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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THEOLOGY

The ministry of presence 있어주는 사역

"The ministry of presence"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미국에 와서 Chaplain School (육군 군목 학교) 에서 였다. 한국말로 의역을 하자면 "같이 있어주는 사역"쯤 될까?

꼭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영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한 그 곳에 있어주는 그 자체가 사역이고, 그런 사역을 통해서 사람들은 위로와 도움을 얻는다는 것이다. 

영어의 정의는 이런 것이다. The ministry of presence is a way of “being” rather than a way of “doing” or “telling.” As we prepare to be with those who suffer we should not think about what to say or what to do. We should not anticipate how to react if certain situations should develop. Instead, we should inwardly prepare ourselves to focus on the “now” with feeling and care. 

"있어주는 사역"은 무엇을 하거나, 이야기를 한다기 보다는 존재로하는 사역이라고 볼수 있다. 우리가 고통당하는 사람과 있을 때에 무엇을 말해야 할지 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고, 또한 어떠한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미리 예상해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것에 감정과 관심으로 촛점을 맞추어 주는 것이다. 

출처: http://www.unitedmethodistreporter.com/2012/12/commentary-ministry-of-presence-is-the-most-important-gift/    Bishop Joe Pennel

(같이 있었더니 좋아하는 이 사병을 보시라..ㅎㅎㅎ)

요사이에 들면서 자꾸 이 말이 생각이 난다.  사실 신학교 때 많이 들은 말 중의 하나는 "심방목회"에서 "교육 목회"로 바꾸라는 말이었다. 사람들이 바빠지고 심방을 받는 것도 별로이고 심방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찾아가기 보다는 교회로 와서 교육을 시키라는 것이다. 그리고 땀 흘릴 필요없이, 집을 찾는 노력 필요없이, 그저 사람을 교회로 오게 한다면 그것이 목회자 개인의 시간을 아끼는 것이나 교육의 질에서도 효과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심방을 안간다고 해서 노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서 교육을 더하고 책을 더보고, 보거나, 무엇보다 자신 없는 설교와 더 씨름할 시간을 가지게 되니 어찌보면 일거양득(?)이 아닌가?


 (대체 왼쪽의 목사님은 왜 나를 저런 눈으로 보시는 것일까?)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이런 생각들이 자꾸만 바뀌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첫째 이유는 교회들이 교육 목회를 시작하면서 성경공부나 교회의 기도회 모임들이 많아지지만, 교회는 교육 목회를 하기 이전보다 더욱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현실이다. 두번째 이유는 설교를 잘 준비해도 목사와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설교는 그다지 효력이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조금 설교가 후져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 두면, 오히려 설교가 잘 먹히는(?) 그런 일도 본다. 세번째 예수님의 사역은 그 자체가 사실 "있어주는 사역"이셨다는 것이다. 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하셨지만, 예수님은 있어야 할 곳에 꼭 가 계셨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 

오늘 심방을 다니면서 어느 가게에 들렸다. 가게의 주인 집사님은 한번도 성경공부를 빠지지 않았던 분이다. 그 분은 성경공부 안나와서 궁금해서 들렸다라고 말하니 기분이 좋았나보다..답하기를 "공부 가끔 빠져야 겠네요.." 웃으면서 이야기 한다.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이 많은 성경공부도 나쁘지는 않았겠지만, 가끔 개인적으로 가서 얼굴을 맞는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 목회 혹은 훈련 목회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절대로 간과할 수가 없다. 실제로 목회의 현장에서 많은 열매를 누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실제 영적으로 성숙해 졌으며 믿음도 자라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양이기에 목자가 필요한가 보다하는 생각을 한다. 하긴 나 역시 내 말을 잘 들어주고 격려해줄 이목사를 위한 목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교육 훈련 목회가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존재의 의미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는가? 정말 그랬는가? 하는 것에는 아직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적어도 현재의 한국 교회의 현주소를 보면 말이다. 그러면  심방목회나 있어주는 사역이 대안이냐? 물론 그렇다고 확실하게 말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교육 훈련 목회를 통해서는 삶으로 모범을 보여 주는 제자의 삶이 강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교육과 훈련 목회 속에서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교육과 훈련 목회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것은 있어주는 사역이다..그 사역을 통해서 양들은 만져지고, 이야기를 통해서 영적 힐링은 일어난다. 교육 훈련 목회가 채찍이라고 하면 있어주는 사역은 당근이라고나 할까? 


(이 녀석들은 나에게 너무나 많이 있어주는 사역을 원한다. 방학이라 지금 더한 것 같다)

어째튼 사역의 방향을 조금 수정해야 겠다. 지금까지 까다로운 조교로 양들을 대했다면 이제는 성도의 삶으로 조금 더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에나 있어주는 친한 친구로 또 필요한 것이 있을 때는 찾게 되는 목자로 말이다.. 다행이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나는 조그만 교회의 목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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