영향을 우리에게 주고 바르지 못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유아기) 잘못 되어진 이 관계는 그의 평생을 힘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겔 18:2).
→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권위의 인물로는 누가 해당되겠습니까?


 

 

 

<거절/Rejection>


1. 감정적인 경우(Emotional)


 

1) 슬픔 - 슬픈 상태가 반복적이고 돌발적으로 나타남
- 슬픔은 누적된 거절감에서 오는 아픔을 대치한 감정이다.
- 슬픔은 일종의 감정의 순환기능 장애이다.


2) 자기 연민(Self-Pity)
- 자기 연민은 나쁜 습관이면서 동시에 죄이다.
- 거절을 경험하는 상황이 되면 언제나 도망치는 하나의 방어기재이다.
- 타인을 조작하여 스스로 자기 연민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든다.


 

3) 자기 증오(Self-Hatred)
- 타인에게 거절당한 상처 때문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거절하는 것이다.
- 또 다른 거절감을 맛보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이다.
-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자신을 포함해서 자기와 연관된 모든 것을
증오한다.


4) 실의(Depression)
- 사회적인 활동에서 움츠러들면서 모든 관계에서 스스로 단절된다.
- 모든 것이 슬프고 희망이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우울한 사고만을 한다.
- 죄의식, 자기 비하, 자기 평가 절하 등이 나타난다.
- 때때로 불면증이 나타나며 의욕이 상실된 상태가 지속된다.


 

5) 무관심
- ‘정열이 없이 존재함, 정신적인 나태함, 또는 감정의 부재’라고 표현될 수 있다.
- 거절과 실패의 기억 때문에 나타난 일종의 방어 기제이다.


 

 

 

2. 지적인 면(Mind)


1) 열등의식
- 삶의 현장에서 여러 번 거절당한 상처는 지적인 영역에서 스스로를 열등하게 인정하게
한다.
- 자기가 열등한 여러 가지 이유들을 늘 수집해 쌓는다.
- 열등의식은 이러한 상태가 오래 방치되면서 굳어진 상태이다.


 

2) 불안정
- 사랑의 결핍과 어린 시절에 경험하는 거절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이다.
- 한곳이나 하나의 사고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고의 방황상태이다.


3) 실패 의식
- 권위 있는 부모나 교사 등으로부터 지속적인 무가치한 대접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것이
다.
-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로 강박관념에 잡히게 된다.
-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고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4) 죄의식
- 내면이 상처로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등이다.
- 어떤 기준에 이르지 못하고 실패한 경험이 누적되면서 나타난 내면의 상태이다.
- 심한 자책감에 시달릴 때가 많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죄의식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3. 영적인 면(Spiritual)


1) 침침함, 죽어감, 꺼짐
- 영적인 부분에 대하여 스스로 관심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 반복적인 거절감의 상처가 자기 존재 속에서, 특히 영적인 면에서 문제를 일으키면서 하
나님과 단절을 해 나가는 과정이다.


 

2) 낙심
- 신앙생활 가운데 자주 낙심을 하는 것은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영적 장애이
다.
- 영적 생활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간헐적으로 계속되는 장애이다.


3) 실망
- 영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버림받은 자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다.
- 영적인 패배상태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것이다.


 

 

 

4. 성경에 나오는 거절감을 가진 사람들


1) 모세
- 모세는 환경적으로 거절감을 갖게 된 사람이다.
출생시의 거절감
유아시절의 경험(3개월간 숨겨짐, 나일강에 버려짐)
바로의 궁궐에서 소외를 심하게 경험 / 다른 민족 속에서의 갈등
- 40세 때의 사건은 그의 거절감을 심하게 강화 시켰다(출 2:14).
-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대인 공포증이 있었다(출 4:10).
- 이스라엘에게 받은 거절감은 분노로 발전했다(민 20:10, 시 106:32-33).
* 두 가지 중요한 사실
- 대부분의 거절감은 출생시와 유아시절에 갖게 된다.
- 상처의 치유는 상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일하지 못하도록 은혜로 덮어놓은
것이다. 언제고 다시 튀어나올 수 있다.


 

 

 

<분노하는 마음>


1. 분노하는 마음이란 무엇인가 ?


 

1) 분노하는 마음이란 마음속에서 부적절한 분노가 자주 일어나는 마음으로서 그것 때문에
내면적으로, 관계에 있어서 고통 받는 마음이다.
- 권위의 존재로부터 부적절한 대우를 받았을 때에, 혹은 권위의 존재와 잘못된 관계 속에
있을 때, 이에 대하여 반항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분노이고 이것은 부적절한 분노가 된다.
그러므로 분노는 상한 마음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표출로서 자신의 내면과 관계에의 어려
움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2) 분노하는 마음은 분노를 억압했을 때 갖게 되는 것이다.
- 자신보다 힘센 대상에 대하여 분노할 때 억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억압은 분노를 자신의
내면에 쌓아두는 것일 뿐, 적절한 처리가 되지 못한다.


 

3) 분노하는 마음에는 반드시 두려움이 뒤따른다.
- 억압되었던 분노를 발하거나 혹은 속으로 분노했을 때 이제 이 분노에 대한 벌을 받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뒤따르고 그러므로 분노하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2. 분노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원인들


1) 원죄
죄의 결과로 하나님과 단절되면서 인간은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마음을 계속 갖게 되고 이것
은 인간에게 있는 지속적인 죄와 분노의 원인 된 것이다.
-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면서 갖게 된 버림받은 마음과 굶주린 마음이 분노의 원인이 되었
다(가인의 경우).
- 원죄의 유전 가운데에는 분노의 유전이 뚜렷하게 들어가 있다(가인의 후예/창 4:23-24).


 

2) 가정환경
① 분노하는 부모 : 분노는 내리 분노이다. 왜냐하면 억압된 분노는 자기보다 힘센 대상에
게 가졌던 분노의 감정을 억압한 것이기에 자기보다 약한 대상인 자녀에게 표출하게 되고,
자녀는 역시 그 분노에 의해 분노를 갖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억압하면서 분노하는 마음
을 갖게 되는 것이다.
② 결손 가정 : 부모가 없음으로 인해서 오는 어려움을 겪을 때, 막연한 대상에 대하여 분
노를 품게 된다. 그러나 그 상황이 분노할 상황이 아니기에 억압을 하게 된다.
③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 : 부모가 사랑을 주지 않으면 굶주림이 오고 필연적으로 분노를
갖게 된다. 그러나 부모이기에 억압하거나 망각 속에 넣을 수밖에 없다. 특히 부모가 편애
를 하는 경우 분노가 심하게 된다.
④ 왜곡된 사랑 : 왜곡된 부모의 사랑은 대부분 자녀를 무시하고 자기 식으로 사랑하는 것
이다. 이런 경우 자녀의 마음속에 직접적인 분노가 있을 뿐 아니라 거절감과 굶주림에서 발
전한 분노를 갖게 된다. 그러나 부모가 힘이 있으므로 억압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분노하는
마음이 된다.


3) 주변 사람들
유아기의 거절과 억압은 분모의 마음을 갖게 하지만, 그 분노는 나중에 만나는 사람들에 의
해 강화될 수 있는 상한 마음이다. 즉, 주변에서 거절과 억압을 자꾸 느끼게 할 때 분노가
강화되는 것이다.


 

 

3. 분노하는 마음의 증상들
* 권위의 인물이 부적절하게 주는 영향력에 대하여 수동적이 아니라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분노의 감정이 그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반항/Rebellion>


1. 감정적인 경우(Emotional)


1) 적개심
- 분노가 그의 내면에서 개성 발달의 장애로 나타난 경우이다.
- 분노가 적절히 해결되지 못하고 내면에 깔리는 것이 반복되면 그것은 내면에서 과잉-억
압의 악순환을 하다가 삐뚤어진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 이러한 감정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것이 적개심이다.


 

2) 자만심
- 노골적인 공허함과 자기 중심주의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 거절당한 상처에 대하여 상대를 얕보거나 평가절하하는 식으로 덮는 방어기재이다.


3) 비속화(궤변)
- 상처를 직시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변형시키는 궤변적인 방어기재이다.
- 여러 가지 잡다한 것을 섞음으로써 거절감에서 오는 상처를 덮으려는 시도를 한다.


 

4) 의기 양양(Elation)
- 실의(Depression)보다 더 심한 같은 부류의 방어기제이다.
- 실망과 저조함을 견딜 수 없어서 인위적으로 계속 자기 기분을 최고조로 올려놓는 행동
이다.


 

 

2. 지적인 면(Mind)


1) 우월의식
- 열등의식을 감추거나 보상하기 위한 방어기재이다.
- 스스로 우월한 것들을 자기 안에 수집함으로써 그런 의식을 만들어 간다.
- 남을 경멸하거나 비하함으로써 모든 관계가 단절되는 그런 피해를 가져온다.


 

2) 경쟁의식
- 편애에 의한 거절감과 결핍에서 오는 상처가 굳어진 상태이다.
- 항상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바닥에 깔고 있는 의식이다.
- 다른 사람의 어떤 것도 인정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보인다.


3) 군림
- 거절 받지 않기 위해 비정상적인 관계만을 맺으려는 것이 굳어진 상태이다.
-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굳어진 내면 상태이다.
- 관계 맺는 방식이 일종의 횡포이다.


 

4) 견고성(완고함)
- 심한 열등감에서 나오는 공격적 반응이다.
-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다는 것은 자기가 무너지는 것이라는 내면적인 의식 상태의
표출이다.
- 고집불통, 배우기를 싫어하는 것 등이 다 여기에 속한다.


 

 

 

3. 영적인 면(Spiritual)


1) 망상
- 자기기만이 심화될 경우 나타나는 것으로 영적인 장애이기도 하다.
- 일어나지도 않고 단서도 없는데 상상 속에서 단정해 버리는 그런 내적 문제 상태이다.
- 피해망상, 의처증, 의부증 등이 여기에서 발전해 나간다.


 

2) 분개 및 쓴 뿌리
- 용서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 분개이다.
- 이것이 우리 속에 자리 잡을 때 쓴 뿌리가 된다.


3) 비판적 성향
- 비판적 성향은 자기 연민의 공격적 변형이다.
- 타인을 비참하게 만듦으로서 자기 비하를 감추려는 방어기제로 영적인 피해를 가져온다.


 

4) 지배욕과 소유욕
- 심한 거절감에서 온 상처에 대한 공격적인 반응으로써 지배욕이 소유욕을 유도하고 소
유욕이 지배욕을 부추긴다.
- 자기 인생에 대한 비하에서 나온 상처 난 감정으로 남의 인생을 대신 살려는 상한 감정
의 표출이다.


5) 조작
- 사랑을 흉내 내지만 오히려 사랑을 말살시키는 악의가 있는 반응이다.
- 심한 두려움과 거절감의 상처에서 온 것으로 거짓을 통하여 배후를 감추려고 한다.
- 제한된 자기 시각 속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며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 자기가 모든 것을 통제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어떠한 대가를 주고라도 상황을 주물러야
한다는 생각에 잡혀 있다.
- 조작자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


 

 

 

4. 성경에 나오는 분노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1) 가인 창 4:3-8
-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으실 수 없었던 이유는 가인의 마음속에 있는 ‘죄의 소원’
때문이었다(창 4:7).
죄의 소원이란 ‘상한 심령’을 말하는 데 이것이 일종의 ‘반항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못하신 것은 그 상처 때문이었고, 결국 분노는
또 다른 거절을 경험하게 만드는 사실에 이르게 된 것이다.
- 거절감이 분노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가인을 죄에 의해 타락한 세상 사람의 대표로 볼 때, 죄의 본질은 ‘상처’인 것이다.
* 두 가지 중요한 사실
- 분노의 희생자는 반드시 소리를 지른다(창 4:10).
- 상처는 자신의 내면 속에서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내고, 상처가 많은 사람은 또 다른
상처의 사람을 만들어 내어서 세상에 상처(죄)가 증폭된다.


 

 

2) 요나
-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 행 배를 탄 것은 분노하는 마음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분노가 솟았지만, 하나님이기에 항거할 수 없고,
또 사랑하시는 것이 당연하기에 불평할 수 없어서 도망치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가 배를 타자마자 배 밑으로 내려가 깊이 잠든 것은 분노 이후에 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이 폭풍은 나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
- 니느웨가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에 분노한 것과 박 넝쿨이 말라죽은 것에 분노한 것은 억
압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 세 가지 중요한 사실
- 분노가 있는 사람은 은혜를 쉽게 잃는다(쏟는다) - 물에서 구원받은 후 요나의 분노
- 분노하는 사람은 분노 때문에 자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 죽는 것이 낫다!!
- 분노를 맞대응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을 때 분노는 힘을 잃는다 - 하나님의 사랑

 

 

<굶주린 마음>


1. 굶주림이란 무엇인가 ?


1) 굶주린 마음이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상처가 아니라 지속적인 애정 결핍에 의해 일어
나는 것이다.
- 거절감은 순간의 경험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굶주림은 지속적인 결핍상태에 의해서
형성되는 상처이다.


 

2) 굶주린 마음은 그 결핍감 때문에 느끼는 불안과 그 굶주림을 채우려는 잘못된 노력에
의한 관계 파괴, 그리고 채우지 못하는데서 오는 분노 등에 의해 고통 받는 마음이다.
- 인간은 굶주림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굶주림을 채우려고 애
쓰게 되는데, 그 과정 전반에서 또 다른 거절감과 이로 인한 분노와 불안, 두려움 등의 문
제가 나타난다.


 

 

2. 굶주린 마음을 갖게 되는 원인들


 

1) 원죄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면서 인간에게 찾아온 것이 굶주림이다(창 3:18-19).
-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후에 인간이 겪게 된 고통은 육신적으로 배고픈 환경만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데서 오는 굶주린 마음의 고통이었다.
- 인간은 근본적인 배고픔 속에 살고 있다(암 8:11-13). 이 근본적인 배고픔을 다른 것으
로 채우고 살려고 하지만 결국 삶의 어느 시점 에 가면 그것으로 채울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2) 가정환경
인간의 근본적인 굶주림을 채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밖에는 없다. 가정은 그런 굶주
림에 시달리지 않도록 막아주는 울타리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거절감을 갖게 함으로써 사랑
의 공급이 끊어지고 이로 인해 굶주림의 고통에 더욱 시달리게 한 경우에 심한 굶주린 마음
을 갖게 한다.
① 결손 가정 : 부모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모든 경우는 다 굶주린 마음을 갖게 만든다.
②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 : 부모가 상처에 의해 사랑을 주지 않을 때에는 굶주린 마음을
갖게 된다 (무관심, 편애에 의한 소외).
③ 왜곡된 사랑 :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하는 방식이 자기중심적이어서 자녀에
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굶주림을 경험하게 된다.


 

3) 주변 사람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배우자 포함)에 의해서 굶주린 마음이 생긴다기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
는 굶주림을 채우지 못하거나 더 심하게 느끼게 하는 경우가 있다.
- 굶주린 마음은 이미 상한 마음이기 때문에 쉽게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순간적으로 채워지는 것 같은 만족감이 있다가 곧 사라진다. 그러므로 더욱 치유가 쉽
지 않다).


 

 

3. 굶주린 마음의 증상들


1) 내면의 상태
-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인한 우울함이 있다. 언제나 이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 속에 살아간
다.
- 다른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또 그렇게 갈구하는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비
하한다.
- 시기심과 경쟁심에 스스로 시달리고,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 남에 대하여 속으로라도 우월감을 가져야 편하다.


2) 관계의 장애
-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갈구한다. 처음에는 굉장히 좋은 것 같으나 나중에는 사람의
진을 뺀다.
-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고 주목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받을 수 없을 때에는
무리한 행동을 하게 되고 이것이 관계를 힘들게 한다.
- 사람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굉장히 공격적이 되고 비난을 하
게 된다.
- 여러 사람이 더불어 친한 그룹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때로 심한 경쟁과 시기의
관계로 끌고 간다. - 이기적인 모습 (욕심이 많은 사람)
- 사람들 앞에서 위선과 교만을 통해 우월감을 나타내려고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갖게 한다.
- 공격적인 사람
- 질리게 하는 사람
- 되지 못하게 교만한 사람


3) 영적인 장애
- 이단이나 건강하지 못한 신앙 형태에 빠질 수 있다.
- 이적이나 현상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신앙 스타일을 가질 수 있다(기복적인 신앙).
-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 신앙의 성장이 어렵다.
- 영적인 교만이나 우월감을 과시하는 신앙 행태를 보일 수 있다.


4) 포로 된 상태
- 굶주림을 채우기 위한 잘못된 집착이 일어날 수 있다(사람, 일, 돈, 명예, 물건 등등).
- 심한 경우에는 ‘중독’이 일어날 수 있다(일, 술, 담배, 마약, Sex, 도박, 오락, Shopping,
등등).


 

 

<중독 현상>


- 몸이 피곤하고 건강을 해쳐도 계속한다.
-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 가족이나 주변과의 관계를 망가뜨리면서도 계속한다.
- 그것에 대한 생각이 항상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 그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심심하고 불안하고 어쩔 줄 모른다.
- 잠시는 의지로 끊는 것 같으나 곧 그런 상황을 찾아가고 거기에 빠져든다.


 

 

4. 성경에 나오는 굶주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


1) 야곱
- 야곱이 굶주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 이삭이 장자인 에서만을 편애한 것 때문이
었다.
- 야곱이 장자권과 축복에 대단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아버지 이삭의 축복, 얍복 나루에
서의 축복 간구).
- 야곱이 라헬과 그의 소생인 요셉을 사랑한 것은 일종의 굶주림에서 오는 집착이다.
- 야곱이 주변의 사람들과 경쟁관계에 있던 것은 굶주린 마음 때문이다.
-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고백한 것은 굶주린 마음으로 살아온 삶 때문이다(창
47:9).


* 세 가지 중요한 사실
- 아버지의 편애는 자녀에게 굶주린 마음을 갖게 한다.
-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무리한 집착을 하게 되고 그것이 인생과 관계를 망가뜨린다.
- 벧엘과 얍복 나루에서의 예배의 체험이 그 굶주림을 채울 수 있는 체험들이었다.


2) 다윗
- 다윗은 막내로 태어나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자라났고, 이것이 그에게 굶주린 마음을 갖
게 했다.
- 다윗은 부인에게 집착을 했다(미갈, 아비가일, 밧세바).
- 다윗의 자식에 대한 집착은 모두 굶주린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암논, 압살롬, 밧세바 사
이에서 난 아이).
-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건을 저지르게 된 것은 내면에 있던 굶주린 마음 때문이었다.


* 두 가지 중요한 사실
- 굶주림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고 있을 때에는 치유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성이 사라질 때는 그 상처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 굶주린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면 갈망하는 마음이 되고 그 굶주림이 하나님의
사랑의 채워지는 것이 은혜의 체험이다. / 다윗의 시편은 모두 이런 은혜 체험의 산물이다.


 

 

 

<두려워하는 마음>


1. 두려워하는 마음이란 무엇인가 ?


1) 두려워하는 마음이란 마음속에 부적절한 두려움이 자주 엄습하는 것으로 그것 때문에
내면적으로 평강이 없고, 관계에 있어서 고통 받는 마음이다.
- 억압되었던 분노를 발하거나 혹은 속으로 분노했을 때 이제 이 분노에 대한 벌을 받게
될 것에 대한두려움이 뒤따르고 그러므로 분노하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 그러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분노 다음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사실 상처가 많은 내면의
사람은 다 이러한 두려움에 자주 잡힌다.


 

2) 두려움은 내면을 지탱하는 어떤 것이 무너져 내릴 때 느끼는 감정이다.
- 사람은 자아를 지탱하고 있는 의지나 열정 등이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부담이나 실패,
좌절, 거절감등에 의해 내면이 무너질 때가 있다. 이때 매우 심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2.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는 원인들


1) 원죄
죄의 결과로 사망이라는 엄청난 벽을 모든 인간은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지속적인 실패
와 좌절을 맛보면서 인간은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나무 그늘에 숨은 것은 두려운 마음 때문이었다.
- 원죄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두려움의 부분이다.


2) 가정환경
① 상처를 자주 주는 부모 : 부모가 자주 상처를 주는 언사를 하게 되면 자녀는 거기에서
어떤 버림받음과 상처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특히 부모가 분노를 자녀에게
퍼 부을 때에는 자녀는 내면적으로 동일한 분노를 느끼면서 동시에 그 분노에 대한 두려움
을 느끼게 된다.
② 심한 싸움이 잦은 부모 : 부모가 서로 심하게 싸울 때, 자녀는 상당한 공포를 느끼고, 특
히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데서 오는 두려움이 심하게 된다. .
③ 불안정한 가정환경 : 가정이 여러 가지 이유로 안정감이 없을 때(아빠의 장기간 출장과
이로 인한 별거, 잦은 이사로 인한 전학, 부모의 사망이나 이혼 등에 의한 격심한 가정환경
의 변화 등은 두려움을 갖게 하는 원인이다.
④ 왜곡된 사랑에 근거한 자녀 교육 : 왜곡된 부모의 사랑은 자녀 교육에서 두 가지로 드러
난다. 하나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체벌이 심한 경우이다. 또 하나는 너무 과잉보호하는 경우
이다. 이 두 가지 경우 다 두려운 마음의 상처를 갖게 만드는데, 특히 전자의 경우는 더 그
렇다.


3) 주변 사람들
성격적으로 강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심하게 책임 추궁을 당한 경우 이것이 상처가
되어 두려운 마음의 상처를 계속 갖게 된다. 갑자기 책임 추궁을 당할 것 같은 두려움에 시
달리게 된다.


 

 

3. 두려워하는 마음의 증상들


1) 내면의 상태
- 무엇인가 정리되지 않은 내면적인 불안함에 시달린다.
- 갑자기 두려워지면서 불안해진다.
- 어떤 일이 이어나면 필요이상으로 놀래고 두려워한다.
-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2) 관계의 장애
- 강한 사람이나 심한 이야기를 들은 경우 그 사람이나 그곳에 가기를 꺼려한다.
- 문제가 생기면 책임 추궁을 두려워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 전가를 하려고 한다.
- 모든 종류의 훈련(Discipline)을 힘들어하고 어려워한다.
- 새로운 일에 대하여 부정적이거나 추진력이 없이 중도에 그만두고 싶어 한다.


3) 영적인 장애
- 하나님을 향한 지속적인 신뢰가 늘 흔들린다.
- 신앙생활이 기쁨이라기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 영적인 진보가 일어나지 못하고 계속적인 Up & Down을 경험한다.
-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두렵고 멀기만 하다.


4) 포로 된 상태
- 심한 불안감을 이기기 위해 약물에 집착하거나 물질에 매어 달린다.
- 피해 망상적인 감정에 시달린다(건강 염려증).
- 안전하게 자기를 표출할 수 있는 술 중독, TV 등에 빠진다(두려워하는 마음 때문).


 

 

4. 성경에 나오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1) 여호수아
- 모세의 사망 이후 그가 느낀 것은 심한 두려움이었다.
모세라는 존재가 없다는 사실 자체에서 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모세 없이 하나님과 직접 만난다는 것에 대하여 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모세 없이 인도해야하는 백성에 대하여 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 아이 성의 가벼운 패배 이후에 그가 느낀 두려움은 정도를 넘어선 것이었다(수 7:5-9).


* 하나님의 전폭적인 돌보심과 함께 하심은 이런 두려움의 사람을 용사로 만드셨다. 하나
님 안에서 두려움이 치유된 모델이 바로 여호수아이다. 그가 마지막에 백성 앞에서 신앙의
선언을 담대하게 하는 순간 그는 두려움에서 완전히 치유된 사람이었다(수 24:15).


 

* 세 가지 중요한 사실
-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새로운 상황에 대하여 특히 못 견뎌 한다.
-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사람이나 물건, 제도 등을 심하게 의지하려고 한다.
-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작은 실패도 너무나 크게 받아들인다.


<열등의식>


1. 열등감이란 무엇인가 ?
1) 모든 종류의 상한 감정은 공통적으로 열등감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원죄를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은 다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2) 열등감은 자기 자신에 대해 평가 절하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마음이다.
실제 능력이 있고 없고 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자
신 없어하는 것이 열등감이다.


 

2. 열등감을 갖게 되는 원인들

1) 원죄
죄의 결과로 눈이 밝아져 벌거벗은 부끄러움을 본 것은 바로 인간 스스로가 자기 열등감속
에 빠지기 시작했음을 말한다.
- 인간은 원래 조물주 하나님에 비해서 열등하게 지어졌다. 그러나 그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에는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을 가지고 하나님
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죄에 빠졌고 그것이 열등감을 갖게 만든 것이다.
- 죄 때문에 자기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더 깊이 열등감을 갖게 된다.
2) 가정환경
① 결손 가정(고아, 편부모, Broken Family, 떨어져 사는 가정) : 결손 가정은 자녀에게 깊
은 열등감을 준다. 왜냐하면 그것이 상한 감정을 주기 때문이다.
② 문제가 있는 부모(사회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모, 인격적 장애가 있는 부모, 부부
싸움, 바람 피는 아버지) : 부모는 자녀에게 모델이다. 그런데 부모가 문제가 있을 경우 자
녀는 심각한 자기 비하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③ 편애와 비교가 심한 가정 : 편애와 비교는 결국 모든 자녀를 열등감속에 몰아넣는다.
3) 자기의 내적인 상태
모든 종류의 상처는 열등감을 일으킨다.
① 버림받은 마음(거절감) : 거절 받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편 거절당한 자기에 대해
스스로 비하하고 열등감을 갖는다(나는 버림받아 마땅한 존재이다).
② 굶주린 마음 :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경우 스스로가 비참해지고 열등감을 갖게
된다.
③ 분노하는 마음 : 분노를 억압하는 것은 내적으로 분노하는 것이고 이것은 심한 열등감을
갖게 한다.
④ 두려워하는 마음 : 두려워하는 마음은 벌에 대한 두려움,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 소외
당함에 대한 두려움 등인데 결국 이런 두려움에 떠는 자신에 대하여 열등감을 갖게 된다.
4) 자기의 외적 조건
심각한 이유는 아니지만 자신의 외모적인 특성이나 이름, 학력 등이 열등감을 갖게 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비교에서 나온 상처이다.


 

3. 열등감의 증상들
1) 내면적인 문제 - 두려움, 불안, 자기 학대
- 작은 실수나 문제에도 심하게 불안해하고 자기 비하와 자책을 한다.
- 열등감이 많은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 포기한 것 같으나 굶주림에 의해서 오히려 내
적으로는 ‘욕심’을 많이 갖고, ‘자존심’을 세우려고 한다.
- 열등한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데서 오는 완벽주의적 증상이 있다.
2) 관계의 장애
- 지나치게 겸손하고 희생을 자처하여 겉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는 좋아 보이지만, 내적으로
는 감사가 없고 불만이 언제나 상존한다.
- 이유 없는 분노를 느끼며,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 같은 피해의식이 늘 있다.
3) 영적인 장애
-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받지 못하고 ‘나 같은 것이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
가운데 있게 된다.
-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오히려 큰 부담으로 가지거나 뒤로 후
퇴한다. 그러므로 영적 성장이 매우 늦다.
4) 포로 된 상태
- 의존적 자아를 갖게 되어 사람에게 종속된다.
- 부담을 주는 일은 다 포기하게 되어 결국 무능력하고 소용없는 자로 전락한다.
- 모든 정상적인 관계가 불가능해지고 대인 기피증을 갖게 된다.


 

4. 성경에 나오는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
1) 사울
- 처음에 나타난 사울은 겸손한 사람이었다(삼상 10:22) - 열등감에서 나온 겸손
그는 출신도 훌륭하고 인물도 좋았으나 자신은 열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삼상 9:1-2, 21).
-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를 드린 것은 열등감에서 나온 두려움 때문이었다(백성이
자기를 버리고 다 떠날 것 같은 생각,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 자신이 없다).
- 다윗을 향해 갖게 된 열등감은 그를 파멸로 이끌었다(삼상 18:7-9).
스스로 자신감을 잃고 평강을 잃었다.
모든 결정이 열등감을 감추려는 부적절한 것이었다(딸의 혼사).
주변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점점 어려워졌다(아들, 딸, 사위, 제사장, 백성).
다윗을 쫓는 데 온 정력을 낭비하고 결국 불레셋에게 전사당했다.
* 두 가지 중요한 사실
- 열등감은 때로 겸손으로 나타날 수 있다(드러내어 인정하고 적절히 처리되면).
- 열등감을 감추려는 모든 행위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한다.
2) 베드로
- 베드로는 깊은 열등감의 소유자이다.
그가 계속 장담하고 큰소리친 것은 열등감을 감추려는 행위였다.
물 위를 걷다가 파도를 보고 빠진 것은 그의 내면의 열등감 때문이었다.
- 계집종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고, 결국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고기나 잡으러 가련다”(요 21:3)라고 말한 것은 이 실패의 기억으로 더욱 강화된
그의 열등감 때문이었다.
- 주님 앞에 솔직히 자기의 사랑이 한계가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한 후, 성령을 받고
나서야 그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두 가지 중요한 사실
- 열등감의 소유자들 중 외향적인 사람들은 그것을 감추려고 큰소리를 잘 친다.
- 성령께서 역사 하시면 열등감이 강한 사람도 담대해지고 능력을 갖게 된다.


 

 

<죄의식>


1. 죄책감이란 무엇인가 ?
1) 모든 종류의 상한 감정은 공통적으로 열등감과 함께 죄책감을 일으킨다. 이 가운데 열등
감은 막연히 자기를 비하하는 것이고, 죄책감은 어떤 기준을 제시하고 그것에 미달된 부분
을 놓고 자기를 정죄하는 감정이다.
2) 죄책감은 부적절하게 자기 스스로에 대하여 죄의식에 시달리는 상한 감정이다.
- 실제 상황으로는 넘어갈 수 있는 것을 혼자 Guilty Feeling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것이 죄
책감이라는 상한 마음이다.
3) 죄책감은 자기 자신 및 남에 대해서도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 죄책감은 자기 뿐 아니라 남에 대해서도 심한 정죄 속에 고통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므
로 용서를 통한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정죄를 통한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내면을 갖게 된다.


 

2. 죄책감을 갖게 되는 원인들
1) 원죄
타락의 결과로 죄인 되어 낙원에서 추방당한 후 모든 인간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
었다.
- 원죄가 꽉 찬 세상은 자기중심이 되어 자기를 지키는 방법으로 남에게 죄책감을 강요하
는 세상이 되었고,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계속되어 결국 사람들이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게
만들었다.
2) 가정환경
① Broken Family : 가정의 결손은 부모의 마음 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깊은 죄책감을 넣어
준다. 특히 부모가 결손의 책임이나 문제를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전가한다면 상태는 더욱
심해진다(너 때문에…)
② 상처가 있는 부모 : 상처가 있는 사람은 모든 문제를 본인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남
에게 전가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 대상으로 자녀가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자녀는 죄
책감을 갖게 된다.
③ 율법주의적인 가정 : 스스로 높은 기준과 신앙적 열심을 갖는 부모(두려움과 굶주린 마
음, 버림받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의 도덕적 신앙적 기준 제시는 자녀에게 죄책감을 심하
게 넣을 수 있다.
3) 삶에 있어서의 실패의 경험
삶 가운데 심한 실패의 경험은 인간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데, 특
히 이 실패가 배신에 의한 것이어서 용서의 문제가 걸려 있을 때에는 더욱 심하다.
→ 죄책감의 문제는 용서의 문제와 밀접하다.


 

3. 죄책감의 증상들
1) 내면적인 문제
- 언젠가 나쁜 일이 닥칠 것 같은 불안감 속에 산다.
- 심각한 죄책감이 작은 실수에도 찾아와 내면을 뒤흔들어 놓는다.
- 은혜를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 좋으면서도 그것을 잃을까하는 두려움에서 자기를 계속 정
죄 한다(더 기도하고 더 잘해야 돼!).
- 정죄 받지 않기 위하여 자기를 계속 자아 비판하면서 학대해 나간다.
- 감추기 : 자기를 감추려고 노력하지만 잘 감추어지지 않을 때마다 심한 고통을 느낀다.
2) 관계의 장애
- 지나친 희생과 봉사 : 남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자기 희생
을 하려고 함(일에 열심)
- 죄에 대하여 민감 : 죄나 Scandal에 대하여 아주 민감하고 심하게 정죄함.
- 정당한 비판도 받지 못하고 심하게 반발함. 그리고 본인은 그것 때문에 혼자 괴로워 함.
3) 영적인 장애
-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함.
- 습관적인 회개로 신앙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함.
- 마귀에게 공격을 받아 자주 넘어짐.


 

4. 성경에 나오는 죄책감을 가진 사람들
1) 사도 바울
- 사도 바울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특히 죄책감의 문제는 그에게 심각했다. 그러나 그리
스도의 용서의 사랑으로 이 죄책감을 극복한 사람이다.
로마서 8:31-39을 보면 그의 죄책감과 이것을 극복하는 치유의 장면이 다 나온다.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공개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용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딤전 1:15-16).
* 바울이 이런 죄책감을 갖게 된 것은 엄격한 부모, 율법주의적 환경에서의 성장 때문이었
다.
2) 다윗
- 시편 51편에 나타난 다윗은 심한 죄책감과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극복한 사람이다.
3절: 심각한 죄의식
4절 : 사람들의 정죄에 시달리기를 거부하는 모습.
5절 : 자기가 근원적으로 죄인임을 인정
7-12절 : 죄로 인한 버림받음의 두려움
16-19절 : 죄 용서의 체험
제5강 상처와 영적 전쟁


 

1. 상처는 거짓 선지자들로부터 온 것이고 그 거짓 선지자는 사단의 영향과 조종을 받고 있
는 상태에서 우리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2. 우리 안에 있는 상처를 이용해서 우리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고 우리의 삶
을 파괴하려는 마귀의 공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것이 영적 전쟁이다.
* 영적 전쟁에서 중요한 세 가지는
- 원수의 전략을 간파하는 것(Recognizing)
- 그들의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를 거부하는 것(Refusing)
- 그것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것(Resisting)


 

<Recognizing>


1. 마귀가 하는 일의 세 가지 속성(요10:10)
- 도적질하고(steal)
- 죽이고(kill)
- 멸망시키는 것(destroy)
→ 이것이 상처가 인간 속에서 역사하는 경우의 삶의 모습이다.
*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속성(요 10:10)
- 생명을 얻게 하고,
- 이것이 가득 차게 하는 것이다.


2. 마귀가 우리에게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 권위(Authority)
* 이 권위란 원래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일부를 위임해
주신 것이다(사랑하시므로). 이것을 자유 의지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사탄 마귀는 이
권위를 갖기 위하여 인간을 유혹했고, 인간의 동의 하에 이 권위를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
다. 이것이 타락이다.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바로 이 인간이 빼앗긴 권위를 되찾아 주시는 일이
었다(골 2:14-15).

3.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도 마귀의 공격을 받는가?
→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잃었던 권위를 되찾았지만, 우리의 권위를 다시 빼앗으려는 마귀
의 공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면에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기에 더 심하게 공격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4.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때 주로 공격하는 네 부분은 어디인가?
1) 생각 (Mind)
2) 마음 (Heart) / 태도(마음가짐), 감정
3) 입(Mouth) / 언어
4) 관계 (Relationship) / 일치됨을 파괴하고 갈등을 유발하려 함.


 

 

<Refusing>


1. 모든 사람에게 있는 두 개의 문이 무엇입니까?
- ‘음부의 문’(The Gate of Hades/ 마 16:18)
- ‘천국의 문’(The Gates of Heavenly Kingdom/ 마 16:19)


2.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한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주님의 사람이 된 자들에게 주님께서 주
신 것은 무엇입니까?
→ 천국의 열쇠(마 16:19)


 

3. 천국의 열쇠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 매는 것(Binding)
- 푸는 것(Loosing)
* 이 매는 것과 푸는 것은 수동적으로 할 수도 있고 공격적으로 할 수도 있다. 이 중에서
수동적으로 하는 것을 ‘거부’(Refusing)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거부입니까?
- 생각 속에서 마귀가 주는 생각은 잘라내고(Binding), 하나님이 주신 생각은 받아드린다
(Loosing).
- 마음속에서 마귀가 주는 감정과 태도는 거부하고(Binding), 하나님이 주신 느낌과 마음가
짐을 붙잡는다(Loosing).
- 말을 할 때 마귀가 주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고(Binding), 하나님이 주신 언어를
사용한다(Loosing).
- 관계를 깨고 단절시키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Binding), 일치를 이루기 위한 부분을 노력
한다(Loosing).


 

 

 

<Resisting>


1. 영적 전쟁에서 우리는 무엇을 통해 음부의 문을 닫고 하늘의 문을 열 수 있습니까?
- 기도 (Praying)
- 언어 (Speaking)
- 삶 (Living)


2.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영적 전쟁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 우리에게 있는 모든 영적 장애들을 제거할 수 있다. 두려움, 의심, 불순종하는 마음들..
- 우리 자신의 의지를 주님께 내어 드릴 수 있다. 주님께 마음을 여는 것
- 성령님에 의해 인도 받을 수 있다. 영적 깨달음, 영적 감동, 영적 계시
- 성령님에 의해 힘을 공급받을 수 있다. 영적 영향력, 성령님이 흘러넘치는 것.


 

3. 말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영적 전쟁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 마귀의 세력을 향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므로
- 마귀의 세력을 향해 십자가의 공로를 선포함으로
- 마귀의 세력을 향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선포함으로


4. 삶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영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 경건 생활


 

 

 

<상처를 Blocking하면서 우리가 쓸 수 있는 도구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Blocking의 무기이다. 예수 그
리스도의 이름 속에는 다음 두 가지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예수 이름은 그의 능력을 의미한다. 모든 악한 것들을 내어쫓고 병든 것들을 치유하는 능력
이다. 모든 염려와 불안, 근심, 두려움 등이 계속 엄습할 때, 이 이름을 사용하여 이 능력으
로 내어 쫓을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 갈 수 있는 공로이다. 우리를 향
해 끝없이 정죄해 오는 영적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의의 흉배이다. 죄책감이 들고 열등감에
시달릴 때 이 이름의 공로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통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 분이 우리의 주되심의 선포이다.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은 예수
님이심을 선포하고 우리는 그의 사람임을 선포함으로 우리의 내면을 자기의 영역으로 삼으
려는 모든 공격을 막는 것이다. 조상의 모든 잘못된 상처의 유전을 이 이름의 다스림으로
막을 수 있다.


 

2.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이 죄 문제
에는 상처의 문제도 들어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 (공로)는 치유를 위한 강력한 도구이다. 특
히 상처가 우리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을 때, 그것을 blocking해 주는 능력이 있다.


 

- 감추임에서의 해방(드러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감추임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계속 감추려고 하고 숨기려
고 할수록 더욱 더 그 상처에 잡히게 되는 데 본인이 그것을 알면서도 그 감춤에서 벗어날
수 가 없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벌거벗은 채 그대로 다 드러나신 분이다. 그 십자가의 능력
이 감추어야 한다는 공격을 막아 준다.


- 권리 포기
십자가에서 주님은 완전한 버림받음을 경험하셨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능력이다. 우리의 상처가 계속 우리를 붙들고 있는 것은 우리가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잡혀
서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랑과 관심, 물질, 명예 등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에 상처에
지속적으로 잡혀있게 된다. 십자가는 다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을 줌으로 이 지속적인 상처의
공격을 막아 준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치유하는 능력의 도구이다. 주님은 단순히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
아니라 보혈을 흘려주심으로 우리 가운데 온전한 치유를 선포하셨다.


- 모든 허물(부끄러움)을 가리는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는 허물을 가리는 능력이 있다.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가죽옷이 지어졌을 때 흘린 피가 보혈을 의미한다. 레위기에 속건제를 드릴 때 흘린
제물의 피가 보혈을 의미한다. 자기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아프고 추한 기억들이 자기를
계속 힘들게 할 때 우리는 이 보혈을 사용하여 덮을 수 있다.


 

- 깨끗하게 하는 능력
예수님의 보혈은 죄를 씻는 능력이 있다. 더러운 죄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을 때 예수 그리
스도의 보혈이 그 죄를 씻어 준다. 온갖 유혹과 욕심, 음란, 도박, 교만 등 굶주림에서 오는
상처를 통하여 공격해 들어오는 것들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를 깨끗이 씻어 새롭게
함으로 이런 생각들에서 우리를 지키신다.


- 의심을 사라지게 하는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언약의 피이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지 아니하신
다는 사랑의 언약을 의미한다. 마음에 의심이 들고 두려움이 있을 때 이 보혈의 공로를 의
지하여 그 지속적인 불신을 막을 수 있다.


 

→ 어떻게 사용하여 Blocking하는가?


 

1. 열린 문을 통하여 상처의 세력들이 밀려 들어와 우리를 공격할 때 직접 사용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나를 지켜 주옵소서


 

 

2. 기도할 때마다 근원적으로 Blocking할 수 있다.


 

3. 상처가 많은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할 때 사용할 수 있다.
- 개인을 위하여
- 가정을 위하여
- 공동체를 위하여
- 사회를 위하여


4. 찬양을 하면서 사용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 보혈 찬양,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는 찬양


성경이 말하는 치유

 

성경은 치유(healing)란 말을 다양한 단어로 사용한다.

 

1. 치유와 관련된 단어들

 

세라퓨오

  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육체적인 병을 치유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마 4:23; 8:7, 16 등).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이아오마이

  육신적인 병은 물론(마 15:28), 마음이나 영적인 병은 물론 축사로 치유하는 것을 말한다(마 13:15; 눅 4:18; 요 12:40; 행 10:38; 히 12:3; 벧전 2:24; 약 5:16 등).

  “(수르보니게 여인의 딸)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28).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 13;15).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소조

  구원하다(마 1:21; 18:11), 위험에서 건져내다(마 8:25; 14:30), 치유하다 또는 온전하게 하다(막 5:23; 6:56), 귀신 들린 자가 깨끗함을 받다(눅 8:36).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하니라”(마 1:21).

  “(회당장 야리로의 딸)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막 5:23).

  

구약의 라파

  원 상태로 회복하다(창 20:17; 시 6:2; 렘 17:14). 사람의 병(출 15:26; 왕하 2:22), 나라의 죄악이 치유 받다(대하 7:14; 호 6:1; 렘 3:17).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

 

2. 성경이 말하는 치유

 

이상 단어 연구에서 본 바와 같이 성경은 치유라는 말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치유는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영적 치유(spiritual healing)

  죄인이 구원 받아 영혼이 치유받는 것을 말한다(마 1:21; 13:15;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 9:12).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서 하였나이다”(시 41:4).

 

육신 치유(physical healing)

  육신의 질병이 치유받는 것을 말한다(마 4:23; 고전 12:9; 약 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심령 치유 또는 내적 치유(emotional healing, inner healing)

  사람의 마음이 치유 받는 것(사 61:1-3; 눅 4:18-19; 마 12:20).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사 61:1-3),  

  육체의 질병의 70%가 마음의 질병에서 기인하는 심인성 질병임을 감안할 때 내적 치유는 육체의 치유 못지 않게 중요하다. 내적 치유는 제6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축사 또는 축귀(deliverance)

  귀신을 쫓는 것(막 16:17; 눅 10:19; 행 10:38)도 치유 사역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막 16:17).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시로부터 그의 (귀신 들린) 딸이 나으니라”(마 15:28).

 

죽은 자를 살림

  성경에는 죽은 자를 살린 기록이 가끔 나온다.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린 엘리야(왕상 17:22), 직원의 죽은 딸을 살리시고(마 9:18-24),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요 11:43-44), 죽은 도르가를 살린 베드로(행 9:36-40), 졸다가 떨어져 죽은 유두게를 살린 바울의 경우(행 20:9-10)를 들 수 있다.

  오늘날의 경우, 영국 출신의 능력 사역자인 스미스 위글워쓰는 그의 집회에 오랫 동안 참석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할 때 죽은 자를 최소 10명이상은 살렸다고 하며, 인도네시아에 임한 부흥기간 중, 죽은 사람의 시신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찬양을 드렸을 때 그 사람이 살아났다고 증언한다.

 

 

질병의 원인들

 

사람들이 병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질병의 원인들

  

원죄로 인한 연약함

  죄를 지은 인간은 영, 혼, 육이 타락하여 기능이 약화되고 부실해졌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질병이나 연약함에 걸리지 않는 사람을 드물다.

 

본인의 죄

  본인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심판, 징계를 받을 경우이다. 이런 경우 불임(창 2);1-18), 심한 악질(출 4:11) 등의 질병을 앓는다. 구스 여인과 결혼한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은 7일 동안 문둥병에 걸렸다(민 12:1-16).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를 하여 자신의 위세를 뽐낸 다윗으로 인해 이스라엘 전역에 온역이 내려 7만 명이나 죽었다(삼상 24:13).

  세상의 온갖 죄악 가운데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무엇보다 먼저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면 자신도 모르게 질병이 낫는 경우가 있다.

  또한 예수를 믿더라도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으면 질병이 따르는 경우도 있으므로 그 죄를 회개할 때 병이 낫기도 한다(약 5:15).

 

마귀의 장난

  마귀가 모든 질병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마귀가 질병을 주는 경우도 많다. 이스라엘의 어떤 여인은 사단에게 매여 18년 동안이나 허리가 꼬부라져 있었는데 예수님의 안수로 치유 받았다(눅 11:13).

 

마음의 상처

  오늘날 질병의 70%가 마음의 상처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그러므로 치유 사역자는 육체적인 치유는 물론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내적 치유에도 통달해 있어야 한다. 허리병, 관절염 등은 스트레스와 관계 있고, 마음속에 증오심을 회개한 사람의 관절염이 나은 사례는 드문 일이 아니다.

  

자신의 부주의

  생활 습관이 체계적이고 규칙적이지 못한 경우, 운동을 게을리 하는 경우, 음식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 질병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자신의 식생활, 일정 및 운동량을 조절하여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조상의 죄

  조상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죄악을 저질렀을 때 그 자손은 그 죄악의 열매를 먹어 질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5). “이 모든 저주가(각종 질병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재앙들)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적과 감계가 되리라”(신 28:46).

  유전병도 이런 원인 때문에 생기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가계 치유를 통해 그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

  때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날 때부터 병약자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1-3).

    

2. 어떤 경우에 치유되는가?

 

  성경은 병 낫는 경우를 여러 가지로 기록한다.

  

병 낫고자 하는 사람의 믿음과 치유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수님은 여러 차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소조),”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마 9:2, 22, 29; 15:28)라고 말씀하셨다. 사도들도 믿음이 있는 자를 치유했다(행 14:8-10).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담대하게 사용해야 한다

  베드로는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 이름으로 치유했다(행 3:1-8). 이때는 치유 받는 자의 믿음과는 상관이 없이 예수 이름의 권세 또는 성령의 은사가 역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병든 자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으로 치유해야 한다

  예수님은 주로 병든 자들이 불쌍하여 치유하신 경우가 많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마 14:14).

  긍휼한 마음이란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이 당하는 고통을 느끼고 동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특히 신유의 은사를 가진 자들은 긍휼의 은사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치유의 동인은 은사 자랑이나 사람 영광이 아니라 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신음하는 자들을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는 자야 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치유하는가?

 

1. 치유의 방법

 

영적 치유

  전도하여 회심하게 한다.

 

육신 치유

  같은 과, 2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심령 치유 또는 내적 치유

  제4과부터  자세히 다룬다.

 

축사 또는 축귀

  축사와 영적 청소를 참조하기 바란다.

 

죽은 자를 살림

  아주 희귀한 경우이다.

 

2. 육신 치유

  여기서는 주로 육신의 치유 방법을 성경을 통해서 살펴본다.

 

본문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5-16),

  신유의 은사를 인정하지 않는 전통적인 교회에서도 이 구절에 근거하여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한다.

  이 구절에 의하면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는 몇 가지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첫째 교회의 직분자가 기도한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의 장로는 목사를 말한다.

 

둘째 예수 이름으로 기도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권세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온다. 때로는 기도하고 때로는 예수 이름의 권세로 꾸짖기도 한다.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눅 4:39).

 

믿음으로 기도한다

  여기서는 누구의 믿음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기도하는 사람, 기도 받는 사람, 또는 기도 받는 사람의 보호자의 믿음을 통해서도 역사한다.

 

기름을 바르고 기도한다

  기름 자체가 신령한 것은 아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성경대로 기름을 바르고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난다.

 

기도 받는 자가 죄를 지었을 때는 고백하게 하라

  고백 되지 않은 죄로 인해 병이 낫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시 32:3-5),

 

  신뢰할 만한 사람들에게 내 죄를 자백하면 그로 인해 치유되기도 한다.

 

안수 기도

  병자를 위한 직접적인 기도는 주로 안수 기도로 이루어진다.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막 8:25).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행 28: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8).

 

  일반 신자들도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 안수 기도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기도해서 혹시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라고 염려하는데 이것은 인간적인 생각이다. 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순종하여 병자를 위해 성경의 방법대로 기도하면 된다.

  또한 병자가 낫지 않더라도 기도를 통해 형제, 자매의 사랑과 관심을 느끼므로 영적 건강에도 유익하다.

 

병 고치는 은사

  특별히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있다.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고전 12:9). 이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보다 자주 치유의 효력이 나타난다.

  헬라어 원어는 “병들 고치는 은사들”이다. 어떤 은사자자는 암을, 어떤 은사자는 허리병을, 어떤 은사자는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은사가 있다.

  그러므로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 각자가 전공분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신유의 은사가 있다고 해서 모든 병을 다 낫게 할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지 않다. 신유의 여종인 캐서린 쿨만은 신유 집회를 끝낼 때마다 하나님께 “왜?, 왜?”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전혀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이 단 한번 집회에 참석하여 불치의 병이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년동안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병은 치유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라고 해서 모든 병을 다 치유하신 것은 아니다. 왜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에 모여 있는 수많은 병자들 중에서 단 한 명만 치유하셨을까?(요 5:1-9 ). 이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 가르침을 준다.

  첫째 아무리 은사가 있고 환자가 믿음이 있더라도 모든 병이 다 낫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일부에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리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확대해석하여 믿음만 있으면 모든 병이 치유 받으므로 그렇지 못한 경우는 믿음의 부족 때문이라고 책망한다. 이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둘째 예수님도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많은 치유를 행하지 못하셨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마 13:58).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막 6:5-6).

  예수님은 불신앙의 사람들에게는 기적을 잘 행하지 않으신다. 기적은 어느 정도 행하는 자와 받아들이는 자의 상호 교감에 의해 일어난다. 기적행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불신앙의 사람들이 마음 문을 닫고 “잘 해봐라. 나는 그런 것 믿지 않는다”는 자세로 버티고 있으면 기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많은 경우 기적에 대한 불신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아이처럼 순진하게 말씀대로 구하고 믿으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 4:2).

  그 외에 하나님이 치유를 행하시지 않는 이유로는, 고난의 구속사적 가치를 위해서이다(고후 12:8-10; 벧후 1:6-7). 바울이 말하는 육신의 가시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육신의 질병일 가능성도 있다. 다른 사람의 질병을 치유한 바울이지만 정작 자신의 질병은 치유받지 못했다.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했지만 아직 완전히 임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셔서 당장의 문제나 고통을 해결해주시는 것보다 자녀들이 고난과 고통을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을 더 원하시기 때문에 기적을 지연시키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은사 사용에 겸손해야 한다. 치유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3. 치유의 은사와 의학

  오늘날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지만 아직도 신유만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일반적인 은혜의 산물인 의학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필자는 병자를 위해 기도하지만 본인이 두통이나 소화불량이 생기면 즉시 약을 먹는다. 이런 경우는 기도보다는 약이 직접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느 병원의 실험에 의하면, 한쪽 병자들은 약만 투입하고 다른 쪽 병자들은 약과 기도를 병행한 결과,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한 쪽의 병자들이 통증도 훨씬 적고 훨씬 빨리 회복되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 기도와 의학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의사가 고치지 못하는 병을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고치는 경우도 있지만, 은사만 믿고 의사에게 확인을 하지 않았을 때,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으므로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는 극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적 치유와 용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해꼬지 한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내 힘으로 보복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고 증오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원수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이 실제로는 나를 고문하고 학대하는 것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어떤 의사는,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 중 용서만 제대로 한다면 약 50%정도는 금방이라도 퇴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 해코지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보다 실제로는 나를 죽이는 것이다. 용서의 최대의 수혜자는 용서하는 사람 자신이다. 남을 용서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 가슴에 대못을 박는 사람이다.

 

1. 용서와 회개가 내적 치유의 양대 축이다

  용서는 회개와 함께 내적 치유의 양대 축이다. 용서 없이는 회개가 있을 수 없고 용서와 회개가 없는 내적 치유는 불가능하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막 11:25).

  비록 신자이지만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죄를 지었으면 회개를 해야 한다. 회개란 쉽게 말하면, 내가 지은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지은 죄는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나에게 죄 지은 형제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은 내가 회개할 때 그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우리가 죄 지은 형제를 용서해 주는 조건으로 용서해 주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옥가야 마땅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우리는 당연히 우리에게 죄 지은 형제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2. 무자비한 종의 비유.

  우리의 죄 용서에 관한 하나님의 은혜와 그런 큰 은혜를 입고도 자기에게 죄 지은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이 처분하시는가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18장의 무자비한 종의 비유(마 18:21-35)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죄사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죄지은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옥졸들에게 붙여져서 고통을 받는다(마 18:34-35).

  ‘옥졸들에게 붙이셨다’는 말은 옥졸들의 처분에 맡겼다는 말이다. 인권이 최고로 발달한 미국이나 한국의 교도소에서도 때로 간수들은 죄수를 무자비하게 다룬다. 하물며 인권 사상이 거의 전무한 당시의 옥졸들이 무자비한 종을 어떻게 가혹하게 다루었는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핵심적인 의미는 무엇이냐? 그렇게 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도 자기에게 죄 지은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크나 큰 고통을 당한다는 말이다.

  일만 달란트, 6,000만 데나리온(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나 되는 엄청난 빚을 공짜로 탕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00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윽박지르며 용서하지 않는 이 종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고슴도치같이 서로가 서로를 찌르는 죄인이다. 알게 찌르고 모르게 찌른다. 문제는 내가 남을 찌른 것은 금방 잊어버리지만 남이 나를 찌른 것은 쉽게 잊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앙심을 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복한다.

많은 사람들은 누가 나를 괴롭히고 해코지를 하면 그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대방을 미워하면 할수록 내 자신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증오심이 지나치면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뛴다. 오래 되면 화병이 나서 몸져눕는다. 신체적인 병의 70%는 마음에서 오는 병이며 분노에서 오는 병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사람은 ‘세월이 약이다. 잊어 버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간단한 것은 쉽게 잊어버릴 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심령 깊숙이 박혀 있는 증오심은 세월이 간다고 잊혀지지 않는다.

잊혀진 것 같지만 깊숙이 박혀 있다가 짜증나는 일이나 언짢은 일이 생기면 온갖 형태의 추한 몰골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상대방의 사소한 잘못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극도의 자기보호 본능 때문에 정상적인 부부 관계나 인간 관계를 가지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이것들이 바로 형제를 용서하지 못한 무자비한 종이 옥졸들에게 붙여져서 당하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힘입은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나를 해코지한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지은 죗값은 아무리 크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100 데나리온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수님을 대신 희생시키신 값은 6,000만 데나리온이다.

여러분은 어떤 죄값을 갚겠는가? 100데나리온인가, 6,000만 데나리온인가? 성경은 원수를 용서하고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축복까지 해 주라고 말한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8).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병은 이 세상의 어떤 약(藥)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 미워할수록 내 가슴에 굵은 대 못을 망치로 쾅, 쾅 박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것을 치료하는 약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다. 그것은 원수를 용서하고 축복하는 일이다.

  나를 저주하고 나의 신세를 망친 사람을 축복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내 심령 깊숙이 박혀 있는 증오의 가시를 뽑아내는 유일한 약다. 나의 원수를 축복할 때 나를 괴롭히던 증오의 가시가 뽑히고 내 심령에 평강과 안식이 임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3. 용서하지 않았을 때 받는 불이익들

  형제를 제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불이익이 있을까? 그 반대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마 6:14-15; 막 11:25; 롬 12:19-21; 요 20:23).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막 11:25).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내 마음속에 앙심을 품고 있으면 그 화살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날아간다.

 

영, 혼, 육의 고통을 당한다(롬 2:9-10; 8:6; 사 48:22; 57:21).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롬 2:9-1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 48:22).

 

하나님이 예물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마 5:23-25; 호 6:6; 암 5:21; 사1:11-18).

  예수님은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고 말씀하신다(마 5:23-25).

 

마귀에 궤계에 놀아난다.

  용서 않고 금방 분을 삭이지 않으면 마귀의 궤계에 놀아난다(고후 2:10-11; 엡 4:26-27).

  죄 지은 형제를 제 때―해가 지도록 즉 하루가 지나기 전―에 용서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공격할 팔 발판(foothold)을 주어,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통해, 분노. 증오, 배신감, 죽음과 자살의 영이 역사 하여 이후에 용서하는 것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4. 남을 잘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이런 불이익들의 많음에도 불구하고 남을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용서하지 못하는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나는 잘 했고 남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 폭행이나 어른의 폭행 등과 같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받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사적인 보복은 절대 금물이다. 예수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이 고난을 당하셨지만 스스로 원수를 갚지 않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셨다(벧전 2:22-23).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당했다기 보다는, 상대방의 허물은 보지만 자신의 허물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기 전에 나의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만한 마음 때문에 용서하지 못한다.

  ‘감히 내가 누구라고 나를 이렇게 대해’라면서 복수의 칼을 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죄 지은 형제를 불쌍히 여겨서 용서해야 한다(엡 4:32).

 

용서해준 것 같은데 기도 중 용서해 주지 않은 것같이 생각된다.

  사역을 할 때 이런 간증을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표면적으로는 용서한 것 같지만 중심으로 용서하지 않았을 경우에 성령이 다시 중심으로 용서하게 하시는 경우이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마 18:35).

  내가 죄 지은 형제를 중심으로 용서했나를 알려면, 그 사람이 잘되었거나 잘못되었다는 소문이 들릴 때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잘 되었을 때 배가 아프고 잘못 되었을 때 고소한 마음이 생기면 중심으로 용서했다고 할 수 없다.

 

보상 심리 때문에 용서하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보상 심리가 있다. ‘내 원수의 빚은 공짜로 탕감해 주면 내가 받을 빚은 누가 갚아주는가? 내 원수를 누가 갚아 줄 것인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이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신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 19:17).

 

가해자가 먼저 사죄하지 않기 때문에 용서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먼저 용서하셨고(롬 5:8), 간음한 여인이 회개하기 전에 먼저 용서하셨다(요 8장). 특히 고의적으로 위해를 가한 가해자일 경우 가해자 먼저 용서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때 주님의 사랑으로 먼저 용서하는 자가 승리하는 사람이며 가해자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다.

 

5. 누구를 용서할 것인가?  

  우리는 용서라고 하면 얼른 나에게 죄 지은 사람만을 용서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용서의 대상은 하나님, 나에게 죄 지은 형제 및 본인 자신이다.  

 

하나님  

  충격적인 사건이나 뜻밖의 재앙을 당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가?’(why me?)라면서 무엇보다 먼저 이런 재앙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신 하나님을 원망한다. 욥이 재앙을 당했을 때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라’는 악담을 했다.

 

다른 사람들

  나에게 고통과 상처를 준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본인 자신

  자신이 죄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연민의 정과 함께 피해자가 된 그 사실을 증오하여 자신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완벽주의, 율법주의, 부당한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이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의지하여 자신마저 용서하고 축복할 필요가 있다.

 

6. 용서하는 방법.

  용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신자는 누구나 죄 지은 형제를 용서할 권세가 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23).

  그러므로 용서는 직설적이 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 아버지 저는_____죄를 지은 _____를 용서합니다”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_____를 용서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제가 ____를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가 이 땅에서 용서할 때 매인 것이 풀린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

가능하면 가해자 본인에게 직접 용서를 해주면 좋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가해자의 사망, 원거리에 거주, 행방불명 등―으로 가해자를 직접 용서하기 힘들거나 가해자가 아직 용서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그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유의할 사실은 마음으로 지은 죄는 하나님께만 용서를 구할 것이며, 성적인 죄를 배우자에게 미주알고주알 자세히 고백하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용서할 때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아 내적 치유가 주는 심령의 평강과 안식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전 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