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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THEOLOGY

고후 12장 1-10절 단상



 

고린도 후서 12 1-10

l 어릴때에 친구랑 싸우던가 동생이라 싸우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지는게 이기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정말 지는게 이기는건가? 그러면 이기면 지는건가? 그럼 이길 것인가? 질것인가? 예를 들어서 부부 사이에도 지는게, 이기는 건가?

l 부부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싸운다. 그렇게 싸워도 서로 죽일려고 싸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먼저 사과해야 싸움이 끝난다. 이 때 손 내밀며 화해를 청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화해를 청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진것처럼 보이지만 크게 봤을 때는 이기는 것이다. 단순히 지금의 순간만 보면 진것처럼 보이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화해를 요청하는 사람은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한 자존심을 버리는대신에 둘의 사이를 회복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그래서 지는게 이기는 것이라고 한다. // 자 이기는 사람이 되겠는가? 아니면 지는 사람이 되겠는가?

l 오늘 본문에도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10절이다. 내가 약한 때 그 때에 강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는게 이기는 것다라는 말과 비슷하다. 그럼 우리는 강해지기 위해서 약해져야한다는 말인가?

l 어제 이야기를 좀 하다가 말았지만, 요사이 식초를 물에 타먹고 있는데 맛이 괜찮다. 혼자 있으면서 콜라 같은 것을 많이 마시니, 좀 절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병에 든 물에 식초를 탄다. 그리고 가지고 다니면서 마시기도 하는데, 그러면 뚜껑을 타면 물이 꽉차있기 때문에 먼저 물을 조금 마시고 거기에 식초를 탄다.

l 여기서 퀴즈, 좀더 진한 맛을 원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쉽다 물을 조금 더 마시고 식초를 조금 더 부어야 한다. 거기다가 원액을 그대로 마시고 싶으면 어떻게 할까? 아예 물을 다 버리고 식초를 따라 넣으면 된다. 너무 간단한가?

l 우리는 사실 강하고 싶어하고,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물을 채우고 있는 바틀워터같다는 것이다. 우리의 것으로 우리의 색으로 우리의 영향력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나의 소망이 이루어지고, 나의 뜻대로 되고. 그런데 나의 것으로 그렇게 채워져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마치 물이 꽉채워진 병에 식초를 탈수가 없듯이 말이다.

l 나의 힘이 빠지고, 나의 소원이 빠지고,나의 능력이 빠질 때에, 그 때서야 비로서 예수의 능력이 채워지고, 예수의 지혜가 채워지고, 예수의 삶이 나를 채워, 내가 예수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빼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나의 힘을 빼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내가 나를 내려놓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손을 웅켜쥔다는데그리고 죽어야만 손이 풀어진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무엇이든 쥐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기에 나의 힘을 뺄수가 없다.

l 우리의 습관들, 우리의 생각들, 우리의 주장들, 나는 원래 그렇다, 나는 뭐는 못한다, 긍정적인 힘, 부정적인 힘,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는..그런 생각들도 우리의 삶이라는 병에 꽉채워져 있다. 그래서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나의 것으로 찬물에식초 넣어봐야 소용이 없다.

l 우리가 알지만 사도 바울은 무엇인가 많이 차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학식, 경험, 신분, 이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엄청난 체험까지 오늘 본문을 보자 그는 보통의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 그런 놀라운 것을 본 사람이다. 그러니 그의 삶은 도무지 뺄수 없는 강함과 그 자신으로 차 있었던 것이다.

l 그런데 하나님은 그 강한 바울을 깨기 시작했다. 병에 가득찬 사도 바울의 강함을 따라 버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어떻게 보면 잔인하다. 다시 10절로 가보면 약한 것들, 능욕, 궁핍, 박해, 곤고의 방법을 써서 그를 깨기 시작하였고. 그 병안에 든 사도 바울이라는 물을 따라 버리신 것이다.

l 그런데 그렇게 따라 부어도 도무지 완전히 따라 부어지지 않는 것 그 자아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놀라움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교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그런 경험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사도 바울의 병밑 바닥에 구멍을 내신다. 그것이 무엇인가?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병이었다. 7절을 보자

l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의 물을 따라낼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계속 자신의 힘, 능력, 인생이라는 그런 물들을 버리니, 이제 끝이 났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사도 바울은 더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빈 인생에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채워지는 것이었다.

l 분명히 자신의 물이 빠지니 이것은 손해고, 망해가야 하는것인데, 사도 바울이 보니 손해가 아니었다. 망해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치는 그런 아주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을 주님이 설명해주신다. 9절을 보라..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는 것이다.

l 그 때부터 바울을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 전까지는 자신을 자랑하고, 자신의 체험을 자랑하고, 자신의 것을 내세웠지만, 이제는 오히려 자신의 약함 때문에 자기 인생의 병이 비어지는 것을 자랑하게 된 것이다. 좀 심한 말로 하면 손님이 와서 나는 호구다..라는 것과 비슷하고, 학생이 교교실에서 나는 꼴등이다 하는 것과 비슷하다. 권투 선수가 나는 못싸운다..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l 그런데 그런 약함, 자신의 병이 비어져버리는 그런경험을 하면서 유독 사도 바울은 즐거울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의 약함으로 자 자신이 비워져 버리면, 주님으로 더욱 가득 차겠구나. 이것이 진정한 은혜로다. 나의 능력이 없는 곳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겠구나 생각하게 된 것이다.

l 오늘 여러분들의 삶은 어떠한가? 무엇으로 차 있는가? 무엇으로 차 있던지, 우리의 인생의 병은 비어간다. ? 우리의 약함으로 그런데 그 약함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기회이다. 하나님의 강함과 능력을 채울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약함을 더욱 자랑했으면 좋겠다. 나의 불우한 과거, 나의 열등감, 나의 상처..살면서 도무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그것이 나의 어릴 적의 경험이나 힘들었던 가정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나의 성격이나 습관이 될 수도 있고, 현재 지금의 상황일 수도 있겠다. 무엇이든지, 자랑하라//////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 내 자신의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라그후에 진정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l 그 약함을 오히려 사도 바울처럼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