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루 일과중에 항상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는 것입니다. 한국뉴스도 보도 아틀란타에서 발행되는 한인신문도 봅니다. 그 신문을 보고 있는데, 참으로 가슴아픈 사연이 한가지 소개 되었습니다. 제목이 뭐냐면 “일가족 차안에서 토막잠”이라는 기사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비즈니스도 망하고 빚만 늘어서 결국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게 되고 결국은 집도 없고 일도 없는 홈리스가 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여러분 알고 계셨습니까? 아틀란타에는 한국인 홈리스, 즉 집없이 떠도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The one
of my routines is to read internet newspapers. Usually, I read one of Korean
newspaper and one of Korean-American newspaper which is issued from Atlanta.
One day, after early prayer meeting service, I read the Korean-American
newspaper and found very sad article. The title was that a whole family slept
in a car because they lost their business and job. They were kicked out from
their home and became homeless. Surprisingly, the number of homeless Koreans
has increased in Atlanta.
그중의 어느 홈리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비즈니스를 시작했을 때에는 15만불을 투자해서 했지만 지금은 엄청난 빚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Bankruptcy 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려고 여기저기 다녀보았지만 마땅히 일할곳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어느누구도 쉽게 나서서 돕겠다고 하는 사람도 없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파산하게 되는 것은 아주 끔직한 악몽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파산하는 것은 인생에서 껵을수 있는 5가지의 가장 힘든 일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이혼이나, 아주 고치기 힘든병, 장애인이 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그정도로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하는 것이 바로 파산이라고 합니다.
A
homeless man said that he began his business, he invested over $150.000 but
unfortunately he earned nothing but a huge amount of debt. Finally he went into
bankruptcy. He tried to get a new job but there was no ones to ask him to work.
As you know, it is very hard to find job in this financial depression. So he was desperate for help. Some people say
that bankruptcy is a living nightmare, that’ why certain research says that
Bankruptcy is listed in the top 5 life-altering negative events that we can go
through, along with divorce, severe illness, disability, and the loss of a
loved one.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2000년전에 영적인 파산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요? 그 사람이 예수님께 제자로 부름을 받을 때 그 사람은 자신의 그물과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고, 그는 예수님께 대해서 믿음의 고백을 올려드립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고백말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그 믿음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복이 있구나 내가 너의 믿음의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고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그 사람은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예수님은 로마군들에게 잡혀가시고 밤새 심문을 당하십니다. 예수님이 잡혀가시기 전에 베드로는 예수님께 “다른 사람들이 다 떠나가더라도 나는 예수님을 끝까지 쫓을 것입니다” 말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번 배반하리라”말씀하시면서 너무 자신만만하지 말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을 배반하게 됩니다.
There
was someone who experienced bankruptcy in spirit in 2000 years ago? When he was
called by Jesus, he left his nets and boat to follow Jesus. He boldly confessed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What a beautiful faith he
had. So Jesus said to him, “Blessed are you, I will build my church on this
rock and I will give you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Do you know who he
was? He was a great disciple of Jesus. His name is Peter. But on the day, when
Jesus was arrested and came up for hearing, Peter disowned Jesus three times
even though he said to Jesus, “Even if all fall away on account of you, I never
will” But Jesus said, “this very night, before the rooster crows, you will
disown me three times”
여러분 베드로가 닭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성경에는 그는 닭소리를 듣고 심하게 통곡하며 슬피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에수님을 부인하기 전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입니다”라는 고백을 할수 있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특별히 데리고 다니시면서 기적을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마 예수님은 그 베드로에게 다른 사람과는 다른 크레딧을 주신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헌신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째튼 베드로는 완전히 예수님께 헌신한 제자처럼 보여졌습니다.
Think
about Peter who heard a rooster crowing, after that, he went out and wept
bitterly. Before his denial he was the one of best disciples, he already forsook
all his belonging to follow Jesus and he knew Jesus is the son of God unlike
others. Jesus invited him to a very special place where Jesus performed
miracles. Maybe Jesus gave him credit for his dedication and enthusiasm. He
looked like a fully committed follower of Jesus Christ.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버릴 때에, 그의 믿음, 비전, 계획, 예수님께로 받은 모든 애정들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소망하던 것 그리고 그가 가졌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노라”라는 그 배신의 한 마디에 베드로가 믿었던 것, 지난 3년동안 제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영적인 파산”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에게 남은 것은 공허함과 죄책감이라는 커다란 빚만 남았습니다. 한 때 베드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고, 믿을 만한 사람이고, 인정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나쁜 사람이고, 무능력한 사람이고 믿지 못할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전까지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그제서야 확실히 자기가 얼마나 쓸모없는 사람이 이었는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때까지는 영적으로 부자였지만, 이제는 쫄딱 망해 영적으로 아주 가난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However
when he forsook and disowned Jesus, his faith, his vision, his plan and his
credit went to pieces in fragments. All things he hoped for, all things he had
were gone in an instant. All of his faith that he believed, all of the efforts
he made for three years was disappeared with his saying “I don’t know the man”
He must have went through spiritual bankruptcy, He had nothing had left except with
emptiness and guilt. What would he think
now? He might thought he was good, able, trustworthy until then, but now he
thought he was bad, disable and not reliable. He didn’t know what kind of man
he was but at that moment he knew his limitation for the first time. Once he has
been rich in spirit, now he was poor in spirit.
예수님의 비유에 보면 영적인 부자가 있고,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 그렇게 두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또 다른 사람은 세리였는데, 바리새인은 제단에서 똑바로 서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이시여 내가 도둑놈이나, 나쁜 놈이나, 바람피는 사람, 그리고 저기 보이는 세리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하며 십일조도 꼬박 꼬박 드렸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세리는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무릅을 꿇고 가슴을 치고 울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은혜룰 주십시오 저는 그저 죄인입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누가 영적으로 부자인 것 같습니까? 다시 말하면 자기 의가 충만한 사람입니까? 맞지요 바리새인이 영적으로 부자이고, 자기 의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세리는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자랑할 것도 없고 그저 죽을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느꼇던 감정이 바로 세리가 기도했던 것과 비슷하였을 것입니다.
There
are two kinds of men among believers according to a parable of Jesus. It said, “Two
men went up to the temple to pray, one a Pharisee and the other a tax
collector. The Pharisee stood up and prayed about himself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men –a robber, evil doer, adulterer- 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 I fast twice a week and give a tenth of all I get. But the tax
collector stood at a distance. He would not even look up to heaven, but beat
his breast and said,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 What do you think who is
rich in spirit? Who is self-righteous man. Yes the Pharisee is rich in spirit,
he is self-righteous man because he had many things to tell God to show his righteousness.
Who is poor in spirit? Yes! The tax collector is poor in spirit because he did
not have anything to boast about, he said he was just a sinner.
그런데 재미있게 하나님은 세리에게 즉 심령이 가난한 그에게 은혜를 더욱 베푸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하나님 앞에서 더욱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심령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성품은요,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베풀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교적으로 무엇인가를 많이 하는 사람보다는 영적으로 가난해서 납작 엎드려서 자비와 은혜를 구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새벽기도며 철야기도며 쫓아다니면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들도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이 믿음이 좋아서 그렇구나” 흔히들 생각하는데, 뭐 그렇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좋아서 라기 보다는 이것입니다. “하나님 아니면 저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니면 저는 백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하나님 저 외롭고 힘들어요 좀 어떻게 좀 해주세요, 하나님 내가 머리가 나빠서 도대체 뭐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가만있지 말고 이야기좀 해주세요” 이런 심정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교회에서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세상적으로는 전혀 별볼일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일 뿐입니다.
Interestingly,
God rewarded the tax collector who is poor in spirit, Jesus said that the tax
collector rather than Pharisee went home justified before God. What kind of God’s
character do you discover in this story? God gives His mercy to those who are
poor in spirit. God doesn’t like religious braggarts, He loves those who are
humble themselves and bow their head to ask His mercy. That’s why today’s
passage says to us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얼마만큼 돈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얼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가난하다고 할 때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가난하지만 그럭 저럭 하루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말입니다. 반면에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아나 과부나 장애인이나 다른 사람들이 돕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은 그렇게 도움이 없이는 죽어 버리는 그런 가난함을 말합니다. 즉 심령이 절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예수님은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What is
poor in spirit? It has nothing to do with how much money we have, it has
nothing to do with how much property we have. In the Bible, there are two kinds
of poor people. Those who simply live in poverty. They are poor but they could
earn money to live on the earth. Then there are others who cannot make it by
themselves. They cannot live without help. For instance, orphans, widow and
those with disabilities, they need help, they cannot survive by themselves. The
former is relatively poor and the latter is absolutely poor. The poor in spirit
in today’s verse means to be absolutely poor in spirit.
그래서 영적으로 가난하다고 말하는 것은 “영적인 거지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욱 맞는 표현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압니다. 자기들이 아무것도 하나님께 드릴 것도 없고, 아무런 능력도 힘도 없이 그저 예수님 없으면 폭삭 망하는 그런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잘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만이 희망이고, 도우시는 분이시기에, 마치 거지가 돌아다니면서 구걸하는 것 처럼, 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님께 가서 “예수님 없으면 살수 없으니 제발 은혜를 주세요 예수님”그렇게 간구하는 사람들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종류의 사람입니까? 영적으로 가난한 그런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까? 아니면 영적으로 부자인 사람 즉 “내가 할 것 잘 알아서 하고, 꼭 기도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는 그런 여유가 있는 분”들입니까?
The
spiritual attitude of poverty is closely related to what is called “a spiritual
beggar” They realized that they are nothing, they have nothing to offer, they
can do nothing and they are helpless and powerless people without Jesus. They know they are totally dependent beings.
Only Jesus is the source of life. Only heavenly Father God is their
defender. A beggar goes around begging
likewise the poor in spirit ask God for grace because they know they cannot live
without Jesus. He that is poor in spirit is lowly in heart but rich men are
commonly proud and scornful. Are you rich or poor in spirit?
영적인 부자들은 자기 “의”와 “만족”이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는 괜찮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도움을 받지는 못합니다. 이미 하나님께 도움을 받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바리새인은 이미 하나님께 도움을 받을 것이 없습니다. 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없어도 별문제가 없는 사람들 즉 영적인 부자들은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반대, 영적인 부자, 심령의 부자들은 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내가 할일을 잘 알아서 하고 있고, 그러니까 그다지 죄인도 아니고, 이미 경험도 많고 지혜도 있고, 알 것은 다 알고 있으니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의”가 마음속에 가득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의” 가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잘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없고 아픈 사람에게야 의사가 필요하다, 나는 의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서 왔다” 여러분 마음속으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영적인 부자인가, 아니면 가난한 사람인가? 기억하십시요. 영적으로 가난한, 즉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소망있는 자입니다. 천국을 가지는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적으로 파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토록 영적으로 가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참된 소망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When you
think you are rich in spirit or you boast your self-righteous that you are fine
and in full, God is not there to help you because there is nothing God help you.
If you might think that I can do it, I have power to do it myself, I am a not
sinner, I have experience and wisdom, I am able enough to do anything. If you
are filled with yourself in your mind, you are rich in spirit and Jesus will
not help you. Jesus said, “It is not the healthy who needs a doctor, but the
sick,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Search your heart and
see if you are rich or poor in spirit? Remember! Those who have hope in God are
poor in spirit. So we need to be poor in spirit.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 심령이 가난해질수 있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인정해야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 서서 그의 거룩한 영광을 볼 때에 이사야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나에게 화가 있겠구나, 나는 이제 죽었구나 나의 이 더러운 입술로 어떻게 하나님을 볼수가 있단 말인가!” 이사야가 그의 죄악을 그렇게 인정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나의 죄를 인정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첫 발걸음으로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세상의 문화와 세상의 철학은 하나님도 없고 죄도 없다고 합니다. 단지 우리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인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시덥지 않은 죄책감에서도 벗어나 자유를 누리라고 합니다.
My
brother and sister! How do we become the poor in spirit? Number one, we need to
admit we are sinners. When the prophet Isaiah stood before God and saw His
glory, he cried, “Woe to me, I am ruined! For I am a man of unclean lips” When
he faced his sin, God sent an angel to him with a live coal to atone for his
sin. My brother and sister the matter of sin is very important to a Christian. What
does worldly philosophy and culture say? They say, “There is no sin against God
because you are god, you just feel guilty but there is nothing wrong, it is a natural
way to feel, just get out of it and feel freedom”
세상은 이야기 합니다. 단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너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너의 몸이 원하는 것을 해라. 너의 몸이 남자의 몸을 원한다면 네가 남자라도 상관없다. 너의 몸의 요구하는 것, 너에게 쾌락을 주는 것, 잠시동안의 즐거움을 주는 것 그것을 하라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에 선악과 처럼 네가 해서 안되는 것은 없다. 먹고 싶은 것 마시고 싶은 것, 그것을 하는 것이 너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해라, 하나님 앞에 솔직해서 그분에게서 들으라. 여러분 세상의 가르침은 우리를 영적인 부자처럼 만듭니다. 왜냐하면 “너가 다 옳고 너가 하는 일이 다 좋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구원받는 사람은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며 오늘 나의 죄를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They
also say, “Just do what you want, be honest to yourself and hear what your body
wants to do, There is nothing such as forbidden fruit, you can eat whatever you
pick” But the Bible tell us “Do what God wants, be honest to God and hear from
God” The worldly thought tries to make us rich in spirit. But remember this,
those who are saved are poor in spirit and they admitted their sin.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예수님 오른 편 왼편으로 같이 십자가에 달린 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인중의 한 사람은 영적인 부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영적으로 가난했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를 모욕하며 네 스스로 너를 구원해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의 사람은 “나는 내가 행한 죄값을 이제 받지만 예수님 당신은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천국에 오늘 가실 때 나를 기억해주십시오” 예수님은 그렇게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는 강도에게 “내가 오늘 나와 함께 천국에 갈것이라고”십자가위에서도 축복해 주셨던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물어보고 싶습니다. 과연 누가 십자가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죄를 인정했던 그 강도가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여러분 구원받기 원하십니까? 영적으로 가난해 지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겸손하게 무릅을 꿇으십시오 그리고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나는 어쩔수 없는 죄인입니다. 불쌍한 죄인일 뿐입니다 오셔서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그런 고백 가운데 예수님은 찾아오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When
Jesus was crucified, there were two criminals. One on his right, the other on
his left. The one was rich but the other was poor in spirit. So the other said,
“I am punished justly for I am getting what our deeds deserve, Jesus remember me when you come into your
kingdom” Jesus replied, “I tell you the truth,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Let me ask you a question, who was saved on his cross? The one who
admitted his sin was saved. Do you want to be saved? Do you want be spiritually
poor? Let your knees get on and confess that “Lord I am wretched, I am poor and
I am sinner won’t you come and save me?”
두번째로 심령이 가난해 지기 위해서는 불평을 하면 안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과 불평 불만하는 것과 무슨상관이 있을까요? 우리가 불평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부자가 되기 싶습니다. 우리가 불평을 계속할 때에는 사실 이런 생각이 그 속에는 있습니다. 뭐냐면, “나는 옳고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라는 생각입니다. “나는 정당하고 다른 사람은 이상하다”는 생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불평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맞다고 믿을수록 여러분은 불평하는 횟수가 늘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의롭다고 주장할수록 우리는 사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 아니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선한분”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선하고 다른 사람은 악하다라고 말할수록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선한 분이 아니라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유치원에 다니는 조그만 애가 “아니 이 유치원에 다니는 애들은 맨날 코만 흘리고 다니고, 서로 싸우고 왜 이래? 내 말도 안듣고 왜 이래?” 하면서 선생님을 슬쩍 쳐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애가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선생님을 향해 불평하는 것입니다.
Number
two, do not grumble. Grumbling and complaining are easy ways to be rich in
spirit. To continue to grumble makes you think that you are right but the
others are wrong. Do you know who grumbles against God and man? A man who think
he is right grumbles. The more you believe you are right, the more you grumble
and blame to others. The more you believe you are just, the more you make God
unjust because no one is just except God alone.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잘못을 인정하면 여러분은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잘못했는데 불평할 일이 없지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나가서 광야로 갈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와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아이고 하나님과 모세가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게 하려고 여기까지 끌고 왔구나 여기는 물도 없고 음식도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은 맞고 모세와 하나님은 틀리다고 했습니다. 모세와 하나님 때문에 자신들이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고 자신들을 죽게한 모세와 하나님에 대해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누가 틀리고 누가 맞는 것이었습니까?
Think
about this, if you admit you are wrong, you would not grumble. When Moses led the
Israelites from Egypt and went through the wilderness, the Israelites grumbled
against Moses and even against God. They thought Moses and God let them die in
the wilderness because there they lacked of water and food. They thought they
were right but Moses and God were wrong. Because of Moses and God, they thought
they were going to die in the wilderness.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할 때 우리에게는 이런 생각이 밑에는 깔려 있습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할 때 우리는 이미 재판관이 되어서 누가 옳은 지 누가 틀린지 이미 다 판단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배우자들에 대해서 불평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미 배우자에 대해서 저것은 맞고 저것은 틀리고 다 판단해 보렸기 때문에 불평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족이나 이웃이나 심지어 교회에 대해서 비판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뭐 이런 사람이 있어, 뭐 이런 교회가 있어?” 비판할때부터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생각이고 이런 생각은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뭐가 이래요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옳으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정의롭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무엇을 어떻게 하신들, 그것은 우리가 잘잘못을 가릴수 없습니다.
You can complain
against others and even God but when you grumble against something or someone,
there always is the assumption that you are right and just. When you grumble,
you sit on the bench and judge who is right and who is wrong. When you grumble
about your spouse, you already judged your spouse and conclude he or she was
wrong. When we grumble against family, others, the church, we already judged that
they are wrong but not me.
성도 여러분 성경은 말합니다. “판단하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는 예수님도 너희는 육체로 판단하나, 나는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판단하지 않는데 어떻게 감히 우리가 형제를 자매를 판단하고 심판할수 있습니까? 영적인 부자들, 앞에서 말했던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만 형제를 자매을 이웃을 판단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는 저인간처럼 살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나는 저런 형편없는 사람이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는 저사람보다 낫으니 다행입니다, 하나님 나는 저 사람처럼 돈돈돈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는 저들처럼 교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는 자기것만 챙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등등의 많은 판단을 합니다. 누가합니까? 영적인 부자들이 한다는 것입니다. .
Please
be advised! The Bible says, “Do not judge, do not condemn” (Luke6:37) Even
Jesus said, “you judge by human standards, I pass judgment on no one” Even
Jesus did not judge, how dare we judge others? If you are rich in spirit, you
would judge others according to your terrible righteousness and grumble about others.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심령이 가난하다면 우리는 감히 누구를 판단하고 불평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의 고백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죄인 중의 괴수니라” 내가 죄인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누구를 판단할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내가 죄인중의 괴수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에게 불평할수 있습니까? 감히 못합니다. 메릴랜드나 버지니아 대도시에 가면 교통이 워낙 혼잡해서 차를 타고 가도 길에 서있는 시간이 기니깐, 구걸하는 사람들이 잘 왔다 갔다 합니다. 그 사람들은 1불을줘도 10불을 줘도 같은 말을 합니다 “God bless you” 만약에 여러분이 5불을 주었는데 그 걸인들이 여러분들을 판단합니까? 아니면 돈을 조금 준다고 불평합니까? 얼마를 주든지 고맙다고 합니다. 판단과 불평은 그들의 몫이 아니고 돈을 받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심령이 그렇게 가난해지면, 판단과 불평이 떠나갑니다. 그저 구원해 주신 은혜가 감사할 뿐입니다. 불평할수록 자기의 “의”와 “만족” 만 충만해지니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들의 심령이 더욱 가난해지기 원합니다. 야고보서 5장 9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계시니라”
If you
are poor in spirit like Paul, you would not judge others and stop grumbling.
Engrave this on the tablet of your heart, Paul said,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 of whom I am the worst” How could the one who thinks
he is the worst grumble against God and man? Therefore to be poor in spirit, do
not grumble. Grumbling make you rich in spirit. That’s why James 5:9 says, “Don’t
grumble against each other, brother, or you will be judged. The judge is
standing at the door”
세번째로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 지기 위해서 우리는 겸손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두로라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셨는데 그 여인은 귀신들인 딸이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와서 엎드리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 제 딸을 살려주세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청을 한마디로 거절하십니다.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줄수 없다”면서 말입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은혜를 주지만 너는 개 같이 가치가 없는 사람인데 너에게 줄 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Number
three, to be poor in spirit, humble yourself. When Jesus went to the vicinity
of Tyre, a woman whose little daughter was possessed by an evil spirit came and
fell at Jesus feet. She asked Jesus to drive the demon out of her daughter. But
Jesus refused her plea and said, “for it is not right to take the children’s
bread and toss it to the dog” What does this mean? His saying implied that you
are like a dog, you are gentile who don’t deserve my grace”
예수님께서 그렇게 모질게 그 여인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고
청을 거절했지만 그 여인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더욱 겸손하게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맞습니다 주님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음식을 먹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은 “여인아 네 믿음이 크도다 이제 가라 귀신이 너의 딸에게서 떠나갔다”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 여인을 무시하였지만 여인은 더욱 겸손하게 주님께 간청하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얼마나 말씀을 잘하시는 분이신지, 그렇게 많은 당대의 공부하였다는 바리새인, 율법사, 서기관, 재사장, 심지어는 로마의 관리들도 예수님께 이것 저것을 따져 묻지만, 예수님을 이길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유독 이 여인에게는 한마디도 안하고 그냥 져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겸손하고 심령이 가난한 자의 간절한 요청에 다른 말씀이 필요없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그 여인의 겸손한 소망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When
Jesus at first refused her request for help, since she was not a Jew, she said,
"Yes, Lord, yet even the dogs eat the crumbs that fall from their master's
table." Do you know how Jesus responded, "O woman, great is your
faith! You may go, the demon has left your daughter" When Jesus
intentionally despised her, she just fell down and humbly asked. “Yes Lord, even though I am like a dog, let
me get your grace” She had nothing and no one to rely on. Jesus was the only the
answer for her. That made her humble and her humility showed how much she was
poor in spirit.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 하나님 앞에 겸손해질수 있습니까? 겸손은 사실 하나님 앞에서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우리의 지금 모습과 우리가 가진 것 모두가 우리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나의 생명도 나의 가진것도 모두가 주님것이며 “주님 나는 그저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How can
we be humble before God? Humility needs to be the habitual attitude of a child
of God. A humble person recognizes reality namely, all that we are and have is
come from God even though we don’t deserve it. So do not insist that your life
belongs to you, that all you have is yours and just confess like that “Lord I’m
nothing but a sinner who needs your grace” What did Paul say?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우리는 또한 사람앞에서도 겸손해져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각자 겸손함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섬김을 받기 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잘 해주었으면 하고 속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관심을 받고 싶어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배우자나 친구 혹은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려고 하고 자기의 뜻대로 끌어오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자기의 맘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중에 더 낳은 사람도, 더 못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 아니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내가 죄인중의 괴수이고 빌립보서에서 처럼 나보다 남이 낫다라고 여기는 순간부터 우리들의 심령은 가난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겸손하여 지시기 바랍니다.
And we
must be humble before man. Philippians 2:3 says, “In humility consider others
better than yourselves” Self-centered man want to be served, want to be taken
care of, want to be the center of attention and further more they try to control
their spouse, friends and others. They believe they are right and others are
wrong so that’s why they want to control others. It has nothing to do with
humility. I’m not better than you and each one of you are not better than one
another. We are nothing but sinners who need God’s grace. Those who admit we
are nothing but sinner are poor in spirit. Therefore be humble so that you are poorer
in spirit in Jesus Christ.
우리가 우리의 삶, 나의 사회 생활, 나의 소유, 나의 성격이나 경험 나의 모든 것을 웅켜쥐고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부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가진 것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그래봐야 여러분이 손이 쥘수 있는 만큼만 가지게 됩니다. 내가 부자라고 해봐야 나의 손만큼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 실제로 그런 부자가 되어도 무엇인가 더 가지려고 하고, 더 먹으려고 하고 항상 불만족 속에 살아갈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손에 쥔 것이 많으니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받을수도 없습니다.
When you
hold your life, career, belongings, reputation, character, experience and
thought tight in your hand, you cannot have anything more, you just get as much
as the size of your hand. After you get all thing, you probably say, “I am rich”
but you are not rich because you will always be thirsty to get something more.
Furthermore however you cannot get the gift of heaven because your hands are in
full.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손을 하나님께 펴고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 보셨죠?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면, 그 때 하나님이 당신의 손으로 우리의 손을 잡으시며 우리를 번쩍 들어서 지금의 환란과 고난의 삶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더 많이 포기하고 드릴수록 우리는 더 많이 심령이 가난하게 되지만 그렇게 가난해질 때에 하나님의 부요하심이 우리를 채우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적으로 파산하는 심령의 가난을 맛볼 때 바로 천국이 여러분의 것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But if
you open your hand to God and say, “I have nothing, I can do nothing, I am
nothing and I am poor” God would hold your hands tightly and lift you up to
deliver you from this earth to the kingdom of God. The more you surrender, the
more you are poor in spirit. I pray that we surrender all of our lives to Jesus
until we truly experience spiritual bankruptcy to gain the kingdom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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