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Corinthians 10: 23-33
What do
you see 2
지난 주일 우리는 아디아포라라는 것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아디아포라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에는 상관이 없지만, 이 것을 해도 되는가 안되는가
하는 문제들을 아디아포라라고 부른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Last
Sunday, we were talking about the matter of “ADIAPORA” It means that a matter
that is not of the kind which is central to what a being a Christians is. In
other word, “ADIAPORA” in Christianity refer to matters not regarded as
essentials to faith but nevertheless as permissible for Christians or allowed
in church.
예를 들어서 기독교인이 문신을 한다던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던가,
술 담배를 한다던가, 피어씽을 한다던가, 아니면
할로윈데이에 귀신 복장을 하고 돌아다닌다거나 하는 이런 문제들은 우리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지만, 우리가 이것을
해도 되는가 안되는가 고민하게 되는 문제입니다. 왜 그런 것을 가지고 고민하세요? 라고 물어보면, 성경이 그런문제까지 대답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도 되나 안되나 하는 아디아 포라의 문제는 가끔 보면 믿는 사람들 간에 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사로 다른 생각 때문에 분열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For
example, wearing tattoos, drinking, piercing, Halloween and so on, all these
have nothing to do with the Salvation from God but has something to do with our
lives. Sometimes we are confused whether we should do these things or not because
the Bible does not speak about them. That’s why the problem of ADIAPORA may
bring certain conflict between believers and division because of different personal
convictions.
버지니아에 있을 때에 한 미국 교회 이야기 입니다. 그 교회가 원래는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가 성장하게 되었고, 예배때 마다 꽉꽉 드러서는 사람들
때문에 그 교회는 에배당을 새로 지어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교인이 기도하고,
회의하면서 멋진 교회 건물을 다시 만들자는 것에 다 합의를 했고, 모든 사람이 스스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도네이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완벽해 보였습니다.
I
was told about an American church in Virginia. The pastor of that church said
that his church was not a big church. But as time went by the church grew, at
each service the church was too crowded. So they needed to make a decision
about building a new church building.
All the church members prayed and talked about it. A few months later,
they finally made a decision to build a new church building. Everybody loved the
plan and wanted to donate what they could do it. Everything looked perfect.
But
the problem was that they didn’t have enough money to build a new building. So
there were two opinions in the church. The one was that if we don’t have enough
money we could borrow some money from a bank, and the other opinion was that a
church’s building is not a secular building but a sacred building. How could we
build a church building by borrowing secular money? Even if it takes time
longer to build it, we’d better wait until we get enough money.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회 지을 때 세상의 돈을 빌려서 써도
되는 것입니까? 안되는 것입니까? 결국 그 교회는 그 문제 때문에 많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돈을 빌리자 말자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을 빌리지
않겠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결국 교회를 나가고 말았습니다. 어떤 때는 이런 구원과 상관없는 문제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What
do you think? Can they build a church building with secular money or not?
Should a church’s building be built only by donation and building fund offering?
Finally the group who were against borrowing money from the bank left the
church. Sometimes because of things like this that are simply ADIAPORA it is
not easy to make a decision.
오늘 우리가 보는 고린도의 교회도 그런 아디아 포라 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해도 되나 안되나”하는 문제들 말입니다. 이 문제는 지난
시간에 보았던 것 처럼 로마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고린도의 교회의 사람들은 고기를 먹어도
되나 안되나를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고기는 우상들에게 제사지내고 시장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고기를 사먹는 것은 이미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비슷한 셈인데,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 믿는 사람이 우상의 제물을 먹느냐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들은 이미 이전의 것은 다 지나갔는데 그런 것가지고 왈부 왈부 하지 말고 그저 감사함으로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Today,
we are looking at the ADIAPORA that the Corinthian church had. They had the
same problem that the Roman church had. Corinthian Christians were also
confused about eating meat. Most of the meat came from offerings to foreign gods.
In most cases, sacrificed animals from the temple of foreign gods were
distributed to the market place. Some of Corinthian Christians thought that
they could eat because all thing come from God and the old law was gone, it
couldn’t be applied to them. But the others thought that they couldn’t take
that meat because they were offered to foreign and idols that God most hated.
What
do you think about that? Could they eat the meat from the temple of other gods?
or should they d avoid the meat that was already offered to other gods? What
should they do? Today, Paul gives us guideline that leads us into what is right
in the Christian life. Let us listen to what the Bible says!
We
see that we shouldn’t be judged by other’s views. Paul says in verse 29, “For
why should my freedom be judged by another's conscience?” It means that my
freedom shouldn’t be limited by what someone else thinks. You need to make sure
this, “You are free in whatever you eat, drink and do” There is nobody who has
authority to judge you because the Bible says, “Do not judge” Therefore you are
free.
그런데 그런 우리의 자유는 무작정 자유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때 자유가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자유라는 것입니다. 31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만족케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디아포라의 문제에 부딛쳤을 때에 우리의 경험대로 된다
안된다가 아니라 “과연 내가 이것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는가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 건축 헌금 마련을 위해서 라스베가스에 가서 돈을 벌어야 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을까? 오히려 패가 망신당하기 쉽습니다.
Even
though we have freedom to do whatever we like to do, there is one limitation
that is everything is allowable within the boundary of God’s glory. This is
first point, I want to look at with you. Verse 31 says, “Do it all for the glory of
God” It means all of our behavior should not be for our satisfaction but for God’s
glory. Therefore when you think of ADIAPORA matters, you should consider that “does
that behavior glorify God?”
Two
men who were supposed to eat but they didn’t. By the way, one of them didn’t
glorify God but the other glorified God. Do you know that Paul opposed Peter?
Paul said that Peter was clearly in the wrong. (Gal2:11) When certain men came
from James, Peter used to eat with the Gentiles, but when they arrived he began
to draw back and separate himself because Peter was afraid of those who
belonged to the circumcision group. At that time, all Jews were not supposed to
eat with the Gentiles because they thought that the Gentiles are impure.
베드로는 그 밀어닥친 사람들이 자기를 이방인과 밥을 같이
먹었다고 정죄할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보기에 베드로는 그 이방인과 식탁에서 물러나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도 부르셨고, 이방인도 부르셨고, 모든 율법에서 자유케
하셨으니,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Peter
was afraid that he would be condemned by the circumcision group because of eating
meal with the Gentiles. Paul thought that Peter should not draw back from the
table eating with Gentiles because that was the God called everyone even the
Gentiles. That is one way to glorify God who made us free from the law.
베드로는 먹어야 하는데 먹지 않아서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구약에 보면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다니엘은 포로였고, 바벨론의 왕을 섬기도록 뽑힌 사람이었습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오, 포로의 신분으로 당연히 왕이 주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다니엘은 그 왕이 주는 음식으로 몸을
더럽게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특별히 요청을 해서 자신은 채소와 물만 먹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 채소와
물만 먹은 다니엘은 다른 사람보다 더욱 건강해 보였습니다. 다니엘은 그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다니엘은 하나님께 더욱 영광돌릴게 됩니다.
Peter
was supposed to eat, but he didn’t in
doing so he failed to glorify God. On the other hand, In the old
testament, Daniel was a captive and he served the king of Babylon. He was
supposed to eat the food that was given to him from the king. But Daniel asked
the chief official for permission not to defile himself by eating the royal
food. Daniel thought that he should not eat what was impure that the Gentile
enjoyed. That’s why Daniel just ate vegetable and water. Surprisingly Daniel’s
looked healthier and better nourished than any other captive who ate royal
food. Daniel definitely glorified God because people knew God was working
through him.
As
for Peter and Daniel, “not to eat” looks the same thing but Daniel was right
and Peter was wrong. What does this mean? “To eat or not to eat” is not an
issue. “To do or not to do” is not a big deal. What is important is whatever
you do or whatever you don’t do, you must glorify your God. Within this boundary you can do whatever you
want.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기회에 우리가 한 가지의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바로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한번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나에게 맞는 건가? 내가 이것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릴수 있을까?
내가 이것을 해서 교회에 덕을 세울수 있을까?” 바로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질문에 “글쎄”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여러분은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께 영광이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 때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무엇이든 마음껏 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My
brother and sister! We’d better make it a habit that we ask ourselves in whatever
we do. “Is this a proper thing for me? Can I glorify God doing this? Can I
edify the church doing this?”If you feel negative response to such questions,
you’d better avoid whatever you are trying to do. But if there is nothing
against your question in your clear conscious, feel free in whatever you try to
do.
고린도 전서 10:21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이 말씀은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을 같이 따를수 없고, 귀신과 하나님을 같이 기쁘게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이든, 하나님과 귀신이든 무엇인가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앞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그런 결정의 순간들이 올때에 당연히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길을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면 좋은것, 귀한 것, 하고 싶은 것이라도 포기하며,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Corinthians 10:21 says, “You cannot drink from the cup of the Lord and from the
cup of demons, too. You cannot eat at the Lord's Table and at the table of
demons, too.” It means that we cannot satisfy both ourselves and God at the
same time. It means we cannot satisfy both the world and God. We must choose between
God or others. When the time of decision about what to do or not to do, I
encourage you that whatever you do or not to do, you must choose the way that glorifies
God. Would you say Amen? It is the first standard of judgment of faith.
두번째로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판단의 기준은 다른 사람의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도되나 안되나라는 그런 아디아포라의 문제를 결정할 때에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한번 생각해야 하고, 두번째로는
“과연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것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24절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이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결정할 때에도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나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결정입니다.
The
second thing I want to share is that the standard of judgment of faith is
others. When
we face the problem of ADIAPORA, we must be concerned about, “do we glorify God
with it? Also, when we face the problem of ADIAPORA, we must be concerned about,
“is it good for others? Let us read verse 24, it says, “Nobody should seek his
own good, but the good of others” We, Christians should pursue of the good of
others.
사실 미국에서는 별로 문제가 안되는데, 한국에서는 조금 문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목사가 골프를 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골프치면 시간도 많이 들고,
특별히 돈이 억수로 많이 드는데, 꼭 목사가 골프를 쳐야 하는 것이냐?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축구, 배구, 탁구 다 되는데 골프가 안될 이유는 또 뭐냐? 골프가 그렇게 좋은 운동이면 수고하는 목사들이 좀 치면 안되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째튼 구원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 때문에, 어떤 목사들은 골프치는 것 때문에 가끔
죄인취급 당할때가 간혹 있기는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목사가
골프를 쳐도 됩니까? 안됩니까?
In
America, it is not a problem, but in Korean it could be a problem. That is “playing
golf” Some Korean Christian insist that a pastor should not playing golf
because playing golf takes time and money (if you play golf in Korea, you need a
bunch of money). How can a pastor play golf game that is the sport for the rich?
But the others say, “It’s O.K! Playing golf is dependent on the pastor. If golf
is a good sport, a pastor deserve to play it like any others” Playing golf or
not is a matter of ADIAPORA that has nothing to do with the salvation. But it
is still a tough question to a pastors in Korea. What do you think can pastor
play golf?
이 문제에 대해서 오늘 본문의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본문의 말씀을
볼 때 바울은 아마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판단을 받습니까?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고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Let
us call and ask this question to the pastor of the Corinthian church, Paul. “Hey!
Pastor Paul what do you think about playing golf in Korea?” He might says, “Freedom
to do something shouldn’t judged by another(V29), so I think playing golf is
permissible but in some place it wouldn’t be beneficial and constructive(v23),
one thing for sure is that we should seek the good of others”
What
do we learn from this conversation? The standard of judgment is for other’s
sake. Paul says, “To the Jews I became like a Jew, to win the Jews. To those
not having the law I became like one not having the law so as to win those not
having the law” It doesn’t mean that he had two faces. It means that he sought
for the good of others. That’s why he said, “Therefore, if what I eat causes my
brother to fall into sin, I will never eat meat again, so that I will not cause
him to fall”(8:13)
바울은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정확하게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우리의 자유대로 할 때에 조심하여서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이웃의 유익을 구해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Paul
knew exactly what Jesus have taught his disciples when Jesus said, “But if
anyone causes one of these little ones who believe in me to sin, it would be
better for him to have a large millstone hung around his neck and to be drowned
in the depths of the sea (Matthew 18:6) It indicates that we have to be very
careful when we practice our freedom. We are not supposed to live according to
our will but for God’s will and for the good of each others.
여러분 혹시 문둥병 성자 다미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이 분은 하와이의 선교사입니다.
그분이 하와이 몰라카이에 있는 칼라파파라는 곳에 들어가서 일하셨는데, 누구를 대상으로
사역하였냐면 문둥병자를 대상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사실 그 누구도 칼라파파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왜그렇습니까? 문둥병이 자기에게 전염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Have
you ever heard the name “Damien”? He was a missionary in Honolulu in Hawaii.
After a while he volunteered to go Kalaupapa, a tiny isolated peninsula, on the
island of Molokai. Here he served the people who had leprosy. No one else would
go to the Kalaupapa because they were afraid they would get the disease.
But
His ministry was not easy because the leper people out there didn’t open their
heart. They didn’t think of Damien as their friend. Damien was still like an alien
in their sight. Damien realized that “just to be with them” is not enough, so
he prayed, “Dear Lord! Make me a leper, to gain all them to Jesus Christ”
Finally, his prayer was answered. When he began his preaching he used to start
with “My brother..”, but after his prayer was answered, he started his sermon
with “We lepers..” He became a leper for others.
Dear
brothers and sisters, we are facing the matter of ADIAPORA every day. Even
though we may be sure we are saved,
sometimes we are confused at what is right and what is wrong. In-between right
and wrong, we might wander where we should go.
지난 시간과 오늘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수 있는 것은
그런 순간에 우리는 예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분간을 해야 합니다.
정말 내가 이것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릴수 있을까? 거기에
yes라는 대답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자유를 누리면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면 한발 뒤로 물러나 하나님의 때와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Last Sunday, and this Sunday, we are learning
from Paul, “how to decide about the matter of ADIAPORA” We need to have
Jesus-centered mind. If we stick to the Lord and make effort to glorify God, we
would discern between good and bad, right from wrong. So ask to yourself from
time to time that can I glorify God with this, if there is a yes, go on and
keep doing whatever you like to do. But if you are not confident about it, you
should take more time to pray and ask God to lead you in the right way.
The
other helpful way to decide is, don’t judge other but seek the good of others.
We are not supposed to live for ourselves. Do you remember the principle of “JOY”
J stands for Jesus first, O stands for other second, Y stands for you last. What
is the common thing Jesus, Paul, and Damien have? They lowered themselves
before God and men. They sought not their own but others! That is the way that
we should walk on.
I
pray that you open your heart and accept others without judgment and focus on
Jesus Christ to solve all of problem of ADIAPORA.
Let
us pray, Dear Lord, Thank you your teaching, Let us be those who don’t just
listen to your words but practice your word every day of our life. Help us to
be get out of the pit of things that are not important matter in salvation and
focus on Jesus and glorify God through all of our life. In Jesus name we pray
Amen.
'SERMON > NEW TESTAME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18:1-8절 불의한 재판장 비유 (0) | 2013.03.16 |
---|---|
Do you have the wounds 거룩한 상처 John 20:24-29 (0) | 2013.01.14 |
무엇을 보는가 What do you see? Part 1 Roman14:1-2 (0) | 2009.07.28 |
사랑하는 이야기 1 John 4:19-21 요한일서 Love one another (0) | 2009.05.07 |
Concentrate on two things Mark 2:1-12 사순절에 힘쓸 두가지 막2:1-12 (0) | 2009.03.28 |