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do
you see? There is an apple on the screen. We are watching the same apple but
there might be different kinds of thinking about the apple. If there were
children, they would just think it is tasty. If you are a housewife, you might
think where you could buy that apple or make an apple jam. And if you are
farmer, you would think of what kind of apple it is. If you were Bible college
student, you might think the forbidden fruit looks like that? If you are an
economist, you might think how agriculture affects the economic situation. And
if you were Isaac Newton, you would think why an apple falls from a tree and because
of it you discovered the law of gravity.
여러분 지금 보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과를 보고 계십니다.
어려운 것은 질문 안합니다. 그런데 사과를 볼때에도 누가 사과를 보느냐에 따라서
여러가지의 생각이 생기게 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들이 사과를 보면 그저 맛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가정 주부가 보았다면 어디가면 맛있는 사과를 살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게 되고, 만약에
신학생이 보았다면 선악과가 저렇게 생겼을까?궁금해 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경제를 연구하는 학자가 보았다면 농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했을 것이고 만약에 여러분이 아이작 뉴턴이었다면 여러분은 저 사과를
보고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Even
though it is the same apple, there are different factors depending on how you
think. Today, I am going to talk about human relationship. Human relationship is
viewed in various ways. It has a lot of factors too, like an apple. Some considers human relationship is a
personal thing, some thinks it is like a social concern, psychological matter or
emotional thing, some thinks it is nothing but skill on how to get along with
others. But human relationship has deeper dimensions than what they think. It
is not just about a personal, social or skill thing but it is related with
spiritual things. It is a spiritual matter because when the Bible talked about
that relationship, it was related with spiritual things.
같은 사과를 보면서 서로가 다른 차원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인간관계라는 문제에 대해서 같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 인간관계에 대해서 말할때에도 여러가지의 생각이 틀립니다. 마치 사과를 보고 각자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인간관계는 그저 개인적인 일이다, 어떤 사람은 아니다 사회적이고 심리학적인 문제가 포함된다. 어떤 사람은 그저 사람들과 잘 지낼수
있게 해주는 처세술이다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인간관계는 더 깊은 차원의 문제입니다. 인간관계는 단지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사람들과 문제없이
잘 보내기 위한 어떤 기술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인간관계에는 영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관계는 영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 하기 때문입니다.
Let us go
back to the passage that we read, Verse 45 says, “you may be sons of your
Father in heaven” It means if we loved our enemies and pray for those who
persecute us, we would be sons of our Heavenly Father. It is a spiritual thing
to be sons of God. Isn’t that right? It has nothing to do with social thing s
or skill. And verse 48 says, “Be perfect therefore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The perfection stated in this verse is God’s character, it is not a fleshly
things but spiritual things. Thus we would say that human relationship affects
our spiritual life.
오늘 본문에 보면 45절을 보면,
“이 같이한즛 하늘에 계신 너의 하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오늘 나에게 Hard
time 을 주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인간관계를 가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영적인 일입니까? 아닙니까? 48절은 또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여기서 온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특징인데, 이 온전하다라는 말 역시 세상에서 쓰는 말이 아니라, 영의 세계에서 쓰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관계는 우리들의 영적인 삶과 관계가 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못 믿겠으면 배우자나 자녀들과 실컷 싸우십시오,
그리고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의 문이 찬란하게 열리며 천사가 내려올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기도의 문이 덜컥 닫히는 것을 여러분은 알게 될 것입니다.
Relationship
with people is not just about worldly things but about heavenly things. Jesus
said, “Whatever you bind on earth wi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ever you
loose on earth will be loosed in heaven” Let me say one more thing. 1John 3:10
says, “This is how we know who the children of God are and the children of
devil are: Anyone who does not do what is right is not a child of God; nor is
anyone who does not love his brother. What does that mean? To be a child of God, we have to love our
brother. Being a child of God is a spiritual matter. So loving others and this
kind of human relationship is not just about an earthly matter but also a spiritual
matter.
그래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단지 세상의 일이 아니라 사실은 하늘의 일입니다. 예수님을 말씀하셨습니다 “땅에서도 풀리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묶이면 하늘에서도 묶인다고” 말씀입니다. 또 요한 일서 3장 10절은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이러므로 하난님의 자녀들과 마귀의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의를 행치 아니하거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분명히 영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단지 세상에서 살면서 하는 일뿐만 아니라 영적인 일을 하는 것입니다.
Unfortunately,
we take care of human relationships as like earthly people do, we consider it as
an unbeliever would, in the secular world’s view. It is like what Jesus said.
Let us look at the verse 43, Jesus said,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love
your neighbor and hate your enemy but I tell you love your enemies” This verse
is saying the disciples just followed the customs and worldly view of things .
Moreover Jesus said to the disciples that they are the same as tax collectors
and pagans following the norm, custom and culture of their age. So if they love
those who love them and only greet brothers, they are doing just as the pagans
do.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사람들과 사귀고 관게를 맺게 될 때에 보통의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식을 따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사람을 사귀고 알게 되고, 친해지는 것이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3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동안 제자들이 그저 세상의 방법을 따라서 이웃은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였다는 것입니다. 아주 평범하고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넫 문제는 예수님은 사람을 알게되고 상대할 때에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누구나가 다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한단계 더 높은 단계로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Are we also
the same as tax collectors or pagans? Sometimes we sense that even though we
are born again people, we acted like those who are not born again people. We
are saved people but we don’t acted like not saved people but like pagans. Even
though we are a spiritual being, we ignore the aspect of spiritual human
relationship. My loved brothers and
sisters! We are not supposed to live according to the common practices. We are
not supposed to live according to our own thought. We are supposed to live according
to what God’s says and what the Bible says to us here and now because we are
the citizen of heaven.
예수님은 세금받는 사람과 이방인을 이야기하셨는데, 그들은 당시의 사회에서 무시받던 사람들중의 하나입니다. 유대인들이 볼때는 구원을 받지도 못한 그런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역시 거듭난 사람들이지만 때로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처럼 인간관계를 맺고 소셜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입고, 영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사람들을 상대할때에는 영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지요? 이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나,
나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웃은 사랑하고 원수는 미원하는 그런 단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When
Jesus talked about human relationship, he did not mention it in detail as we
read in today’s passage. He did not mention like that “listen carefully”, “respect
the other party”, “try to make eye contact”. He did not teach us the skills of
human relationship but he just strongly said, “Love your enemies” In Jesus’
this statement, “love your enemies” it clearly shows how our human relationship
that should be. I want us to learn the principle of how to have relationships
through the God’s word “love your enemies”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들 사람을 사귈 때에는 그 사람 말을 잘 들어야 하고, 그 사람을 존중하야 하고, 눈을 맞추어야 하고, 맛있는
것도 사주면서 같이 만나라 뭐 그런 것들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아주 단순하게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아주 잘 말해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오늘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통해서 여러분이 도전받으시고, 이제는 세상 사람들
처럼 사람을 사귀고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법으로 사귀고 사랑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We have
to love our enemies because it makes us as sons of God. (45) It means in our relationship with others, we have to love
other even our enemies. Our relationship must be based on love. As you know, a
son takes after his father’s appearance, his way of talking, hiss thought and
moreover a son has a desire to be more like his father. We want to have a God’s power that heals us,
we want to take after God’s wisdom that leads us to the best way, but we do not
want to take after God’s unconditional love. In other words, we want to be more
like God in the area that gives us benefits. But we do not want to follow God
when there is something we can’t accept us. We have double standards.
왜 우리가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까? 첫번째 이유는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때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하고 친해질 때의 모든
근본이 사랑이어여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닮습니다. 외모나 이야기 하는 투나, 생각이나
뿐만 아니라 또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 싶어합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힘도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하나님의 지혜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을 닮고 싶어 하는데 정작 하나님의 그 무조건적인 사랑은 별로 닮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은 다 가지고 닮고 싶어하지만 때로 우리가 하기 싫은 것은 닮고 싶어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그런 두가지의 양면성이 있습니다.
What is
God’s character? God gives his love equally to those who are the good, on the
evil, the righteous and unrighteous. God gives his grace to those who are the
righteous and He gives his forgiveness to those who are unrighteous. He has his mercy on the good and the evil. He
forgives everyone who comes to Him. But we are different from God. We have
favoritism. We love those who love us, we prefer to meet and talk with those
who are good to us. And we are tend to forgive those who like us. Sometimes we do not show no mercy to those
who are against us. It is nothing different from a tax collector and pagan. This
kind of character that we have is far away from our Heavenly Father.
그런데 우리는 정말 무엇이 하나님의 성품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처럼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든지 그렇지 않든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선한 사람에게는 은혜를 주시며 악한 사람에게는 용서할수 있도록 긍휼을 주십니다.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고 나쁜 사람에게는 다시금 하나님에게로 돌아올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는
틀립니다. 우리는 편애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내가 싫어합니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은 잘해주고 나에게 못해주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용서받기 원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원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성품과는 전혀 틀린 것입니다.
A convicted deserter once stood before
the Duke Wellington expecting to hear his death sentence. The general said, “I
am extremely sorry that to pronounce the sentence of death. We have tried
everything to improve you but we have failed” The general gave the soldier’s
comrades an opportunity to speak. One of them spoke up with great feeling.
“Please, your excellence, there is one thing that hasn’t been tried---forgiving
him!” The general was deeply impressed by this fresh suggestion and said, “You
are right! I will try that! I will forgive him.” The habitual deserter was
filled with gratitude. And from that moment, he became exemplary in his
conduct, and in the discharge of his duties.
어떤 탈영병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웰링턴이라는
유명한 장군앞에서 서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제는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장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너가 좀 낳아지기 까지 많은 시간을 노력을 했고
할수 있는 것은 다 했다. 그러나 너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수 없이 너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리고 장군은 다른 병사들에게도 말을 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때에 어떤 병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군님 우리가 모든 것을 다하였지만 단 한가지 안 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병사를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장군은 무엇인가 가슴에 깊이 다가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좋다. 조건없이 그를 용서한다” 그 말을 들은 그 탈영병은 그 마음에 뭉클하게 감도이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아주 모범적인 병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What
changed the deserter? The general’s generosity and forgiveness changed the
deserter into a good soldier. In the same manner, God changes us with his love
and forgiveness. So we have to love and forgive to those who are the good and
even our enemies because love and forgiveness belongs to God’s character. Jesus
told us, we as Christians by doing this we become sons of God. The man who has
divine power and wisdom has to do according to God’s word to be a servant of
God as God bestows upon him his resources. However, only the man who takes
after God’s character could be the son of God because only a son takes after a
father’s character. So if you want to be the son of God, you should try to take
after God’s character of love and forgiveness even to your enemies. .
여러분 무엇이 바로 그 병사를 바뀌게 하였습니까? 장군의 관대함과 용서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 탈영병을
좋은 병사로 바뀌게 하였습니다. 맟나가지고 하나님은 우리를 바꾸실 때 채찍과 징계로 바꾸시지 않습니다 사랑과
용서로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원수에게 까지도 사랑과 용서로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과 용서가 바로 사람을 바꾸는 힘이며, 하나님의 성품이고,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을 괴롭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식이나 남편이나 변화되지 않는 모습 때문에 힘이드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방법을 쓰시기 바랍니다. 그 방법이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이 나에게 해가
되는 원수를, 나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로 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힘이나 능력이나 지혜를 가지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원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종은 주인의 힘이나 지혜를 일부분 가집니다. 그런데 종은 종입니다. 반면에 아들은 아버지의 성품을 닮습니다. 그리고 그 성품이 닮아진후에는 더욱 더 많은 아버지의
힘도 지혜도 소유라게 됩니다. 여러분! 종입니까? 아들입니까? 능력과 지혜 뿐만 아니라 사랑과 용서의 성품을 가짐으로 더욱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Here is
the second reason that we must love even our enemies. Satan likes to use hatred and animosity to mess up our lives.
As you know, David was good at playing the harp. He used to play the harp for
Saul. When David played the harp for Saul, the evil spirit that tormented Saul
would leave King Saul. But David’s playing was not always effective to give
Saul relief. After the war, David defeated Goliath, king Saul did not like him
anymore, he was very angry and mad at David because all Israel praised David.
Saul’s jealousy became hatred toward David. So Saul hurled a spear when David
was playing the harp. The evil spirit stirred up Saul to want to kill David.
Satan used Saul’s hated to try to kill the ancestor of Jesus Christ sent for
the world.
우리가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두번째의 이유는 사탄은 증오와 미움을 사용하여 우리의 인생을 망쳐놓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수금 즉 하프를 잘 타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가끔 사울을 위해서 그 수금을 타기도 했습니다. 성경에 보니 악한 영이 사울을 괴롭혀서 머리를 아프게 할
때에 다윗이 수금을 타면 그 악한 영이 도망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윗의 수금의 연주가 효과가
없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인지 아십니까? 사울의 마음이 다윗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찼을 때입니다. 사람들이 다윗을 너무 좋아하자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다가 결국은 미워하게
되었고 그 미움으로 가득찬 상태에서 다윗이 사울을 위해서 수금을 켤때에 사울은 그 증오 때문에 창을 들어서 수금을 연주하는 다윗을 향하여 던집니다.
왜냐구요? 그를 죽이기 위해서 입니다. 사탄은
미움이 가득한 사울의 마음을 온통 어지럽혔고 그리고 사울을 통해서 장차 예수님의 조상이 될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When Jesus was arrested by Roman soldiers and
the servants of the priests, Peter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right ear. It was a good act Peter did, because he tried to
protect his master Jesus! But Jesus did not praise him but said, “no more of
this” and he touched the man’s ear and healed him. As for Peter, the servant of
priest was an enemy who took his master. That’s why Peter was angry and cut off
the servant’s ear. But Satan used Peter’s hostility to obstruct Jesus’
salvation ministry.
예수님께서 잡혀가시던 날 로마병정과 대제사장의 종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칼을 들어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라버립니다. 사실, 아주 잘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행동이요.
그는 어째튼 그의 주인인 예수님을 보호해 보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하고 다시 말고의 귀를 고쳐주십니다.
베드로에게는 로마병정과 말고가 스승을 잡아가는 원수였을 것이고, 그 증오와 미움으로
말고의 귀를 짤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사실 베드로의 증오를 사용해서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방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거기서 싸워서 이겼다고 합시다. 그러면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진행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증오와 미움 그리고 원수를 사용해서 우리의
모든 삶을 망쳐놓습니다.
When we
are caught up by hatred and animosity, Satan uses us to destroy all of our joy
and peace in our relationship with others. James 1:20 says, “for man’s anger
does not bring about the righteous life that God desires” Thus is we are not
supposed to hate our enemies but love them. Satan gets more power from hatred
and animosity. Satan tries to make as many enemies as much as he can. Therefore
we have to be very careful not to hate others rather that we love others even our
enemies. That is the sure way to get out from under the power of Satan.
우리가 미음과 증오로 가득할 때에 사탄은 어느틈에 들어와서 우리들의 마음의 기쁨과 평와를 가져갑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20절에서는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자 못함이니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움이 가득해서 원수들을 증오할 때마다 사탄은 그의 에너지가 점점 충만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에 그것이 우리의 힘이 되지만, 우리가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사탄은 힘을 더욱 얻게 됩니다. 그래서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많은 원수들을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할수 있다면 남편도 원수로 아니 웬수 자식도 원수로)결국은 혼자가 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원수를 만들어 지지 않더록 조심하는 것이 중요하고, 원수가 있다면 사랑하고 용서하며 털어내냐
합니다. 왜 사탄이 우리의 원수로 하여금 우리를 넘어뜨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To make a
good relationship is not easy because each of us is surrounded with awall which
was built by each of us. The wall is
named selfhood. Each of us loves each ones self more than any other. Through many hurt feeling, bitterness, selfishness,
inferiority complex makes each of us love our self. We often think there is no
one as pathetic as like me, so sometimes we are filled with self-compassion.
That’s why we are not attentive to others even our spouse.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가끔씩 우리가
만들어 논 벽에 둘러쌓일가 있습니다. 그 벽은 바로 우리의 자아입니다. 우리 모두는 남들로부터 많은 상처가 있고, 열등감이 있고, 죄가 있고 부족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지기도 하면서 우리 마음의
벽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혼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내가 제일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내가 관심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배우자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그저 혼자서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Sometimes
we have very goodwill and we try to be a good to others. But the bad thing
inside of us makes us like a hedgehog. There is a hedgehog’s dilemma that
describes a situation in which a group of hedgehogs all seek to become close to
each other in order to share their heat during the cold water. However once done,
they cannot avoid hurting one another with their sharp quills. They must step
away from one another. We too are giving
and taking hurt from one another. There
are many reasons other than these about that why we have enemies, why there are walls that limit
love, why we can’t love one another and why we struggle in our human
relationships.
또 우리는 어떤 때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착한 일을 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의 상처와 쓴 뿌리가 우리를 두더지처럼 만듭니다. 여러분 두더지 딜레마 아시지요? 두더지들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서로의 몸에 온기를 나누려고
모여듭니다. 그러나 모이면 모일수록 그들은 서로의 가시로 서로를 찌릅니다. 좋은 마음으로 가까이 가려고 하고, 착해지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가면 갈수록 상처받는
것처럼, 두더지들도 가까이 할수록 서로 찔리며 상처받습니다. 그외에도 많은 이유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좋은 인간관계,
참 정이 넘치고, 사랑이 풍성하며, 서로 나누는
그런 관계를 막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어 합니다.
Whenever
you struggle with relationships, remember this. You have to try to be like a son of God. It means you must have love and
forgiveness that overcome hatred and animosity. Jesus ordered us to break down
all of our walls between us and our enemies. What did Jesus say? “He said, “love your
enemies” It means break down that wall called selfness and extend your love to
reach out to others. That is the way a Christian should follow.
그렇게 힘든 순같이 계속 될때에 우리는 한가지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과 용서로 미움과 증오를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사랑과 용서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높은 벽을 두꺼운 벽을 허물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관계에서 한가지만을 줄곧 계속해서, 집중해서,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My
brothers and sisters! Please look back over your life and think if there are any
walls between you and others? There might be a wall between you and your
spouse, or children. There are might be a wall between you and your boss, or co-worker.
Remember what Jesus said. He said, “Therefore,
if you are offering your gift at the altar and there remember that your brother
has something against you, leave your gift there in front of the altar. First
go and be reconciled to your brother; then come and offer your gift.”(Matt5:23,2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서 혹시 벽이 있지는 않습니까? 아마도 가족간에도 직장에서도 벽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원한과 상처가
마음속에서 응어리져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 때마다 기억하십시오. 네가
제단에서 예물을 드리기전에 원망을 들을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화해하고 예물을 드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As you
know, the car you have has its own key which can start your engine. No key works
properly with the car you have except your car key. What if I have even a golden
key, It can’t get your car’s engine started. A car needs its own key to start the
engine. In the same manner, if there is a human relationship problem, we need
the right key to solve the problem. We can approach to that matter in many
ways, and there might be a good solution but it could be temporary, it doesn’t
last long. We must approach it in God’s way because we are living under God’s
reign.
여러분
차가 있지만 그 차는 그 차에 맞는 열쇠가 있습니다. 그 열쇠로만 열어야만 합니다.
제가 금으로 된 키가 있다고 해도 아무런 차를 열수는 없습니다. 차에 맞는 열쇠가
있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고 인간관계의 문제의 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영적인 열쇠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지혜의 열쇠가 열지 못합니다.
나의 머리로도 열수가 없습니다. 세월도 열지 못합니다.
인간관계는 영적인 문제이며, 우리는 영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If you
are struggling with a human relationship between you and your spouse, a co-worker,
even a fellow church member or anyone, consider this, we should approach it
spiritually because it is not just about skill or just an emotional or social
things. The spiritual approach should be the right key to make for a good human
relationship. May God grant you the heart to seek to be the son of God and can
love even your enemies in 2009.
아직도
그 마음에 괴로움이 있으십니까? 영적인 문제는 영적으로 해결하십시오.
담대하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모든 사랑과 용서로 미움과 증오를 이기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그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더욱 닮아가는 2009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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